휴대폰 AS

어머니 휴대폰의 배터리가 빵빵하게 부플어올랐다.
국내 유명 회사의 제품인데... 이런...
결국 AS를 하러 갔는데....

터질 듯이 부플어 오른 상태라 이정도 부플어 오르면 찾아 오신 것에 아이고 감사합니다. 즉시 교환 내지 선물이라도 들이겠습니다. 해야 하는데...
AS기사는 자꾸 이런 문제 저런 문제를 들먹인다. 한마디로 이 모든 너의 잘못을 외치고 싶은 거다.

확 도로 회수해서 인터넷에 올리면 어찌되는가 말해주려다 아직 사회초년생인 것 같아서 조근조근 말해주었다.

이 정도 부플었으면 그 다음에는 터지는 거다. 리튬 플리머가 아니고 이온이다. 알고 있냐.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과전압일 때 뿐이다. 겨우 4.2볼트에서 과전압이 일어나 이렇게 되려면 단말기에 심대한 문제가 있던가 배터리의 심각한 불량이다. 이거 둘다 너의 회사 꺼다. 아니냐. 지금 배터리 보증 수명 6개월 운운할 때 아니다. 일단 단말기에 과전압 회로 체크해 봐라. 과전압 회로는 전압이 과하게 들어오면 전압을 끊어야 하는데 그거 못했을 가능성이 많다. 단자가 접촉불량에 합선일 수 있다고. 고객이 24핀 단자 잘못 꼽아서 생길 수 있다고. 보자. 봐라 가이드가 주저 앉았다. 이거 고객 실수가 아니라 부품 불량이다. 도데체 몇번 꼽고 흔들면 가이드가 주저 앉냐. 승인원에 분명 유효숫자가 있을 거다. 그거 분명 고객이 몇십만번 꼽았다 빼도 안전하다고 되어 있을거다.

한때의 실력을 조금 자랑했더니 기사는 금방 꼬리내리고 상황 파악을 하고는 부품고장과 과전압회로 고장, 배터리 부플어오름을 인정하고 무조건 무상수리를 해 준단다.

아는 놈이 나쁜 놈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생글생글 웃으며 고객님, 고객님. 하고 불러도 모르면 왠지 씁씁한 것이 이 바닥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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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오름, xdg]


머리를 기르다

산이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귀를 기울이면"이라는 게시판을 만들었다. 각자의 삶이나 자신의 관심사를 진솔하게 이야기하는 그런 자리라고 할까? 차례가 되어 나도 쓰게 되었다.


1편은 그해 있었던 머리를 기르며 느꼈던 생각의 단편이다.



 

머리를 기르다.


요즘 나는 머리를 기르고 있다.
머리를 기르는 것이 뭐 대단한 일일까 하지만 나이 사십이 넘은 남자가 유교적 사고와 직장인으로서의 사회적 규범에 제약을 받는 상태에서 머리를 기른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다행이 내 직장은 소위 IT 기업이라 비교적 복장이나 두발 등이 자유롭기는 하지만 그래도 소위 한국 남자들에게 주어지는 기본적인 규율과 눈들이 존재하다보니 나 자신도 항시 스스로를 자기 검열하는 경우가 지금도 비일비재하다.


생각해 보면 독재와 자유의 시대를 거쳐 온 표준적인 한국 남자가 귀를 거의 가리고 목을 반쯤 덮을 정도로 머리를 기른다는 것은 참 상상하기 힘든 돌출 행동일 것이다. 초중학교 시대에는 그야말로 권위적인 시대라 머리를 기른다는 것은 인생을 포기한 행동처럼 제약을 받았다. 그리고 전두환 시대에 비로소 학생들의 두발 자유화가 있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쇼였고 두발이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었다. 고교 시절에도 학생부 선생들은 여전히 바리캉을 들고 다녔다. 조금만 머리가 길어도 머리 한 가운데로 길을 내는 것이 별 흉이 되지 않던 시대를 살았다. 대학 때는 자유로움 보다는 엄격함에 지배당했고 머리를 빡빡 깎고 군대를 다녀왔다. 그리고 이어진 직장 생활은 대부분 스포츠보다는 약간 긴 머리를 하고 다녔다. 한때 회사를 운영할 때에는 머리에 대해 더 엄격했다.


머리를 길렀다면 아마도 잘 생각나지 않는 초등학교쯤이었을 것이다. 사진들을 보면 귀를 덮을 만큼 길렀던 적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내 의지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 의지에 따라 머리를 기른 적이 단 한번 있었는데 20대의 혈기 방자한 한글과컴퓨터 재직 시절이었다. 그때는 무어랄까 가슴에 품은 꿈이 컸는지 ‘만나는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과 나 자신만의 고유한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적당한 방법이 없는지 고민을 하던 차에 외적 방법의 하나로 머리를 길렀다. 당시 나의 카운슬러였던 윤순이 누나에게 조언을 구했고, 처음으로 미장원이라는 곳을 따라 같다. 그것도 이대 부근의 미장원이었는데 그곳 언니(?, 오늘날에는 스타일리스트라는 말로 표현하지만 그때에는 그저 언니라는 호칭으로 통했던 것 같다.)의 조언의 받아 귀 쪽은 스포츠머리처럼 치고 뒷머리를 기르는 형태로 머리를 길렀다. 당시의 유행한 머리인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그 머리가 맥가이버 시리즈 중에 맥가이버가 한 머리의 형태 중 하나와 비슷했다. 아무튼 한 사람의 머리를 다듬기 위해 한명의 언니와 여러 사람의 보조들이 붙어 서비스하는 행위를 처음 겪어 본지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그 의도는 매우 훌륭했고 사람들에게 외적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 과정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머리를 언제까지 유지했는지는 기억에 없다. 아마도 귀를 덮지 않는 형태의 긴 머리라 심리적으로 머리를 길렀다는 의식이 희박해서일지도 모르겠다.


그 후 어떤 계기로 생활 한복을 입게 되었는데 이것이 머리를 기르고자 했던 의식과 같은 것이었는지 모르지만 그 후로는 머리를 기른 기억이 없다. 이상하게도 나를 대했던 여러 사람들이 생활 한복이 내 이미지와도 잘 맞는다고 하는 칭찬에 힘입기도 했지만 입어 보니 편하고 마음도 편안해지는 느낌이라 이후 생활 한복 마니아가 되었다. 지금도 가지고 있는 양복보다 생활 한복이 더 많다. 그런데 생활 한복이라는 것이 보통의 옷보다 더 시선이 많이 가는 옷이라 머리까지 장발이면 시선을 더 견딜 수 없다 판단했는지 생활 한복을 입으면서 머리가 조신해 진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그 이후 장발에 대한 기억은 끊겼다.


20대의 긴 머리 사건 이후로는 스포츠머리이거나 그보다는 조금 긴 머리를 오랜 기간 고수해 왔다. 이른바 바른생활 머리다. 유지 관리도 편하고 이런 머리는 5,000원하는 규격화된 브랜드 머리점에서 쉽게 깎을 수 있는 스타일이라 접근이 쉬웠다.



사실 나는 바람에 머리가 날리는 느낌이 참 좋다.

머리가 바람에 날리면 산발이 되는데도 바람을 받으며 머리가 펄럭이듯 날리면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쾌감을 얻는다. 마치 나도 날리고 있다는 느낌, 하늘하늘 거린다는 느낌, 붕 떠오르는 것 같은 느낌과, 지상의 발이 지면에 붙어 있기 위해 긴장하는 약간의 저항 사이에 존재하는 부조화 등의 느낌이 가슴에 새겨진다. 그런 느낌들이 가슴에 스물스물 기어들어오며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느낌을 처음 느낀 것은 어느 날 밤의 인수봉 위에서였다. 20대의 질풍노도와 같은 시기는 나에게 참 불안하고 힘겨운 삶이었다. 삶이 한번 바뀌었고, 바뀐 삶 역시 늘 불안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마음을 다잡을 수 없을 때는 일하다 말고 구두에 정장 차림으로 원효 리찌를 타고 백운대에 자주 올랐다. 젊은 시절 몸담았던 한글과컴퓨터의 근무 환경이 좋았던 탓도 있었다. 1주에 44시간 하루 4시간 이상만 근무하면 되는, 지금 생각해도 최고의 근무 조건에서 일하다 보니 일이 막히거나 삶이라는 과중한 형이상학적 스트레스를 받으면 컴퓨터를 로그아웃(로그아웃을 하면 근무시간 산정이 안 된다. 그래도 게으른 것은 아니어서 항상 70시간 넘는 주간 근무 기록을 남겼다.)하고 열기를 식히기 위해 무작정 산을 오르는 것이다. 때로는 그것으로도 마음의 화를 참지 못한, 부글부글 가슴 끊는 밤이면 배낭을 메고 야간 암벽 등반에 나섰다. 이렇게라도 마음을 식혀야 삶이 살아나는 것이다. 다잡지 못하고 풀어져 버리면 그땐 속수무책이 될지도 몰랐다. 항시 책상 밑에는 암벽화, 안전벨트, 카라비나, 로프 등이 배낭 속에서 대기 중이었다.


당시 암벽 실력이 일취월장하던 때라 겁이 없었다. 솔로 등반을 한다고 여러 번 선배들에게 걸려 혼이 나기도 했지만 대슬랩을 넘어 인수 B 코스로 오르는 길 정도는 가벼운 리치 등반을 하듯 혼자 올랐는데 컴컴한 밤 랜턴에 의지해 오르는 맛이 정말 좋았다. 흐릿한 헤드랜턴에 시각의 모든 것을 의지하며 천 길 낭떠러지를 홀로 오르다보면 마음속의 화는 어느덧 삭혀지고 삶에 대한 무서운 집중력이 되살아났다. 죽기 위해 오르는 길은 아니지만 그 길은 죽음을 도처에 깔아 놓았고 아무리 익숙한 길일지라도 어둠 속에서는 모든 것이 흔들렸다. 그 두려움을 뚫고 등반을 마친 후 아무도 없는 인수봉 위에 올라 철퍼덕 바닥에 주저앉으면 저절로 “휴~” 하는 한숨이 나왔다. 그것은 어쩌면 “다행이야. 이렇게 살아있어서”라든가 아니면 또 살아갈 남은 날을 위해 “이제 그만 되었지. 마음 풀린 거지.” 하는 위안의 하나였다. 그리고 준비해 온 라면 하나를 끓여 먹으면 다시 세상에 나가 투쟁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는 것이다.


아마도 5월 초순 쯤 되었던 것 같다. 그날도 생리를 하는지 가슴 속에 이는 화를 참지 못하고 어두운 밤 홀로 인수봉을 올랐다. “휴~” 하며 정상에 올라 뜨거운 라면으로 속을 채운 후 찬 바람을 피해 우모복에 몸을 숨기고 찬란한 서울의 야경을 인수봉 위에서 한참을 보고 있었다. 더 있고 싶었지만 점점 바람이 차가워졌다. 두터운 우모복을 뚫고 한기가 몰려왔다. 가야할 시간이다. 물러날 때를 아는 것도 산에서 배워야 할 겸손의 하나. 하강 코스로 이동해 하강용으로 전락한 로프를 피톤에 걸고 줄을 날렸다. 로프는 팽팽하게 일직선을 그렸다. 하강 코스에서 맞이한 바람. 대단한 바람이었다. 중력의 법칙을 무시하며 수평선을 펼치듯 바람의 방향으로 로프가 걸렸다.


4월말 5월 초가 되면 인수봉의 하강 루트는 항시 강한 바람 탓에 가장 조심해야 할 곳으로 변한다. 계절이 바뀔 무렵이라 서해에서 강한 바람이 들어오는 때다. 북한산 앞까지 막힘이 없으니 바람은 그 강한 힘을 믿고 줄 곳 줄달음쳐 오다가 북한산에 이르면 그만 당황하고 만다. 836m의 백운대와 810m의 인수봉이 긴 골을 걸고 버티고 있다. 그러니 서로 빠져 나가려고 요동을 친다. 백운대와 인수봉 사이의 골은 그래서 바람의 아비귀환이요 난장의 전형을 보여준다. 경쟁 한번 없이 웃으며 온 바람들은 이 좁은 골에 이르러 서로 먼저 나가겠다고 다투는 형국이니 순간순간 바람도 이런 바람이 없다. 봄이 되었다하나 바다에서 들어오는 바람은 차고 습하다. 인수봉의 하강 루트는 하필이면 인수봉과 백운대 그 사이의 바람 골이다.


그러니 이때가 인수봉에서 가장 많은 사고가 나는 때이다. 하강 루트 쪽에서 연등을 하다 밤이 되면서 여러 명의 목숨을 빼앗았던 대 사건도 이때에 일어났고 낙석 사고며 등반 사망 사고 또한 이때의 기록이 가장 많다. 계절이 바뀌어 시즌이 시작될 때라 사람이 몰리고 아직 시즌에 완전히 준비가 안 된 사람들이 차고 습하고 강한 바람에 노출되면서 이런 저런 악연들이 생기는 것이다.

나도 이 골에 있는 산악회 30주년 기념 루트인 “알파30”을 혼자 보수 하러 들어갔다 겨우 볼트 하나를 박고 추위에 입술까지 파래져서 나왔던 기억이 나는데 이때 역시 4월 말이었다. 찬바람에 맛이 간 내 몰골이 당시에 얼마나 처참했는지 지나가던 등산객들이 앞 다투어 먹을 것과 뜨거운 물을 주었던 기억이 난다.


하여튼 겨울에도 만나기 힘든 강한 바람이 자주 불어오는 계절. 그 날 밤이 아마도 그런 밤이었던 것 같다. 긴 여운을 남기며 하산할 시간. 침낭이라도 가져 왔다면 아침까지 잠을 청해 볼 수도 있었겠지만 그럴 준비까지는 미처 하지 못한 밤. 로프에 팔자 하강기를 걸고 안전벨트에 걸려있던 카라비나를 하강기와 연결한 후 링을 채웠다. 그리고 피톤에 걸려 있던 몸자용 카라비나를 풀었다. 몸자가 풀리면서 팽팽하던 안전벨트가 느슨해졌다. 몸을 약간 뒤로 젖히자 이네 팔자 하강기와 연결된 부위가 다시 안전벨트를 팽팽하게 당긴다. 이제 하강을 할 시각이다. 몸을 낮추고 체중을 이용해 하강기에 걸린 줄을 풀면서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몸에 익은 간단한 일이다. 그런데 몸을 낮추는 순간 안 그래도 팽팽하던 바람이 갑자기 더 세차게 밀려오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내 몸을 감싸더니 갑자기 하늘로 비상하는 것이다.

흡! 비명이 터질 뻔했다. 중심을 잡으려고 발끝에 온 힘이 모였다. 그리고는 날아가지 않기 위해 엉덩이를 낮추고 체중을 무릎 아래로 집중했다. 로프를 잡은 오른손은 땀이 날 정도로 힘이 들어갔다. 비록 몸이 완전히 들리지는 않았지만 오한이 날 정도의 기세였다. 팔자 하강기가 로프에 제대로 걸려 있지 않았다면 산 아래로 추락했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그런 바람.


그때 느낌이 왔다. 짧은 머리로는 느끼지 못했지만 눈썹이 날리는 파리한 느낌. 처음 느껴보는 짧은 전율에 몸이 떨었다. 그 느낌은 뭐랄까. 온 몸이 다 날리는 느낌이랄까. 오버행으로 하강할 때 발을 밀며 허공에 몸을 날리는 순간 가슴 아래가 찌릿하며 오줌을 지릴 것 같은 그런 느낌. 아마도 그런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 왜 하필 눈썹이란 말인가? 더 긴 머리도 있었는데 감각조차 느끼기 힘든 그런 부위를 통해 전율이 느껴지다니? 오랜 고민 끝에도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었지만 그 느낌만은 바람이 불 때마다 인수봉 위에 설 때마다 늘 생각나는 잊을 수 없는 이채로움이었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그 느낌은 오래지 않아 어느 날 우연히 다시 나를 찾아 왔다.



머리를 자르는 시기를 몇 번 놓치다 보면 그리 길지는 않지만 더벅머리가 될 때가 있다. 이 때 쯤이 되면 주변의 눈총과 가족들의 성화가 극에 달한다. ‘조만간 꼭 머리를 깎아야 겠다’고 결심을 하며 집을 나선 어느 날, 차고 강한 바람이 찾아왔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내 머리를 흔들고 지나갔다. 머리가 날리며 산발이 되었는데 바람이 지나가는 순간 눈썹 날리던 그때처럼 가슴이 부르르 떨었다. 분명 같은 느낌인데도 왠지 다른 느낌. 좀 더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 그 순간 그 느낌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인수봉에서의 그 느낌은 오한이 나고 살이 떨렸던 느낌이었다면 이 느낌은 마치 기대하지 않았던 뜻밖의 선물에 환희를 느끼는 것이랄까. 내심 나를 기억해 주었으면 하고 은근히 기대했던 사람이 어느 날 문득 내 앞으로 다가와 손을 잡아주는 짜릿함 같은…….

생각건대 그 순간부터였을까? 머리가 날리는 느낌이 참 좋았던 것이. 아마도 그럴 것이라 생각이 든다.



아쉽게도 그러나 나는 머리를 기르기에는 알맞지 않은 몇 가지 제약 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 첫째는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사회가 만들어 놓은 남성의 머리에 대한 관념이다. 머리를 자르는 것은 불효라 하여 단발령에 반발해 자결을 한 자들까지 있었다 하는 시대가 불과 100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어느덧 우리 사회에서는 남자가 긴 머리를 갖는 것은 사회에 대한 반항이요 부도덕처럼 보이는 시기에 살고 있다. (시대가 바뀌었지만 적어도 내 세대에게는 아직도 상당부분 유효하다.) 이건 한국이라는 사회가 가지고 있는 하나의 규범이요 역사가 만들어 낸 경직성이니 따로 논할 필요가 없는 부분이다.

둘째는 내 머리가 건성 모발이라는 데 있다. 건성 모발이니 습성이나 중성 모발에 비해 머리를 감고 말리고 나면 머리가 붕 떠서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이 때문에 머리를 가라앉히기 위해 수십 번의 빗질과 잘 하지 못하는 드라이를 한답시고 시간을 잡아먹는다.

셋째는 머리숱이 너무 많다. 건성에 머리숱까지 많으면 머리 건사가 참 힘들다. 부풀어 오를 때의 통제가 힘들고 머리가 조금만 자라도 더벅머리가 되기 일쑤다. 그러니 짧게 쳐버리는 것이 상책이 된다.

넷째는 머리가 유난히 곱슬이다. 곱슬머리 중에서도 자연스럽게 웨이브가 나오는 머리라 생머리를 하고 다니면 다들 파마한 것 아니냐고 물어올 정도다. 한 때는 머리를 조금 길러 스트레이트파마를 두 번인가 했었다. 처음에는 좋은 듯 했지만 머리가 뻑뻑해지는 느낌이 영 아니었다. 이후에는 차라리 머리를 짧게 깎았다.

다섯째는 머리가 너무 늦게 자란다. 이전에는 머리가 너무 빨리 자라는 듯 했으나 요즘은 머리가 자라는 것이 너무 더디다. 8개월을 길렀는데 겨우 귀를 반쯤 덮고 목 뒤를 반쯤 가렸을 뿐이다.

여섯째는 무스나 헤어로션 같은 머리에 바르는 것을 유난히 싫어한다. 때때로 머리를 깎고 나면 미처 내 의사도 물어보지 않고 이런 것들을 발라주는 경우도 있지만 과히 기분이 좋지 않다. 그냥 머리를 손으로 넘겼을 때 머릿결의 자연스런 촉감이 묻어나는 것이 좋지 머리를 만지는 순간 딱딱한 무언가가 얽혀 있는 느낌은 영 거시기다.

일곱째는 스스로의 자기 검열이다. 너무 오랜 세월 동안 짧고 단정한 바른생활 머리에 인이 박히다 보니 스스로가 긴 머리에 대해 확신을 갖거나 어찌 가꾸어야 할지를 모르는 것이다. 아직 자신의 긴 머리를 보면 오히려 부자연스러움을 느낄 때가 많다.

이러니 그냥 짧게 깎고 다니는 것이 여러 가지 제약을 단숨에 커버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되었다.



머리를 기를 때면 늘 꺼리는 이것들이지만 좀 다르게 생각하면 이런 제약들은 바람에 머리가 날리는 그 느낌에 일조를 하니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거리를 걸으며 바람에 머리가 날리는 것은 건성이고, 곱슬머리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숱이 많은 것에도 영향을 받는다. 머리에 무언가 바르는 것을 싫어하니 또한 자연스럽게 머리가 바람에 날린다.


자기 검열과 사회의 눈에 대한 극복만 가능하다면 머리를 계속 기르는 것이 요즘 나의 작은 소망이다. 다행이 아내는 아직 내 편이나 나의 어머님은 긴 머리가 영 마음에 걸리시나 보다. 하지만 아들이 이제 길러 보지 않으면 언제 길러 보냈냐는 설득에 그만 반은 넘어오고 반은 넘어오지 않으셨다. 아직도 전화가 오면 대뜸 “머리는 잘랐냐?” 하신다. 아예 “머리 안 자르면 오지 말라” 하신다. 어머니 눈에는 무엇이든 ‘사회가 계량화한 평균치’ 만큼만 사는 것이 최선이고 최고인 듯하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나이 어린 아이가 되어 어머니의 눈을 피해 머리를 기르고 있다. 아마도 이것이 내 자기 검열의 최일선일 것이다.


아직 내 머리는 다 길러지지 않았다. 귀를 다 덮고 싶지만 한참을 길렀는데도 여전히 귓밥을 넘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 아내의 조언에 따라 머리숱을 치고 나서 머리가 한결 단순해진 느낌이라 좋았지만 머리끝이 여전히 제 마음대로 여러 방향으로 웨이브를 그리는 바람에 관리가 힘겹다. 아침마다 아직 낮선 긴 머리를 어쩔 줄 몰라 한다. ‘조금만 더 길러서 이정도만 되면 보기 괜찮을 거야’라며 스스로 위안을 하지만 아무래도 어색한 머리에 신경이 쓰이는 것을 다 걷어내지 못한다.



며칠 전 출근길.

삼성역에서 대치동으로 넘어가는 긴 언덕을 올라가며 바람을 맞았다.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가 모근을 보이며 90도로 솟구쳐 춤을 춘 것이다. 때때로 강력하게 때때로 부드럽게 머리를 흔들어 놓은 바람은 산발이 되어서야 만족한 듯 떠나갔다. 하늘거리는 바람의 여운만이 남았을 때 나는 왠지 짜릿함과 행복한 기분에 취했다. 그리고 사무실로 들어가기 전 화장실에 들어가 엉망으로 변한 머리를 진정시키며 거울 속에 있는 나를 보았다.

이전에는 “머리를 자른다는 것” 이라는 시를 몇 편 쓴 적이 있었다. 불가의 의식과 더해져 무언가 정신적이고 종교적인 뉘앙스를 풍기며 자름의 미학을 노래했다. 하지만 요즘 문득 드는 생각은 “머리를 기른다는 것”이다. 버리지는 못할망정 주어 담기만 하는 모습은 아닌지, 누추한 욕망의 단편을 채워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한다. 다른 이에게는 관대하면서도 자신에게만은 늘 들이대는 검열의 단편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 본 내 모습은 “멋지다.” 였다. 왜 그런 생각이 든 걸까? 산발한 모양이 조금 과장하자면 “괴기스럽다”고 해야 할 텐데. 꾸며지지 않는 모습으로 선 나. 그 안에서 나는 ‘무엇으로부터도 속박 받지 않은 자신’, ‘아무것으로도 꾸며지지 않은 본연의 모습’ 그런 모습의 단편을 보고 싶어 했고 또 본 것은 아닐까? 그것을 두고 멋지다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문득 다시 생각한다. 기왕이면 입은 옷마저도 다 벗어던지고 거울 앞에 섰다면 어떤 느낌일까? 추했을까? 아니면 그 느낌이 더 지속되었을까? 왜 이제 와서 그런 생각까지 드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때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한 것에 대해 조금은 얇은 후회가 밀려온다.


이렇게 생각하니 머리를 기른다는 것과 머리를 자른다는 것은 어쩌면 동일한 선상의 이야기인 것 같다. 머리를 다듬는 정도의 이발이 일상의 일이라면, 머리를 잘라낸다는 것과 머리를 기른다는 것은 일상에 대한 이탈을 의미한다. “머리를 자른다는 것은 일상을 털어내고 삶을 등짐으로서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일이라면 머리를 기른다는 것은 일상에 의해 제약되었던 본연의 자신을 찾아내 잃어버려지는 삶을 복원하려는 일이다.”라고 말한다면 너무 거창한 것일까?


어찌되었던 좋다. 일상이라 일컬어지는 사소하지만 거대한 제약의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명분이 필요하고, 인간의 역사와 사회가 만들어 준 스스로의 검열을 피해가기 위해서는 많은 논리가 필요하니까.


바람이 분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머리를 흔들어 본다. 머리가 날린다. 바람이 날린다. 머리를 하늘로 춤추게 하는 긴장과 눈가를 스치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잔머리의 애틋함이 교차한다. 마음을 동하게 하는 기분 좋은 바람이다. 아. 날아가고 싶다. 나도 “바람이 되어” 날아가고 싶다. 가슴을 활짝 펴 본다. 중력의 법칙을 무시하지 못하는 발만 지면에 붙어 동동거린다.


아무렴 어떤가? 지금 이 순간만이 중요하다.



“아! 바람에 날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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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오름, xdg]


아래 글은 신종플루가 비교적 초기인 10월 22일 적은 글입니다. 초기라 함은 지금처럼 급작스럽게 창궐하던 시기가 아니라 비교적 조용한 시기였지요. 쓰기는 좀 그렇지만 사망자가 10명이 채 되지 않았던 때입니다. 아이가 회복하고 나서 회사에 돌아오니 모두들 싸늘한 기운이 저를 피하는 듯 하여 사내에 돌린 메일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직원 아이 하나가 신종플루에 걸렸고 너무 불안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돌린 메일을 모니터에 아예 올려놓고 며칠을 보며 아이를 건사했다고 하는군요. 그도 나처럼 의학적 지식이 협소하여 딱히 도움을 받을 수 없었고 의사들도 그리 친절하게 설명하지도 않았던 터일 것입니다. 다행이 나에게는 같은 연령의 아이를 같은 어린이집에 보내는 두 명의 친근한 한의사가 있었던 탓에 큰 도움이 되었고 그 도움의 이야기가 적혔던 탓에 그도 아래의 글에 의지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사내에 돌린 내용을 조금 보강해 블러그에 올립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모두다 같은 생각일 것입니다. 내 아이가 아프면 자신이 더 아프죠. 더욱이 아픈 아이를 위해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더욱 괴롭습니다.
저는 한의사를 믿고 타미플루에 의지하지 않고 한약으로만 아이를 고쳤습니다.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 상당수가 같은 경험을 했지요. 그것은 우리의 한의사들을 우리가 오래 동안 믿고 신뢰하고 있었고 한의사들도 이번에는 한약 값을 받지 않고 아픈 어린이집 아이들 모두에게 공수하는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저의 선택이 꼭 최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같은 어린이집에서도 타미플루를 먹고 양약의 감기약을 먹은 아이도 있고, 타미플루를 먹으며 한약을 먹은 아이도 있고 우리처럼 한약으로만 이번 신종플루를 고친 이들도 있습니다. 물론 한약만 먹은 어린 친구들이 더 많았지만.
하지만 아래의 내용 중 발병과 진행 상황은 함께 공유할 만 한 것 같습니다. 우리 직원도 병의 진행 상황이 똑같다고 전해 주었습니다. 함께 발병한 어린이집 아이들이야 한 아이로부터 시작되었으니 같을 수 있으나 전혀 다른 지역의 아이도 같은 증세라 하기에 병은 비슷한가 보다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니 그런 예후의 진행 정도를 바라보고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는 자료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혹 지금 신종플루에 걸렸다하더라도 너무 겁먹지 맙시다. 사람의 생명은 하늘에 달렸다는 말을 믿어보자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최선을 다하면 대부분 병을 이길 수 있다고 믿고 행동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이 아이가 충분히 튼튼하다면 아이를 믿어보세요. 사회가 조성해 놓은 무지막지한 공포에 비하면 그리 험하지 않다는 것이 저와 이번에 신종플루를 함께 경험한 부모들의 공통된 생각입니다. (물론 자기 아이가 아프니 그 아픔은 당연히 컷습니다만.)
게다가 이제는 대가를 지불한 사람처럼 좀 편안합니다. 변종이야 또 생겨 신신종 플루가 나올 것이지만 이미 산 놈이 들어갔다 그 병을 이기고 나았는데 죽은 놈 들어갔다 면역력 생기는 백신 맞은 아이들보다 더 강한 면역력이 생겼으리라 생각하면 기왕에 걸릴 수도 있는 것 미리 걸려서 불안을 덜 수도 있으니 외려 낳다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 집니다.  




올해는 제게 참 많은 일들이 있는 해인 것 같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지난 주 아들 산이가 요즘 한참 유행인 신종플루에 걸렸습니다.
많은 분들이 걱정해 주신 덕분으로 다행이 아이는 무사히 잘 낳았습니다.
참 걱정이 많았는데 얼마나 다행인지.
그리고 혹시라도 저를 보시면 불안해 하실 분들을 위해 제가 겪은 신종플루 말씀 드리겠습니다.



발병


지난 주 화요일 어린이집에서 한 아이가 감기 증세가 있어 오전에 하원했습니다.
병원에 가니 신종플루 의심 증상이 있어 거점 병원으로 갈 것을 권해 종합병원에 가 검사를 하였고 목요일 신종플루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아이는 화요일 하원 때부터 등원하지 못했죠.
그 사이 수요일 어린이집에 미열이 발생하는 아이들 증가. 몇몇은 일찍 하원.
산이도 저녁부터 약간의 미열.
수요일 저녁부터 급격한 고열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산이도 목요일 오전부터 고열이 시작되었습니다. 40도 넘는 열.
산이 엄마가 급히 퇴근해 산이를 보건소에 데려가니 신종플루 의심이 되고 고위험군에 속한 아이라 확진과 관계없이 타미플로 5일치를 처방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거점병원에 가 신종플루 검사를 받는 것이 좋겠다고 합니다. 소식 듣고 저도 퇴근.
보건소 말로는 타미플로는 타미플로고 아이 열 처방은 따로 소아과에 가서 해야 한다고 해서 산이 주치의인 한의원으로 발을 옮겼습니다.
어린이집에 아이가 같이 다니는 한의사라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어서.
의사의 소견은 신종플루는 확실하고 다만 타미플로가 너무 불안정한 약이라 부작용이 심하다는 의견을 듣고 고민 끝에 한약으로 아이를 치료하기로 하였습니다.
한의사 아이도 같은 증세라서 한 배를 탄 것이지요.
이미 증세가 너무 뚜렸해서 따로 확진 검사는 받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어린이집 아이 34명 중 5명을 빼고는 모두 신종플루에 감염된 듯 합니다.
병원에 가 양성 확진을 받은 아이가 16명. 나머지는 산이처럼 검사까지는 하지 않았으나 이미 발병한 아이들과 똑같은 신종플루 증세라 굳이 검사하지 않아도 양성이 확실했습니다.



치료


다행이 어린이집에 아이들 둔 한의사 2명이 협업하여 아이들 약을 때에 맞춰서 공수하였습니다. 약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 졌는데 초기 열이 심할 때 열을 다스리는 약이 공급되었고, 후기에 기침 증세가 뚜렸해 질 때 기침을 잡는 약이 공급되었습니다. 그 외에는 뚜렷한 의학 지식이 없는지라 잘 알지 못하겠군요.
어린이집 부모들도 인터넷으로 서로 자기 아이의 정보를 공유하며 함께 이겨나가려고 했구요. 부모들이 합심하여 아이들을 키우는 공동육아를 하는 것이 이럴 때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겪은 신종플루는 다소 차이는 있어도 모두 예외 없이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쳤습니다.


초기

  1. 미열이 발생했다 갑자기 고열(40도 전후)로 발전한다. 고열은 1-3일 정도 지속된다.
  2. 특징은 아이들이 고열에 시달리는데도 땀이 많이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3. 또 다른 증세로는 헛소리, 구토, 환청, 환각 등의 증세에 시달린다. 고열의 부작용인 것 같다. (산이는 기억 안 난다고 했지만 자면서 노래와 율동도 했다.)
  4. 초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열을 내리는 것이다. 이는 타미플루 복용 여부와 상관 없이 열을 내려주어야 하는데 보건소에서도 따로 열과 관계된 처방을 소아과에서 하도록 권고했었다.
  5. 열을 내리는 데는 차가운 수건으론 겨드랑이 등을 닦아주고 이마에 찬 수건을 대는 것이 좋다고 한다. 우리도 효과를 조금 보았다. 39도까지는 참아보지만 40도가 넘으면 해열을 위해 해열제를 먹이기도 하는데 용법에 따라 먹어야지 과용하면 좋지 않다. 해열제는 타이레놀이 단일 성분으로 비교적 안전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우리도 처음에는 놀라서 해열제를 먹였지만 한약을 먹으면서는 참았다. 매우 가슴 뛰는 인내심이 필요했다.

2. 중기


  1. 고열이 떨어지고 나면 미열이 지속된다. 미열은 1-3일 정도 37도-38도 정도로 지속된다.
  2. 이때 기침을 시작하기도 하고 어린 친구들은 갑자기 고열로 발전되기도 한다.
  3. 이때는 예후를 보면서 꾸준히 약을 먹어야 한다. 갑자기 고열로 복원하는 경우도 있음으로 안심할 단계가 아니다.

3. 말기


  1. 대부분 땀을 흠뻑 낸 다음 체온이 정상으로 돌아온다.
  2. 그런데 이때부터 아이들이 기침을 하고 콧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3. 체온이 정상으로 돌아와 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무섭게 하는 기침은 기관지가 약한 아이들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
  4. 이때 약을 바꾸어 기침을 잦게 만드는 약을 먹으며 예후를 지켜본다.
  5. 대부분 기침이 끝나면 모든 증세가 소멸된다.

후기


어린이집 한의사들의 말로는 일단 열을 내리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럼 반은 고친거라고 하더군요. 신종플로가 특별한 전염병은 아니고 아직 치료약을 잘 갖추지 못한 새로운 독감의 일종이라는 겁니다.


산이는 지금 정상 체온으로 이미 돌아왔고 꾸준히 치료한 결과 약간의 기침과 콧물나는 증세가 남았습니다.
다른 감기에 걸린 경우와 비교해 보면 정상 체온이 돌아온 후에는 바로 호전되는데 이번에는 병마와 싸우느라 힘들었는지 현저하게 기력이 떨어진 모습입니다.
기침을 무섭게 할 때는 정말 가슴이 철렁했지요. 7세 아이의 참담한 소식을 들었을 때 기관지 쪽 문제라는 소식을 접해서 혹시라도 했지만 다행이 잘 견디었습니다.


보통 발병일로부터 전염 가능한 기간이 아이는 10일, 어른은 7일이니까 저는 대충 끝났고, 산이는 이번주 일요일까지 격리 대상입니다.


어린이집에서도 아이를 고치는 과정에서 한의사를 믿고 저희처럼 한약으로만 고친 사람도 있고, 타미플루와 감기약을 먹인 사람도 있고, 타미플루와 한약을 같이 먹인 사람도 있습니다.
하여튼 지금까지의 경과를 보면 아이들 모두 무사하게 신종플루를 이겨낸 것 같습니다.


의학적 지식이 부족한 가운데 전염병처럼 공포를 주던 신종플루를 의학적 지식이 풍부한 한의사들의 도움으로 큰 어려움 없이 치료하게 된 것도 다행이고 아픔을 함 어린이집 아이들 모두 무사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참고사항


아래는 이번에 신종플루를 거치면서 알게 된 몇 가지 사항입니다. 먼저 참고하시라고 적습니다.


1. 신종플루


  1. 일종의 감기입니다.
  2. 감기가 원래 전염성이 강한데 이번 플루는 전염성이 더 강한 것 같습니다.
  3. 고열로 빨리 전의되는 것이 특징이고 치료제가 완전한 것이 없이 불안감을 줍니다. 하지만 일반 감기 역시 완전 치료제는 없는 것을 생각하면…
  4. 겪어보니 정부에서 호들갑을 떠는 것과는 달리 일반 독감보다 조금 쎈 놈 정도의 느낌입니다.
  5. 정확한 통계인지는 모르지만 우리나라에서의 사망률은 발병자 만명 당 6명 정도이고 이는 일반 독감보다도 낮은 수치라고 합니다. 통상적인 사망자는 순수 독감 때문에 발생하기 보다는 기관지 쪽에 문제가 있었다가 복합적인 원인이 되어 발생한다 하네요.

2. 신종플루 증상


  1. 사회가 조성해 놓은 엄청난 공포에 비하면 증상은 생각보다 약했습니다.
  2. 이전의 우리 아이의 감기와 비교해 보면 열은 일반 감기에 비해 높았으나 짧게 지나갔습니다.
  3. 미열이 지속되는 기간이 좀 긴 것이 특징이고 체온이 정상으로 돌아온 이후에 기침과 콧물이 생긴 것도 특징입니다.
  4. 한의사들에 의하면 기침과 콧물이 늦게 생긴 것은 몸이 병을 이기고 난 후 남은 나쁜 기운들이 준동하는 탓이라는군요.
  5. 어쨌든 가장 무서운 것이 고열입니다. 조금 열 있네 했다가 순식간에 고열로 발전합니다. 이걸 잡는 것이 이번 증상의 최우선 과제였습니다.

3. 타미플루


  1. 현재 유일한 처방책으로 이야기됩니다. 하지만 타미플루 자체가 워낙 불안정한 약이라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고 합니다. 하지만 약이 없으니 이것만 죽어라 줍니다. 안 먹으면 죽을 것처럼.
  2. 타미플루의 역할은 신종플루 바이러스를 죽이는 것은 아니고 생존기간을 반으로 줄이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그나마도 유럽 쪽 보고에 의하면 1일 정도 줄이는 정도라는 의견도 있다고 합니다.
  3. 타미플루가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발병 48시간 내에 투여를 해야 하고 5일 연속 먹어야 합니다. 중간에 그만두면 내성만 키워주고 효과가 없다네요.

4. 타미플로 처방


  1. 시중에 타미플루를 구할 수 없어서 난리였다는 기사도 있었는데 만일 자신의 아이가 59개월 미만이면 보건소로 가시면 됩니다.
  2. 신종플루가 의심되면 고위험성 군에 들어가는 59개월 미만 아동들은 확진 없이도 무조건 타미플루를 처방해 줍니다.

5. 전염성


  1. 제가 경험한 신종플루 전염성은 실로 놀라웠습니다.
  2. 한나절도 채 안 되는 시간 안에 한 공간 안에 있는 대부분의 아이들을 점염시켰습니다.
  3. 이 정도의 확산 사례는 마포구에는 거의 유일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구청이 난리가 났었죠.)
  4. 그 덕분에 지난 주 금요일부터 이번 주까지 어린이집은 휴원 조치를 하였습니다.
  5. 구청에서도 전화를 해서 상태 체크를 했지요.

6. 신종플루 확진 비용


  1. 역시 돈 없으면 병 못 고치는 세상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2. 아이 증세가 의심되어 3차 진료 병원(종합병원)에 바로 가면 확진(치료비 말고)에 필요한 검사를 받는 비용이 14만원에서 16만원 정도 합니다. 16만원은 종합병원에서 거의 선택사항이 아닌 기본 비용에 들어가버린 특진비를 포함한 가격입니다. 가족 모두가 받으면 상당한 비용이 됩니다.
  3. 그런데 일반 거점 병원보다 종합 병원에 가는 것이 더 좋습니다. 확진 판정이 더 빨리 나오거든요. 오전에 검사 받으면 빠를 땐 오후에 나옵니다. 거점 병원은 2-5일까지 걸리는 곳도 있습니다. 물론 즉석 검사도 있는데 오류가 많다고 합니다.
  4. 하지만 종합 병원은 비싸지요. 이때는 1차 진료 병원(동네 병원)에 갔다가 진단서 띄어달라고 해서 가지고 3차 진료 병원에 가면 5만원 정도에 검사를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만일 3차 진료 병원에 먼저 갔다하더라도 잘 아는 동네 병원이 있으면 거기서 진단서 발급해 달라고 해서 가져가면 환불해 준다고 합니다. 확실하진 않습니다.
  5. 확진 시 양성 판정이 나오면 검사 비용 상당 부분을 돌려 받을 수 있다 합니다.
  6. 음성 판정이 나오면 돌려받지 못합니다.

7. 검사는 언제


  1. 너무 빨리 검사를 받으면 대부분 음성이 나옵니다.
  2. 그래서 고열이 난 시점에서 검사를 받아야 정확한 검사가 가능한 모양입니다.
  3. 하지만 이때는 대부분 아 걸렸구나 할 때라서 결국 사전 검사는 아니고 사후 확인 정도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8. 어른들의 신종플루


  1. 어른들은 고열 없이 가벼운 감기 증세와 근육통 등의 몸살감기처럼 신종플루가 지나갈 수 있다고 합니다.
  2. 하지만 고위험군에 속하는 임산부나 어르신들은 대체로 위의 아이들과 같은 증세가 나타난다 합니다.
  3. 어린이집 교사 1명도 임신 중이라 정말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덜컥 걸리고 말았죠. 공동육아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헌신적이기로 유명한지라 어쩌면 당연한 일일수도 있었으나 최악의 경우였습니다. 다행이 잘 견디고 어린이집 한의사들이 친히 집까지 약을 공수하며 잘 이겨냈습니다. 아이 때문에 타미플루를 먹어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지만 한약으로 잘 이겨내어 모두를 안도하게 하였지요. 고위험군은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9. 감염 기간


  1. 국가에서 알려준 감염 기간은 다음과 같습니다.
  2. 아이 : 발병 후 10일, 어른 : 발병 후 7일
  3. 여기서 감염 기간은 신종 플루에 걸린 후 낳았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감염시킬 수 있는 기간이라고 합니다.
  4. 그러니 병에 걸린 후 낳고 나서도 저 기간 동안은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죠.


추신 :


오늘 와 반응을 보니 아무리 감염 기간이 끝났더라도 좀 그런 모양입니다.
아직 매일 끌어 안고 자는 아이가 다 낳기는 했지만 나라에서 말한 감염 기간이 2-3일 남아 있는 고로 얼굴 마주하는 것이 힘들 수도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다음주 일요일까지는 감염기간일 수 있어서. (아이 감염기간이 끝나는 이번 일요일 아이에게 감염된다는 전제면.)
하지만 일은 해야 하니까.
다음주 수요일 정도까지는 가능한 남들 없는 시간에 일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이후에는 다시 이전처럼 잘 지내도록 하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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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오름, xdg]


성미산이라는 고향

지난 6월 23일 성미산에서 있었던 기록이다.

그날 시 의원들의 시찰 이후 마지막 결정에서는 가장 최악의 결정이 나왔다.

면피를 위한 의원들의 입장 표명이 있은 후 입장과는 다른 결정이 최후에 이루어졌다.


지난하고 힘겨운 싸움을 여전히 하고 있다.


지난 주일에는 어린이집 식구들이 모두 모여 앞으로 어찌할 것인지 토의도 했었고...

곧 마을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대 토론이 있을 예정이다.


이제 오세훈 시장과 서울시 도시관리위원회가 모든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역할은 그들이 미래를 생각하며 옳은 결정을 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것.


성미산을 우리 아이들의 고향 마을로 만들고 싶었던 바람과 욕망은 이걸로 끝은 아닐 것이다.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살면서 고향 마을이라는 정겨움을 갖게 만들고 싶었던 우리의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 되어야 함으로...




66미터 짜리 아주 작은 산.

그 흔한 아파트보다 낮은 이 산.

우리들의 성미산입니다.


어쩌면 어르신들이나 우리들에겐 현재요 과거가 될 산이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삶을 배우고 자연을 배우며 커나가는 공간이기에

미래가 될 산입니다.


성미산 아래 비록 물리적인 마을은 아니지만

마을이라는 이름을 걸고 공동체가 탄생했고

그 중심이 된 산

그 안에 거처를 마련한 사람들에게는

마을을 가꾸고 그 가꾸어진 마을을 통해

아이들을 키우고 그 아이들이 커서 시집장가 가고 떠나가도

고향이라 옛 기억을 추억하며

연어처럼 다시 돌아올 이름으로 걸릴 산

성미산입니다.


언젠가 아이들이 "사람만이 희망인, 사람 사는 세상", 그런 마을을 만들겠노라

어머니와 아버지가 일구어 놓은

이 마을에 대한 희망의 끈을 다시 이어갈 때

당당히 가슴에 남아야 하는 그 이름 안에 성미산이 있습니다.



오늘 성미산은 시끄러웠습니다.

늦게 회사에서 출발하여 터전 앞에 급히 차를 대고 뛰어간 성미산.

다행이 늦지는 않았더군요.

촛불과 채민이를 만나 찻길쪽 성미산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홍대에서 동원한 부모들과 성미산주민회라는 사람들은 이미 산 입구로 들어가 있는데 홍대직원들이 우리들의 진입을 막았습니다.

조금씩 흥분하는 사람들. 왜 산에 못들어가게 하느냐? 옥신각신하다 사람이 점점 몰려들자 길이 열렸습니다.

여기저기서 산집 식구들이 보입니다.

바쁜 짬을 내어 준 고마운 사람들. 모두 같은 마음입니다.

마을 사람들과 성미산 학교 아이들도 모였습니다.

성미산을 사랑하시는 마을 어르신들도 많은 분들이 나와주셨습니다.

홍대에서 동원한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팽팽한 대치.

주민회쪽 할아버지 몇 분이 왜 아이들을 동원하냐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우리쪽도 흥분한 몇몇이 소리를 지릅니다.

가능한 흥분하지 않고 충돌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 사람들도 최선을 다합니다.


시의원들이 도착하고

"성미산을 살려줘요." 아이들이 소리를 지릅니다.

의원들의 이마가 찌프려집니다.

좁은 공간에 이백명에 가까운 사람들의 열기가 후끈합니다.

시 의원들은 안내하는 구청 직원들을 따라 공터 안쪽으로 이동합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그곳에는 홍대 사람들이 진을 치고 의원들이 도착하자마자 홍대쪽 입장을 브리핑합니다.

이건 무슨 일? 구청과 홍대는 이미 의견 교환이 된 걸까요? 아니면 우연?

웅이를 붙들고 "우리는 언제하냐?" 물으니 난감해 하며 곧 한다고 합니다.

의원들이 이동합니다. 성미산을 보겠다고 합니다.

사진만 찍고 갈 줄 알았는데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런데 올라가는 사람들을 막고 제한합니다.

자신들이 직접 둘러 볼테니 따라오지 말라고 합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무던히 따라 갑니다.

희망의 끈을 참아 놓을 수 없어 막아도 막아도 따라 올라갑니다.

동원된 홍대 부모들은 따라올 생각이 아예 없는 듯 합니다.

그저 묵묵하니 장승처럼 서 있습니다.

주민회라고 밝힌 할아버지 몇 분만이 소리를 높입니다.


전나무숲으로 가는 길 중턱.

겨우 몇 십미터 걸었는데 의원들은 더 가지 말고 여기서 대책위 브리핑을 듣겠다고 합니다.

조금 더 가면 공터가 있다. 아니다 여기서 듣겠다. 시름합니다.

마포구 관계자가 먼저 브리핑을 합니다.

현장 브리핑이라 합니다. 구청에서는 안한걸까??

마포구청 브리핑이 곧 홍대 입장의 브리핑입니다.

여기가 어디냐는 의원 질문에 지도를 들고 쩔쩔 맵니다.

여기예요. 지도에 손을 짚어주자 되려 화를 냅니다.

현황 파악도 못하고 지도만 들고 있으면서....

의원들은 대책위에게 5분간 시간을 줄테니 의견을 말하라고 합니다.

이제것 기다렸는데 문득 화가 납니다.

올리브가 침착하게 생태숲에 대한 우리들의 의견을 제시합니다.

의원들 진지한 표정. 짧지만 핵심을 짚은 이야기들.

브리핑이 끝납니다.

어르신 한분이 꼭 산 전체를 생태공원으로 만들어 달라고 이야기를 붙입니다.

야휴를 무릎쓰고 주민회 노인 한분도 홍대가 들어와야 한다고 말합니다.

잠시 혼란.

의원 중 한분이 질문합니다.

"마을이 만든 생태공원으로 가는 것만을 원하는가? 아니면 시에서 공원화하면서 주민 의견을 들어가며 하는 것도 수용하겠다는 것인가?"

"전체가 생태공원이 된다면 두번째 안도 찬성." 의견이 나옵니다.


시간이 없다며 물러나려는 의원들에게 누군가 소리칩니다.

"조금만 올라가면 주민들이 가꾼 나무들과 성미산을 모두 볼 수 있다. 제발 거기까지라도 가 봐 달라."

염원어린 그 위압에 못견뎌 결국 의원들은 산길을 따라 꾸역꾸역 올라갑니다. 싫은 표정이 역력합니다.

길 좌우로는 어린이집 큰 방 아이들이 놀고 있습니다.

이유를 잘 알고 있지만 성미산 어린이집 아이들이 참가하지 못한 것이 못네 아쉽습니다.


어느덧 행렬은 전망대에 도착합니다.

의원들은 대충 산세를 쳐다봅니다.

정상에서 계단무대 쪽으로 내려가는 길로 안내하려 할 즈음 의원 몇이 다 봤다며 왔던 길로 도망치듯 내려갑니다.

제발 저 길로 한번만 가 달라고 절규하듯 외치는 데도 그냥 가 버립니다.

참 야속합니다.

한번만 보아달라고. 다 베어진 나무들이 촘촘한 그곳에 우리가 심은 나무들과

마을의 염원이 담긴 장승과 우리네 삶이 담긴 계단 무대의 일상을 보아달라는 것 뿐인데

우리가 이 산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어떤 정성으로 이제까지 가꾸어 왔는지 푸른 실록의 산의 모습으로 보여주고 싶을 뿐인데......

홍대가 들어오면 지금 본 모든 것이 산산이 깨어져 결국 우리의 삶마저도 짖밟히게 되리라는 걸 꼭 알려주었으면 했는데......

10분도 걸리지 않는 길을 버리고 그냥 가버립니다.

그래도 몇 의원은 정상을 거쳐 계단무대 쪽으로 내려갑니다.

그것만으로도 그저 고맙습니다.


민의를 반영한다는 의원들이기에 아쉽고 고맙고 화나고 마음 한 구석이 뻥 뚤린 듯 한 느낌이 듭니다.


홍대쪽 피켓을 든 누군가가 이야기합니다.

"이 산에 꽃도 있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울컥합니다.

정상 능선 길 주위로 노란 꽃들이 군락을 이루어 어여쁘게 피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자연 숲에서만 볼 수 있는 수많은 식물들의 자태를 그들은 몰랐단 말입니까?

그것도 모르고 쓰레기 산이니 버려진 산이니 비방만 일삼았단 말입니까?

도대체 이 산을 한번이라도 제대로 돌아보기나 했는지......

가슴이 울컥하다 못해 아리기까지 합니다.


계단무대로 내려가려는 데 할아버지 몇 분이 아침에 운동하는 어르신들이 너무 안왔다며

"다 온다고 했는데..." 하며 미안해 합니다.

아니다 그래도 이렇게 많이 나와 주셔서 고맙다고, 이 산을 끝까지 지키자고 인사를 드립니다.


산을 내려오니 벌써 시의원들을 태운 차는 떠나고 없습니다.


우리의 성미산을 한번 시찰하는 데 한 시간도 채 안돼 끝나버렸습니다.

성미산 다음은 홍대라는데 홍대는 간 걸까?

홍대가서 들을 이야기란 결국 뻔한 건데 동등의 원칙에 벋어나는 이 배분은 무엇일까?


산에서 내려온 산집 식구들은 목도 마르고 배도 고프답니다.

모두 열심히 한 증거겠지요.

냉면을 먹으러 간다는 산집 식구들과 헤어져 터전으로 갑니다.

느리를 만났습니다.

의원들에게 고맙다는 메일을 쓰겠다고 합니다. 꼭 산을 지켜달라고 그래서 와 주어서 고맙다고...

그래야지요. 답하면서도 마음이 답답합니다.

선거가 코 앞인 우리의 의원들이 다음 공천을 목전에 두고서도 시민들의 영혼을 위로할 수 있는 역량을 지녔는지 생각했습니다.

늘 민의를 생각하는 사람들이니 아마도 그럴 것이라 다짐하듯 되네여봅니다.


터전 앞에 세워둔 차를 몰고 다시 회사로 갑니다.

가슴이 답답해서 회사에 도착해 주차를 하고는 클랙션을 있는데로 울렸습니다.


미래를 위해 이 산을

마포의 유일한 자연 숲인 이 산을

서울의 생태 축을 지키는 중요한 거점인 이 생태의 보고를

산 답게 과연 지킬 수 있을까요.

모두가 노력하니 반드시 그렇게 되겠지요.

꼭 그렇게 만들고 싶습니다.



오늘 귀한 시간 내신 산집 식구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29일 또 한번 모여야 할 텐데 그날은 오름도 가기가 힘듭니다.

먹고살려면 일을 해야 하지요.

그때는 또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희망을 안고 힘을 쓰겠지요.

모두를 믿는 마음으로 희망을 살아내야 겠지요.


지난 마을회의에서 샨티가 한 말이 생각납니다.

성미산 자주 오르기 운동을 하자고 했었습니다.

누구보다 성미산을 자주 오르는 마을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자주 가니 더 애착이 생긴다고...


우리도 이런 운동 거하게 한번 해 보는 건 어떨까요.

아이들은 매일 가지만 어른들은 아이들 만큼은 아니지요.

이제 해가 길어지는 시기입니다.

저녁 먹고 간식 조금 싸가지고 아이들과 함께 성미산에 가서 함께 모여 노는 것도 즐거울 듯 합니다.


오늘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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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오름, xdg]


산집에서의 일 년

공동육아에 산이를 보내고 나서 1년이 지났다.

다행이 결과가 좋았고 지금 산이는 그 어느 때보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하다.

1년이 지나고 나서 꼭 ‘1년 살이를 써야겠다.’ 생각을 했지만 이런저런 일들이 바빠서 조금 시작하다 말다를 반복하다 한 달이 지나서야 겨우 마음을 먹고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필 받으니 단숨에 써 내려갔다. 공동육아에서의 산이와의 1년은 참 흥미진진한 일들이 많았지만 대체적으로 마음이 통하는 이웃과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며 큰 힘을 주는가를 생각하게 한 시간이었다.

어린이집 게시판에 쓴 글을 다시 옮긴다.




산이 등원한지 벌써 1년이 되었습니다.

1년 사이에 많은 아마들이 산이 많이 달라졌다하십니다. 저희도 그걸 느끼고 있고 요즘은 그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른 것 같아 때로 긴장하기도 합니다.

얼마 전 날적이에 ‘잘 노는 아이’, ‘놀 줄 아는 아이’로 성장해 가는 산이 모습이 보기 좋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내심 그 말이 얼마나 고맙고 기쁘던지.


처음 산이를 데려온 날이 기억납니다. 그때는 영구터전으로 이사하기 전이었는데 산이를 안고 첫 면담을 하면서 이곳에 보내려는 이유가 “노는 데 투자하고 싶다.” 고 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산이 태어나던 해 초록비와 상의하여 집을 양평으로 옮겼습니다. 산이 태어나고 며칠 후 였지요. 산이를 시골에서 키우고 싶다는 바람이 강해서 집을 옮기긴 했지만 몇 달의 산후 조리 후 산이와 초록비가 양평집으로 들어왔을 땐 우리 가족의 첫 전원생활이 많은 계산 착오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먼저 이웃과의 거리가 너무 멀었습니다. 그 지역에 어떤 식으로든 충분한 사회적 유대 관계를 쌓아놓지 않은 상태에서 이사를 왔고, 해당 지역이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 아닌 전원주택 단지였기에 대문을 마주보는 집 하나 외에는 인가도 별로 없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어른도 고립감을 느끼는데 아이는 부모 이외에 사람의 온기를 느끼기 힘든 곳이어서 유난히 사회성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새로운 공간, 새로운 사람에 대해 반응하는 적응 기간이 상당히 길었지요. 그 때문에 세상을 살아가며 반드시 유지되어야 할 사회적 관계의 빠른 적용의 한 방법을 “놀이”에서 찾으려 했던 것입니다.

산이 등원은 쉽지 않았습니다. 9월에 등원해도 좋다는 통보를 받았지만 사정으로 인해 힘들었고 2월에 가서야 등원을 시작했지요. 구립어린이집의 가슴 아픈 추억이 없었다면 어쩌면 산집과 인연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첫 신입 조합원 교육 때 참고 도서를 읽고 산집 운영 방침에 대해 했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나들이 - 놀이에 투자하려 이곳에 왔기 때문에 매우 만족한다.

날적이 - 영롱한 보석 같은 존재다. 부모와 교사간의 막힘없는 소통이 이루어진다면 아이의 성장에 많은 도움을 줄 것 같다.

별명 또는 반말 문화 - 수평적 관계를 염두에 둔다면 환영. 자기검열을 늘 하도록 강요받았던 세대에 속한 사람으로서는 환영할 일이나 염려스러운 점도 있음.

마실 - 글쎄 가능할까? 의문점.


이것이 막연하게나마 비싼 돈 내고 ‘놀이에 투자하겠다.’고 왔다가 조합원 교육을 받으며 산집의 기본적인 운영방침을 접하고 느낀 점이었습니다.

그 날 이후 내심 산이를 산집에 보내면서 목표가 두 가지로 늘었습니다.

“놀이에 투자한다.”, “자기검열에 매몰되지 않는 아이로 키운다.”

스스로에게는 힘겨운 목표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놀이에 투자한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많은 다의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자기검열까지……. 산집을 다 믿을 수는 없어도 적어도 조직이 가지고 있는 저 정도의 자기 확신과 시스템에 대한 운영 지침이 확실하다면 함께 해 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났습니다.

모든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라 함께 해 볼만하다는 패기는 간데없고 일상의 바쁨 때문에 시스템에 기대어 1년을 보냈습니다. 출퇴근에서 자유롭지 못한 맞벌이 부부라 산이는 가장 먼저 등원해서 가장 늦게 하원 하는 아이 중 하나가 되었지요. 대략 하루 10시간에서 11시간 정도는 터전에서 지냅니다.

결론적으로 바라보면 시스템은 훌륭했던 것 같습니다. 시스템이란 참 희한한 생명체라서 분화된 여러 요소들이 자기 일을 하기만 하면 단지 자기 일을 했을 뿐인데 그 일로 인해 모든 운영 체계가 무리 없이 작동하게 되는 이상한 놈입니다.

일 년을 보내며 생각해 보니 산집을 위해 한 것이 별로 없습니다. 소위 모임 몇 번 갔고, 방모임 몇 번 갔고, 매달 돌아오는 청소 몇 번, 소풍, 모꼬지, 열린 마루, 총회, 교육, 대청소, 마을 운동회, 마을 축제……. (얼마 없는 게 아니었군요.) 하여튼 이런 일들만 했을 뿐인데 그 사이 산집의 시스템 아래서 산이는 많이 성장했습니다. 그냥 크기만 한 것이 아니라 성장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아래의 글은 신입조합원 교육 때 했던 이야기들에 비추어 산이네 집 가족의 산집 생활 소감을 오름의 독단적인 생각으로 적은 것입니다. 쓰는 김에 아쉬운 점, 또 이랬으면 어떨까 하는 어설픈 제안도 함께 써 보았습니다.



나들이

소감 : 역시 만족합니다. 매일 반복되는 산집의 중요한 행사이면서 아이들에게도 중요한 일과. 나들이 안 갔다 오면 오후 생활 동안 아이들이 짜증 많이 낸다며 나들이 선호하는 교사들의 말을 들을 때면 더 만족합니다.

아쉬움 : 5일 등원하는 데 월요일 모둠으로 나들이가 빠지는 것이 사실 매우 아쉽습니다. 또 악천후(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이 더우나, 날이 추우나) 시라도 터전에 숨어 있기보다 간단하게라도 동네 한 바퀴 돌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나들이에 대해서는 언제나 “조금이라도 더” 라는 목마름이 터전 전체의 흐름이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제안 : 가능하면 나들이 못나가는 날에는 동네 한 바퀴 맴도는 나들이라도 늘 했으면 합니다. 안 공기보다 그래도 바깥 공기가 좋을 때가 더 많으니까요. 그리고 늦어도 10시까지 등원 캠페인 적극 찬동입니다. 어떤 공동육아는 모듬까지 하고도 10시 정각에 나들이 나간다고 합니다. 우리도 그런 모범 사례를 말할 수 있는 어린이집 간절합니다.



날적이

소감 : 영롱한 보석 같은 존재라 했지만 초반 열심히 쓰다가 요즘은 쓰는 것이 영 시답지 못합니다. 자주 빼먹고 아이의 성장을 위한 의사소통이기보다는 아이 일상 보고서가 되어 버린 듯해요. 스스로도 많이 반성할 부분입니다. 사실 매일매일 쓰는 것도 힘겨운 일이더군요.

아쉬움 : 날적이가 이번 연도에 많이 변했습니다. 거의 공동 날적이화 되어 가고 아이들의 이름이 빠지는 것으로 방모임에서 이야기가 되었던 모양입니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아쉽습니다. 아이의 이름을 호명한다는 것은 아이 개인 개인에 대한 교사의 관심도를 나타내 것 중 하나이고 개인적 인격에 대한 탐사 보고서와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이 매일 날적이를 통해 표출된다면 언제나 아이 하나하나 모두를 챙기게 되는 제도적 장치(일명 시스템)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하여튼 아마를 해 보니 날적이는 한편으로는 계륵 같은 존재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 자는 짧은 시간에 모든 아이들에 대해 한마디씩 하는 것은 너무 힘겨운 일인 것은 사실이니까요. 그래도 어제 공동 날적이에 갑자기 아이들 이름이 거명되어 짜릿함을 느꼈는데 이런 아쉬움의 발로인가 봅니다.

제안 : 날적이를 자꾸 쓰다보면 늘 반복적인 생활보고서가 되는데 평상적인 글쓰기보다는 주제를 가진 날적이 쓰기를 제안해 봅니다.

즉, 이번 주는 아이의 친구 관계에 관점을 두고, 다음 주는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에 관점을, 다음 주는 좋아 하는 책 등 아이의 사생활에서 철학적인 부분까지 주제를 정해 그 주제의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이 듭니다. 책을 한권 정해서 그것의 순서나 필요한 부분을 가지고 해도 좋고, 교사가 정해도 좋고, 아니면 교사와 교육 소위가 머리를 맞대고 1달 계획을 정해 주어도 좋고. 하여튼 해당 주제에 맞게 아이를 바라봄으로서 아이 성장과 아이와의 관계의 다양한 면을 조명할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요즘처럼 생활보고서가 되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조금은 강제적인 주제를 가지고 아이를 바라보게 되면 스스로에게도 아이를 성장시키는 여러 생각들을 할 수 있을 것이고 더 많은 고민 역시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방 모임 때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다면 좋은 토론과 지침들을 그 안에서 캐어낼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럴 수 있다면 날적이가 아이 성장의 매일의 보고서인 동시에, 아이를 더 성장시키기 위한 부모와 교사의 고민의 흔적이며 또한 토론장이고 지침서라는 본래적 의도에 더 부합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별명 또는 반말 문화

소감 : 의외의 변수였습니다. 사실 처음 산집을 보낼 때 별명과 반말에 대해 기대 반 우려 반이었지만 결과는 홈런이라고 생각합니다.

산이는 이 시스템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감을 확연히, 그리고 더 강화시킨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권위는 존재할지라도 수평적 관계에서는 상하적 명령 체계가 작동되지 않는 경향이 많습니다. 회사에서도 팀제를 시행하다 보면 팀장을 제외하고는 업무 중 직급 체계가 무너지고 점차 평등한 의사소통이 자리를 잡는 느낌을 받는데 터전에서도 그런 것 같습니다. 산집의 아이들은 일방적인 명령을 받아 순차적으로 행동하는데 익숙하지 않습니다. 요구 사항에 대해 왜 그런지 끊임없이 묻고 교사 건 부모 건 그것에 대해 끊임없이 답변하고 이해시키는 과정이 발생하더군요. 개별 모둠이나 전체 모둠 역시 그런 역할을 하지요. 아이들에게 지시하는 것이 아닌 무언가를 설명하고 의견을 모으고 함께 하려는 의지를 다지는 형태의 모둠은 너무 좋은 교육 방안의 하나라 생각합니다.

얼마 전 산이로부터 들은 말이 있습니다. 마실을 갔을 때라 때를 부리는 것 같아 불편했지만 집에 돌아와 생각해 보니 그 말이 가지는 의미가 범상치 않아 지금도 가슴에 남았습니다. 그 말은 “그렇게 약속하지 않았어.”라는 말입니다.

마실 간 산이를 데리러 가는 길에 딸기를 조금 사 갔는데 딸기를 좋아하는 산이는 사온 딸기를 보고 그것이 자신의 딸기라며 움켜지고 안 놓는 통에 여기서 먼저 먹고 남으면 가져가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집에 가자며 일어서려니 그 약속을 지키라 했던 말입니다. 선물로 가져간 건데 그것을 되가져 가겠다니 어른의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웠지요. 하지만 돌아와 생각해 보니 아이는 사회적 개체로서의 자신의 존재감이 어떻게 인정받고 있는지에 대해 어른들끼리의 약속 관행에 비추어 처리해 달라는 되물음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시의 위기를 모면하고자 너무 쉽게 약속하고 그 약속을 쉽게 파기하려한 어른의 잘못을 아이가 때를 쓴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닌가 반성이 되었지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선물로 가져간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설명할 필요가 있었던 겁니다.

아이는 자신이 요구받은 상황에 대해 반응합니다. 그 반응이 상하적 관계에서 지시된 데로만 훈육되면 요구에 대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조건 없이 수궁하거나 더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울거나 때를 쓰는 방식으로 분을 토하는데 요즘 산이는 왜 그래야 하는지를 오히려 계속 되묻고 어느 정도 만족한 답(또는 대안)을 받으면 그때서야 수긍을 합니다. 그렇게 주고받는 수평적 반응 자체가 아이의 정체성을 확립해 주고 자존감을 높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런 것들이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교사와의 의사소통에서 수시로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니 “아! 시스템의 놀라움이여! 별명과 반말에 담긴 관계성이여!” 하고 찬사를 보내게 됩니다.

또 다른 관계 : 이 놀라운 시스템은 아이들과 교사와의 관계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이와 아마들 사이에도 나타나는 것 같아요. 이전 구립을 다닐 때는 산이와 같은 반 아이들 이름을 전혀 몰랐지만 여기서는 모든 아이들의 이름을 다 알고 있고 대충 성격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들도 내가 산이 아빠 오름이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게 스스럼없이 오름이라 부르며 ‘안아 달라. 그림 그려 달라. 책 읽어 달라.’ 말할 수 있는 관계가 된 것은 이런 시스템에 기인하는 것 같습니다.

며칠 전 하원 하는 길에 산이는 터전으로 들어가는 삐삐를 보며 “삐삐. 애기 축하해!” 하고 말하더군요. 삐삐는 “고마워. 산아.”하며 지나갔지요. 요즘 홈페이지에 거의 접속 못한 오름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삐삐의 임신 사실을 알고 있던 산이가 먼저 인사를 한 것이지요. 산이에게 대충 이야기를 듣고 집에 와서 초록비가 확인을 해 준 다음에서야 “아! 이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자연스러운 대화는 아이와 어른의 대화라기보다는 친한 친구끼리의 대화 같았습니다. 아이와 아마들 간의 관계 역시 수평적인 평등성이 효과를 발휘하는 모양입니다.

또 하나 빠질 수 없는 것은 부모와 교사, 부모와 부모 간의 관계에서도 좋은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 조건이 다르고 나이 차이가 나는 부모들끼리도 별명을 부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반말도 함께 병행하게 되는데 처음의 낯섦이 지나고 나면 마치 오래된 친구나 초등학교 동창들처럼 어울리게 되는 힘이 발생합니다. 이것이 터전 생활에 큰 힘이 되어 주지요. 그 밑바탕에는 별명과 반말이라는 시스템의 힘이 밑받침하는 것 같습니다.

제안 : 이 시스템은 한편으로는 부모와 부모들, 부모와 교사 사이의 관계 맺음에서 어색함을 표출하게 할 때도 있습니다. 부를 때는 별명을 부르고 그 다음 말부터는 어색해 지지요. 높임말, 반 높임말, 평체 등 왔다 갔다 합니다. 어떤 때는 내가 잘못 말한 건 아닌가 자기검증을 거쳐야 할 때도 있지요. 그래서 이 시스템을 교사와 아이의 관계 뿐 아니라 어린이집에 모여 있는 모든 구성원에게 동일하게 적용하도록 규약하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연령 차이가 나고 아직 함부로 말하기 힘든 신입 조합원도 있습니다만 모두 그렇게 정해 버리고 말 놓고 의사소통하면 좀 더 편안한 상태가 되지 않을까요?



마실

소감 : 글쎄 가능할까? 의문점을 내포했던 일이지만 가능하더군요. 처음 오름과 초록비는 산이를 등원시키고 그 한 달간은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오름이 휴지기를 끝내고 출근을 시작했고, 초록비도 직장을 파주로 옮겼던 그 달이었기 때문에 등원과 하원 시간 맞추는 것이 보통 힘든 것이 아니었지요. 아직 터전 생활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산이도 문제였고 회사에 적응하는 것도 문제였고, 신입조합원 교육과 몇 가지 일로 주중 저녁에 터전에 자주 가야했는데 그것도 힘겨웠습니다.

아마 그때 ‘가능할까?’ 생각했던 마실을 지금처럼 했더라면 부담을 훨씬 덜했을 텐데 라는 생각 요즘 자주합니다. 오죽했으면 아침 등원이라도 어찌 해결해 보자는 생각으로 오름이 차를 몰고 아침7시에 아이들을 모두 수거(표현이 격하지요.)해 와 터전에 부려놓고 출근하면 등원 걱정이라도 덜지 않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요즘은 초록비도 늦고, 오름도 늦는 날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마실 보내자.” 미리 약속하고 다른 집의 정서를 느껴줄 요량으로 마실을 해야 하지만 아직 저희 부부에게 마실은 하원 시에 급하게 아이를 맡길 곳과 동의어처럼 쓰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도 아이가 같은 조합원 집에서 친구와 함께 놀면서 있을 생각을 하면 적잖이 안심이 됩니다.

아쉬움 : 신입 조합원 때는 마실이 참 어렵습니다. 아직 안면도 다 익히지 못한 터에 덥석 아이를 맡기기도 힘들고 어찌 생각할지도 그렇고……. 도우미가 있기는 하지만 잘 활용하지 못했지요. 그래서 조합 차원에서 신입 조합원이 들어오면 마실을 활성화할 수 있는 여러 장치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무엇보다 신입 조합원과 기존 조합원이 빨리 친해질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더 빨리 적응이 되겠지요.

제안 - 마실을 위한 조건 : 마실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 조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마실의 개념을 잘 세울 것’입니다. 마실의 전제는 저희 집도 그렇지만 “아이를 맡기는”이라는 전제가 조합원 전체를 관통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실을 보낼 때는 미안하고 부담됩니다. 마실이 “아이를 맡아준다.” 그래서 “고생한다.”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평소 먹던 것으로는 안 되고 무언가를 준비해야 하고, 후식도 만들어 놓고, 가능한 생협 음식이어야 하고 등의 불편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생각이 깔리다 보니 마실은 필요하면서도 편치 않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마실을 주로 보내는 가구들을 보면 하원에 부담을 느끼는 집들이 대부분이고 하원에 부담이 없는 집들은 거의 마실을 보내지 않는다는 점에서 심증이 굳어집니다.

이 때문에 조합에서도 마실에 대한 개념 정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마실을 “아이를 맡긴다.”에서 “공간을 바꾸어 함께 놀게 해 준다.”, “조합원 간의 우정을 쌓는 기초를 제공한다.” 등의 생각으로 확실하게 인식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정 주기마다 이런 개념의 마실을 유도하도록 제도적인 장치들을 함께 마련해 주는 것도 개념의 변화와 정착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급하게 아이를 맡겨야 할 때에도 ‘고생스럽게 맡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바꾸어 우리 아이와 함께 놀아 줄 친구를 받는다.’ 개념이 정착되면 아이 마실이 불편하고 힘들다는 생각 자체를 조금은 누그러트릴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하나는 부담 없는 마실이어야 합니다. 맡긴다는 생각이 강해지면 아이를 맡긴 후 가볍게라도 사례를 하게 됩니다. 주로 비싸지 않은 간식들을 사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이웃 간의 정을 생각하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조합에서 이런 부분은 마실의 정착을 위해 특별히 스페셜한 마실(저녁 초대와 같은)을 제외하고는 금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저희 집의 경우를 보면 가끔 마실을 할 때면 다른 준비 없이 집에 있는 반찬으로 저녁 먹고 아이들 놀게 하는 것이 다 일 때가 많습니다. 가끔 반찬거리가 없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냉장고 깊숙이 숨어 있는 냉동 음식들이 비로소 처리되는 일도 있지요. 대체적으로 아이들 마실은 하는 사람이 더 편안합니다. 산이 혼자 있으면 계속 놀아주어야 하지만 마실을 오면 자기들끼리 노니까 더 좋지요. 밥 먹이고 치우고 나면 책이라도 읽을 수 있으니까요. 별 고생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더 편안했는데 상대가 부담스럽게 손에 무언가를 들고 오면 그땐 더 난감입니다. 마실이 편안한 소통처럼 될 수 있게 하는 여러 방안을 이럴 때 조합에서 제시해 주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제안 - 마실 활성화 : 그런 의미에서 두 가지 정도의 마실을 제안해 봅니다.

하나는 일명 “마실 네트워크”라는 것입니다. 사실 저의 집도 마실 그러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몇몇 집에만 보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좀 더 편하고 이미 마실한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터전의 가구가 30여 가구인데 그 중 한 번도 가지 못한 집이 더 많습니다. 그런데 마실을 한번이라도 하게 되면 아무래도 그 가구와 더 친해집니다. 그래서 “마실 네트워크”는 ‘모든 가구와 마실을 하며 네트워크를 만들자’ 그런 뜻으로 제안하는 것입니다. 마실 네트워크 표를 각 가구마다 만들고 한 번도 마실을 가지 못했거나 초대하지 못한 집을 방문 또는 초대하는 집중 기간을 정해 모든 가구가 그 기간 동안은 한 번도 가지 못한 가구나 가장 적게 마실 간 가구를 방문 또는 초대하는 약속을 잡고 마실을 하는 것이지요. 한 달에 일주일에서 10일 정도의 기간을 정해 월례 행사로 해 보면 좋을 듯 합니다. 그 기간 중 마실 한 집이 최소한 몇 집은 되어야 한다는 것도 정하면 좋겠지요. 그리고 마실 후기를 홈페이지에 올려 칭찬도 하고 흉도 보고 하면 재미있을 것입니다. 물론 가능한 아이 마실이 아닌 부모 동반 마실이어야 겠죠.

또 다른 하나는 “문화 마실”입니다. 토요일 일하는 집들도 있지만 노는 집들도 많이 있습니다. 주말의 고민은 언제나 아이와 놀아주는 것에 있지요. 부모도 쉬는 날 문화생활을 즐기고 싶지만 쉽지 않습니다. 욕구는 있는데 아이와 함께 있으면 불가능에 가까울 때가 많습니다. 이럴 때 두서너 집이 모여서 토요일 오전 또는 하루를 한 집에서 아이들 마실을 하고 다른 집은 문화생활을 즐기는 것이지요. 영화를 보거나 연극을 보러 가거나 등산을 다녀도 좋고……. 부부끼리 가거나 단체로 가도 좋고……. 마실을 하는 집은 아이들이 모여 어울려 노니까 놀아 줄 걱정 없이 다른 집안일을 해서 좋고……. 부모들은 쉬는 날 모처럼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으니 좋고……. 일요일은 쉬어야 되는 집도 많으니 토요일쯤에 함께 또는 따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조를 짜도 되고, 아니면 마음 맞는 가구끼리 모여도 되고. 저희 집도 물론 가능합니다. 아직 아이를 받을 수 있는 한계가 3명입니다. 아이들 숟가락이 3개뿐이라……. 하지만 곧 보충이 되니 그때에는 숟가락 수만큼 가능합니다. 토요아마와는 성격 다르다 할 수 있어 적어 보았습니다.




며칠 전 산이와 생협을 들렸습니다. 산이 벌써 동네 사람들을 많이 사귀어서 인사하고 장난하고 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면서 잠시 동안 흐뭇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산이 초등학교는 시골로 보내자 초록비와 상의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의도가 자연과 함께도 있지만 저런 모습 보자 했던 것도 있었으니까요. 서로 인사하고 안부를 물을 수 있는 동네. 아이가 스스럼없이 동네 어른에게 인사하고 장난을 걸어도 귀엽게 받아 줄 수 있는 동네. 그 동네가 만들어지는 기초 위에 있는 성미산 어린이집. 그리고 그 안에서 삶을 배우고 성장하는 산이.

그런 모습들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그래서 생각건대 지난 1년. 가장 잘 한 일은 역시 산이를 성미산 어린이집에 보낸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가장 큰 성과로는 역시 산이의 멋진 성장이고, 두 번째는 삶에 대한 같은 지향을 가진 이웃들을 너무 많이 가지게 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사이에 늘 수고해 주신 교사들. 정말 교육에 출자했다는 말에 걸맞게 좋은 교사들을 만난 것도 행운이었던 것 같습니다. (올 해도 계속 수고해 주실 거죠. 믿습니다.) 지난 한해 산이 뿐 아니라 산집의 모든 꼬마 친구들에게 너무나 멋진 원더우먼(지난 스승의 날 편지 기억하시나요?)이었던 산집의 모든 교사들(시스템의 당당한 수호자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산이의 일 년을 보내고 나니 새삼 이런 마음 깊어집니다.

특히 단지와 애벌레에게 많은 감사를 드립니다. 애벌레에게는 고마움과 미안함이 함께입니다. 잠시 동안이지만 믿지 못해서 당황하게 만들었는데 그 일은 지난 해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했던 가장 불미스러운 일 가운데 하나였고 오랜 동안 마음의 짐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왜 그랬을까 의아스러울 만큼 스스로에게도 당황스러웠던 일이었죠. 하지만 그 일은 스스로를 많이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애벌레에게도 다시 한 번 사과하고 그 일이 성미산 마을에서 함께 성장하기 위한 성장통이었기를 기원합니다.

산집을 함께 키워가는 멋진 조합원, 아마들에게도 다시 한 번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산이 만을 바라보고 찾아왔는데 일 년을 보내고 나니 갑자기 오름과 초록비에게도 소중한 이웃들이 많아졌습니다. 이것은 전혀 생각 못한 행운이었습니다. 오랜 기간 아옹다옹하면서 소중한 정 나눌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쓰다 보니 글이 길어졌네요. 산이 일 년을 생각하니 그만 장황해 졌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스템과 함께 한 일 년, 그리고 앞으로도 좋은 시간을 더 보낼 수 있다 생각하니 필 받았나 봅니다. 초록비는 지금 살고 있는 곳도 멀다며 터전 근처로 이사 와야 한다고 요즘 성화입니다. 오름 역시 가능하다면 그러자고 합니다. 산이는 산집에서 겨우 1년을 보냈지만 그 덕에 산이네 가족은 점점 성미산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참 산이는 산집에서의 일 년을 어찌 생각하느냐고요?

물론 좋다고 합니다. 하지만 엄마 아빠가 함께 있는 주말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엄마 아빠보다 터전이 더 좋다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지만 주말이면 심심해를 외치며 친구들이나 선생님들을 찾지요. 가장 좋은 것은 엄마 아빠와 터전에서 친구들과 선생님들과 함께 노는 것이랍니다. 아직은 어린애가 맞긴 맞나 봅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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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오름, xdg]


어린이집 첫 아마

"오름 언제 다시 아마야?"

"글세. 아직은 계획이 없는데......"

며칠 전 어린이집에 갔다가 연재가 언제 다시 아마를 할 것인지 묻는다. 내가 아마일 때 함께 갔던 인공암장이 나름대로는 재미있었나보다.

연재는 빨리 아마를 하라고 조른다. 옆에서 영택이도 찬동이다. 연재는 그날 재미있게 놀았지만 영택이는 그날 컨디션이 별로인지 즐거워 보이지 않았는데도 가고 싶단다. 어린이집 규정상 한 가정 당 일 년에 3번은 아마를 해야 한다. 교사들의 휴가와 각종 빈자리를 결국 부모가 채우는 것이다. 다른 어린이집이라면 불가능한 이야기겠지만 공동육아를 하는 부모들이 운영하는 어린이집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귀찮고도 힘든 그날이 되면 모든 힘겨움에 앞서 우리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함께 목도하고 함께 뒹굴게 된다. 집에서 함께 놀아줄 때의 산이를 보는 것과는 다른 느낌의 무언가를 만난다. 그래서 지난해 가장 잘한 일 중 하나가 산이를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래 글은 지난 10월에 첫 아마를 하며 아이들과 지낸 날적이다. 나중에 날적이가 과해 아이들 평하는 부분은 지웠다. 대표교사가 전화를 해서 가능하면 아이들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항상 보여주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했고, 나 자신도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 글은 그냥 날 것이다.

규정상 자기 아이가 속한 반은 맞지 못하고 큰방 아이들과 생활했다. 산이는 아빠 눈치를 보며 눈물 바람을 뿌려댔다. 그런 와중에도 유쾌하고 즐거운 날이었다. 비록 몸은 고되었어도.




초보 아마 오름입니다.

오늘 첫 아마를 했네요. 분홍이 대신 아마를 하는 것이라 도톨방을 할 줄 알고 내심 긴장했지요. 애기들과 뭐하고 노나 걱정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전날 나비방을 할 거라는 소식을 듣고 급 반전...

큰 애들이라 걱정을 많이 덜었습니다.


오전 9시 터전에 도착했어요. 거의 매일 산이가 1등으로 8시에 오는데... 덕분에 9시에 등원. 그런데 정작 산이가 떨어지질 않네요. 눈물 바람에 혼났습니다.

우유곡절 끝에 나들이. 물도 싸고, 물티슈도 준비하고. 나비들에게 오늘은 기어오르는 곳으로 간다고 했더니 일단 모두 찬성. 행단보도를 3번이나 건너야 한다고 하니 다들 좀 실망하는 눈치였지만 하여튼 출발.

간 곳은 에스트로맨 실내 인공 암장. 경성고등학교 4거리에서 청기와 예식장으로 조금 내려가면 SK 주유소가 있어요. 주유소 옆 송원전기라는 큰 간판이 있는 4층 건물 지하가 그곳이지요.

갑자기 건물 지하로 내려가자 아이들 실망하는 빛이 역력하네요. 하지만 인공 암장에 들어서자 환해지는 아이들. 떨어질 때 부상입지 말라고 30Cm 두께의 고탄력 스폰지가 매트리스처럼 쫙 깔려 있어서 푹신푹신해 아이들은 넓은 실내 암장을 막 뛰어 다닙니다.

먼저 아이들을 모아놓고 오름이 두 가지 당부를 합니다. 첫째 뛰어다니지 말 것. 매트리스 사이에 혹시라도 발이 걸려 넘어지면 다친다. 하지만 이 당부는 사실 별 소용이 없었어요. 혈기 왕성한 아이들에게는 좀 무리한 주문. 두 번째는 올라갈 때는 오름이 보는 데서만 올라갈 것. 인공 암장을 지을 것을 예상하고 만든 지하라 4M 높이. 혼자 올라가면 위험한지라... 이 약속은 모두 잘 지켰지요.

먼저 간단하게 턱걸이 놀이. 공중에 매달아 놓은 나무 봉에 매달려 턱걸이하는 기구에 아이들 모두가 도전했지요. 열심히 매달려 한두 개씩 턱걸이(?)를 합니다. 아이들은 별 힘든 기색이 없는데 아이들을 잡아 준 오름의 이마에서는 땀이 나네요.

그 다음 3.5M 높이의 직벽 올라보기. 아이들이 일렬로 줄을 서서 기다리고 한 사람씩 오름과 함께 올라보았지요. 손. 발. 지적해 주는 구령에 맞춰 몸이 움직여가니 어느덧 정상. 아이들 모두가 한번씩 올라 보았어요.

특히 여산이는 키도 크지만 몸이 유연해서 조금만 해 보면 잘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연재는 몸이 가벼워서 움직임이 좋았어요. 예은이는 팔 힘이 강해 힘이 넘쳤고, 승희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올라갔다 내려왔고, 채민이는 의외로 조금 힘이 부족했지만 끝까지 잘 했어요. 정민이 역시 깔끔하게 잘 올라갔다 왔고, 규형이도 작은 체구답지 않게 다부졌고요. 병준이 역시 쉽게 다녀왔어요. 재인이도 도움없이 잘 다녀왔고, 영택이는 조금 힘이 부족했지만 끝까지 올라갔다 왔지요.

그 다음 자유롭게 놀기. 벽에 붙기도 하고 넓은 매트리스를 무대로 뛰어다니고 기고 뒹굴다보니 어느덧 나들이를 마무리할 시간.


인공 암장을 나와서 터전으로 돌아갈 시간.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기네요. 아이들이 올 때와 달리 짝을 바꾸면서 소란이 생겼어요. 게다가 재인이는 인공 암장에서 아이들 몇이 모여 역할 놀이를 하던 것에 끼지 못해 마음이 상했지요. 채민이 누나 때문이라고 채민이와 입장이 갈리면서 상황이 묘해졌어요. 그래서 손바닥 위 아래 놀이로 짝을 새로 정하고 겨우 출발을 했는데 재인이는 앙금이 남았는지 마음을 풀지 않네요. 짝손을 거부하고 혼자 가겠다고 하는 통에 초보 아마 급 당황.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재인이 편을 들어주어도 재인이가 계속 더 나갈 것 같고. 결국 어찌어찌하여 손잡기를 거부하는 재인이의 손을 잡고 터전으로 귀환. 하지만 그 여파는 오래 갔어요. 재인이가 자신이 더 주장을 해도 되는 것으로 알아들었는지 낮잠 시간까지 여운이 갔으니... 그때는 재인이도 자신이 놀이에 끼지 못해 억울한 심정을 토로할 당시라 그 상황과 짝손을 하지 않은 것을 분리해 처리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던 것 같아요. 가능하다면 상황이 연결되지 않도록 끊어 생각하도록 이야기 할 필요가 있었던 것 아닌가 하는 반성이 되고 또 일차적으로 '갈 때 짝꿍'이 '올 때의 짝꿍'이라고 명확하게 이야기해주었다면 상황이 복잡하게 꼬이지 않고 오는 길이 좀 더 즐겁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돌아와서 식사시간. 어린방들 식사시킬 때보다 큰 방이라 확실히 편안하게 지나가네요. 이빨에 문제가 있다는 채민이, 규형이와 아직 시금치를 잘 처리해내지 못하는 영택이를 빼고는 모두 씩씩하게 식사를 잘해요. 영택이는 시금치를 조금 덜어주자 금새 밥을 다 먹었고, 규형이와 채민이도 끝까지 남기지 않고 잘 먹었어요. 또 놀라웠던 것은 아이들이 식사를 하고 나서 바로 치카를 스스로 한다는 것이었죠. 꽃다지가 그간 아이들에게 좋은 버릇을 가르쳐 준 것 같아요.


고모가 만들어 준 맛있는 점심 식사 후에는 마당놀이를 하고 낮잠을 자러 들어왔어요. 자리를 깔아주니 아이들이 스스로 옷을 갈아입고 잘 준비를 합니다. 4권의 읽고 싶은 책을 다 읽어 줄 때까지 오히려 눈이 말똥말똥. 책을 다 읽어 준 다음에서야 쉬를 누고 물을 먹겠다고 했다가 꽃다지에게 혼나고(잠자리에 들어오기 전에 쉬를 누고 물을 먹기로 약속을 했다네요.)... 잠에 들었지요. 규형이는 집안 일로 조퇴.


간식을 먹은 후에는 또 마당놀이. 아이들도 마당놀이를 원해서 마당놀이를 밀었지요. 마당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보니 한톨방이랑 또 다른 모습을 봅니다. 산이가 있는 한톨이들은 마당놀이를 할 때 대체로 같은 놀이들을 합니다. 모내놀이가 대부분인데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함께 모여서 노는데 나비들은 연령 대가 섞여 있어서인지 3가지 부류로 나뉩니다. 고무줄놀이를 하는 여자아이들. 축구를 하는 정민이와 병준이, 재인이와 영택이는 모래놀이. 마음대로 놀아보라 하니 잘 섞이지 않네요. 여자아이들 중에서도 예은이는 실내에서는 잘 어울리는데 고무줄놀이는 끼려 하지 않습니다. 매일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오늘은 그렇게 분리되어 보이네요.


저녁 6시. 드디어 오늘 아마가 끝나는 시간. 하루 종일 아빠 주위를 맴돌며 눈물 바람을 뿌렸던 산이가 빨리 집에 가고 싶다고 칭얼거립니다. 정말 하루가 어찌 갔는지 모르게 휙 지나갔네요. 그들 나름대로 조그만 사회를 이루고 있는 아이들 모두의 희노애락과 애증의 관계를 가슴에 담으며 초보 아마의 하루를 마칩니다.



아마를 마치며 느낀 점.

"다친 아이들 없이 잘 마쳐서 감사하다."

"아이들과 더 많이 친해져서 기쁘다."

"다행히 핸드폰이 울지 않아 편안했다."



다음 아마를 위해 개선할 점.

"아마를 하기 위해서는 해당 교사와 미리 많은 교감이 필요하다. 아이들의 상태와 연속성의 관점에서 보면 다른 방 부모가 아마로 올 때 많은 장애에 부닥친다."

"해당 교사 역시 아마에게 하루 일정에 따른 여러 가지 준비 또는 주의 사항 등을 알려주는 것이 좋겠다. 예를 들어 나들이 나갈 때 가져갈 것, 미리 약속한 짝손(올 때도 같은 짝), 자기 전 하기로 한 약속 등을 미리 아마가 알고 있으면 그대로 할 것이며 흐름이 좀더 매끄러워질 것이라는 생각이다. - 교사회에서 고민하고 반영해 주시길..."



오늘 나에게 보인 아이들의 모습(오늘 하루의 삶을 통해 본 오름의 사적 견해임.)

정민 : 무엇이든 잘 하지만 때때로 분쟁이 생겼을 때 그것을 내게 설명해 줄 때는 이전과는 다르게 왠지 위축된 모습을 보여준다. 혹 자신은 늘 양보를 해야 한다는 자기 검열성 스트레스를 받거나 누군가 자신을 평가하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해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재인 : 모두가 모일 때 앞에 잘 나서지 않고 뒤로 물러나 있다. 그리고 누군가 자신을 불러와 맨 앞줄에 앉혀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모습이다. 그러지 않으면 삐지는 편이다. 스스로 일을 만들어 내는 역할 모델이 필요하고, 칭찬과 냉정함 사이의 절묘한 줄타기가 필요해 보인다. 어쩌면 오늘 컨디션이 별로 인지도 모르겠다.

규형 : 누구나와 잘 어울린다. 특별히 모난 데가 없지만 잘 들어나지 않는다. 가끔은 내재된 에너지를 발산해 주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채민 : 자존심이 강하고 의사가 분명하고 처신에 대해서도 밝다. 싫고 좋음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것이 작은 사회에서는 정치적인 모습으로 보이는 부분도 있다. 리더로서 행동하지만 너그러움과 포용력이 조금은 아쉽다.

승희 : 그간 밝고 강한 모습을 주로 보았는데 오늘은 의외로 소심한 모습을 함께 보여준다. 기분이 상하면 자기 의사를 분명히 밝히기보다 침묵하는 편이다. 자기의 이야기를 하다가도 누군가 강하게 자신에게 어필하면 져 준다. 뜻밖에도 외적 지향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여산 : 신체적으로 가장 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스포츠 클라이밍이 장미빛 전망이라면 한번 권해 볼만도 하겠지만 그렇지 못하니 그러진 못할 것 같다. 오늘 여러 분쟁이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여산이에게만은 비켜간다. 관계의 설정이 뛰어나고 크게 두르러짐이 없어 그런 것 같다.

연재 : 모든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다. 특별히 싫고 좋음을 아이들에게 전파하지 않는다. 항상 모든 모임에 끼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져 버리는 듯한 느낌도 받는다. 자신의 주장으로 무리를 이끌어 가는 역할을 하지 않지만 항상 무리로부터 초대를 받는 재미있는 위치를 점하고 있다.

병준 : 특별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돌아보면 모든 자리에 항상 있는 형국이다. 일명 배후세력이라고 할까. 두루 영향력을 끼치지만 그 자신은 그리 들어나지 않는다. 차분한 성격이지만 때때로 빠르게 흥분하기도 한다.

예은 : 활달하고 사색적인 아가씨. 무리와 잘 어울려 놀지만 때때로 무리에서 떨어져 혼자 있는 경우가 있다. 특히 야회놀이에서 그랬는데 자신이 잘 알고 잘 하는 것이 아니면 돌아서는 편식은 아닌가 잠시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도 너무 활달하고 격이 없어서 오름만 보면 몸놀이를 하자고 달려드는 야성미 때문에 때때로 오름이 피하기도 한다는...

영택 : 주로 재인이와 아웅다웅하며 노는 편이다. 전체적인 교류 면에서는 아직 폭이 넓지 않고, 무리에 끼려는 노력도 소극적인 편이다. 그러다 보니 자기방어 본능이 자주 들어난다. 산이의 모습을 보는 듯한 느낌. 산이처럼 주변에서 아직 도움을 많이 주어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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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오름, xdg]


아내여

[##_1C|1297856122.jpg|width="416" height="675" alt="아내여,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_##]

아침에 잠깐 집사람과 가벼운 언쟁을 하고 나온 후에 마음이 언잖았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아내에게만 국한된 일이 아닌데 아침이면 늘 동동거리는 것은 아내다.

맞벌이로 같이 일을 하고 힘들게 집으로 돌아와서도 아이를 돌보는 일의 상당 몫은 아내가 책임진다.


회사로 출근하며 잠시 반성.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는 아이.

그 무엇도 나에게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는데 너무 가까이 있어 잊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창밖을 서성이다 한 동안 닫았던 글 줄을 풀었다.

오랜 만에 글을 쓰니 힘들었으나 아내를 위해 머리를 싸맸다.

글은 진부하다 못해 애초롭다.

허나 생긴데로 살아야 하니 할 수 없는 일.

그림을 첨부해 메신저로 살짝 올려둔다.


아내는 받아보고는 피식 한다.


그 마음이 내게도 전해진다.


사랑하는 이여.

오로지 사랑하는 이여.

한평생을 함께 할 반려자여.


금술 좋은 사이로 끝까지 남아 우리 사랑만 하며 살아가자.


오늘 가벼운 언쟁이 그 동안 잊었던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길을 보여준다.


이런 것이 산다는 것이리라 생각하니 삶이 고맙다.


삶을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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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오름, xdg]


조선일보를 구독하다.

조중동 폐간

집 문 앞에 붙여 놓은 조중동 폐간 촛불 소녀.

얼마 전의 일이다. 거래처를 방문하기 위해 차를 몰고 가는 중이었다. 전화벨 소리가 울리더니 아리따운 아가씨의 목소리가 흘러 든다. 차분하고 사람의 마음을 진정시키는 상냥한 목소리. 내가 좋아하는 류다. 그런데 그 아리따운 목소리에서 흘러 나온 내용인 즉 고교동창회와 연관되어 모 신문사의 문화 센터와 어쩌고저쩌고 하는데 가입하겠냐는 안내였다.

순간 피식 웃음이 났다. 동창회를 빙자해 또 누군가가 개인 정보를 팔아 치웠나? 아니면 저쪽에서 이름을 파는 건가? 슬며시 화가 났지만 천진한 목소리를 굳이 방해하기 싫어서 "지금 운전 중인데요. 다음에 하시죠." 했다. 그랬더니 상대방은 내가 관심을 보이는 줄 알고 "그럼 몇 시에 다시 걸면 좋으실까요?" 한다.

이럴 땐 어찌해야 할까. 눈치 없는 아가씨는 그것이 점잖은 거절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아니면 구태여 모른 척 수작을 부리거나. 이럴 땐 단도직입적으로 하지만 굳이 상대방을 긁을 필요 없는 단호함이 필요할 때. "기분 나쁘게 듣진 말아요. 실은 나 조중동을 아주 싫어하거든요." 상대방도 눈치를 차렸는지 "아! 네." 한다.

사실 상대방에게는 탓을 하고 싶지 않다. 목소리만으로는 기분 좋은 상대. 하지만 그를 고용한 자들은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그날 내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그게 다다.


"조중동"이라. 우리나라를 쥐고 흔드는 대표적 언론(?)이다. "언론"이라는 이름만 빌리자면 논할 자격이 없으나 강력한 시장 지배력으로 여론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축이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이라는 것이 시대를 살아가는 자들을 슬프게 한다.

나의 아버님이나 장인 어른과 대화를 할라치면 똑같은 사안인데도 그 벽을 넘을 수 없게 장벽을 만들 자들. 세상을 자신들 마음 데로 재단할 수 있다는 오기와 신념을 가진 집단 정도. 하지만 그 목표는 자신들의 권력 사유화와 자신들의 이익에 맞는 세상 만들기 정도일 뿐 여론이라는 것을 통해 시류의 균형을 잡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려는 꿈은 없다.


그러니 집사람이나 나는 "조중동"이라는 말을 들으면 사실 피가 끓는다.

비록 한 아이를 키우며 이제는 아줌마, 아저씨가 다 되었지만 아직도 사회를 향해 무언가 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20대의 혈기가 우리 마음에는 여전히 용솟음 치고 있다. 그런 우리에게 시류에 따라 주장하던 논조를 언제든 바꿀 수 있는 철면피를 가진 "조중동"이란 이름은 단지 권력을 향한 집념을 위해 오직 자신들에 의한 유토피아 만을 꿈꾸는 그들만의 찌라시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미친소 플랜카드

동네에서 나만 건 줄 알았는데 동네를 산책하다 보면 참 많이 보인다. 다들 같은 마음이랄까...

촛불들이 더 높아질수록 사회에 대한 의무감은 더 고양되고 말 바꾸기에 신념마저 저버리고 지조조차 없는 조중동에 대한 공분은 높아진다. 그래서일까? 과천에서 미친소 플랜카드를 걸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부리나케 구해 집에 걸었다. 집 앞 도로로 나와 집에 걸린 플랜카드를 보며 지나왔던 많은 삶의 순간마다 침묵했던 과거를 반성하며 이제야 주권을 가진 국민으로서 분명한 목소리를 내는 것 같아 가슴이 뿌듯했다. 집사람과 두 손을 꼭 잡고 먹고 사는 일에 바빠 그 동안 미루었던 일들을 이제야 해 치운 양 기뻐했다. 그걸 보던 아들도 "와 우리 집에 깃발이 걸렸어" 하며 폴짝폴짝 뛰자 절로 마음이 우쭐해졌다. 역사적인 순간을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그 기록을 남겨 후에라도 그 순간 본인도 그 자리에 있었음을 뿌듯하게 해 주고 싶어서 그 긴 전경 버스의 장벽 앞에서 한 방 찍고 아들과 함께 "고시철회, 재협상하라", "조중동 폐간" "2MB OUT"을 소리 높여 불렀고 우리 집 대문 앞에도 촛불 소녀의 "조중동" 폐간 스티커를 붙였다. 동네 이웃들, 그리고 그들의 아이들도 함께 가 비폭력 문화제를 마음껏 즐긴 즐거운 한때였다.


배달 온 조선일보

아침마다 조선일보가 배달온다. 누가 볼까 얼른 치운다. 참 거시기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요즘 우리 집은 조선 일보를 보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구독 중이다.

"아. 정말 거시기하다."

빨간색 조중동 폐간 스티커 아래 매일매일 조선일보가 쌓인다. 그렇다고 조선일보가 대접받는 것도 아니다. 새벽이면 누가 볼까 얼른 집안으로 들였다가 재활용을 버리는 날만 되면 그날로 폐지 신세다. 굳이 얼굴을 돌려 읽지는 않는다. 마지막 자존심이라 해야 할까.


사연인즉 이렇다. 집사람이 다니는 회사는 제법 이름 있는 출판사다. 이름 있다는 것과 명망 있다는 것은 늘 통하지는 않는 법. 한편으로는 먹고 살려니 어쩔 수 없나 보다 싶고 한편으로는 지조도 없다 싶으나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일괄적으로 조선일보 일년 구독료를 내 주고 보게 만든 것이다.

이유인 즉 광고에서 유리한 조건을 받기 위한 것이고 또 다른 잡다한 이유도 끼었을 것이다.


사실 출판사는 신문 광고에 목맨다. 요즘 시대에 신문을 누가 읽나 싶겠지만 출판사의 입장에서는 그게 아니다. 소위 셀러가 되면 판매의 지대한 영향을 받기에 사재기를 해서라도 셀러에 일단 진입시켜 놓으려는 것이 출판사의 생리다. 생존을 위한 치열한 싸움의 하나라고 할까.

문제는 그 셀러가 대부분 교보문고를 중심으로 한 오프라인의 영향력이 강하다는 것이다. 온라인은 셀러보다는 오히려 노출 빈도수가 판매에 더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거의 모든 일간지에 매주 나오는 셀러의 순위는 대단한 공신력과 판매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그럼 신문 광고가 이것과 무슨 상관이냐고. 출판사의 신문 광고는 소위 독자를 위해 광고하지 않는다. 바로 서점을 위해 광고한다. 광고가 나간 날 서점 매대에는 책이 더 잘 보이게 올라간다. 아침 신문의 광고란을 보고 가판을 정리하는 것은 서점들의 오랜 관행이다. 그 때문에 영업자들도 어깨에 힘이 들어가 서점을 돌며 일명 "설레 발이"를 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노력이 셀러에 영향을 미친다. 독자가 광고를 보고 영향을 받았다면 금상첨화다. 게다가 광고를 하는 책은 서평 하나라도 더 써주고 토씨 하나라도 우호적인 것이 신문사다. 그러니 출판사들이 신문사의 광고에 목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마도 그 출판사와 조선 일보는 악어와 악어새처럼 얽히고 설켜 그런 지경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새로운 마케팅 차원에서 부수 늘리기가 동원되었고 우리 집 역시 그의 포로가 되었다.


이럴 땐 참 거절하기가 난감해 진다.

뜻하지 않게 관계사의 제품을 판매해달라고 할당이 들어올 때. 거래 은행을 옮긴다며 통장과 카드를 모두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할 때. 그런 모든 일들처럼 그 회사에 매여 있는 한 거절하기 힘든 일들.

그래 본다고 치자. 그 흔한 경품은 어디로 갔을까. 받은 바 없다. 기본이 6개월 공짜인데 그건 어떤가. 첫 달부터 돈 낸다. 단 회사가 지불해 준다. 아! 받은 것이 하나 있기는 하다. 매달 유아용 학습자 하나가 온다. 포장도 안된 달랑 잡지책 한 권 분량의 책이다. 유명 브랜드의 책이나 조선일보 자가 선명하게 찍혀있다. 경품이라면 경품이랄까. 관행 데로라면 저질 제품을 최고가에 산 셈이다.


그 모든 것을 접하고 나니 참 답답하다.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고민이 깊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아래처럼 해 볼까?

첫째 집사람 회사에 전화를 해서 이 일과 관련해 한판 붙는다. - 별로 좋은 일은 아니다. 자신의 일에 애착을 가지며 꾸준히 성장해 가는 아내에게 그것만큼 못할 짓이 없다. 직장 생활을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닌데 그 결말이 어떨지는 능히 짐작이 간다.

둘째 배달하는 아이를 기다려 돈은 일년간 줄 테니 굳이 여기는 넣을 필요 없다고 겁을 준다. 당장 시야에서 사라지니 좋기는 하나 절독 등으로 발행부수에 타격을 주자는 것에는 상통하지 못한다.

셋째 일단 구독 정지를 한다. 집사람 회사에서 말이 나오겠지만 그 다음은 나중에 생각한다.


"고민 중. 고민 중."


촛불 든 산이

먼 훗날 이 아이도 이곳에서 구호를 외친 민초들의 뜻과 의미를 이해할 것이다. 미래는 이 아이의 것임으로... 엄마와 아빠가 온 이유다.

전경 버스의 장막 앞에서

역사의 순간에 있었음을 알리는 증거 사진. 그러나 가져간 사진기는 능력이 부족하여 선명하게 찍을 수 없었다. 이럴 때는 장비 욕심이 난다.

촛불집회 간 동네 사람들

함께 갔던 동네 아이들. 금요일 저녁 모처럼 한가한 시간. 동네 사람들과 비폭력 문화제를 여한없이 즐기다 왔다.


살다 보면 참 난감한 경우가 이런 것이 아닐까. 아무리 개똥 철학이라도 누구에게나 살아가는 조그마한 신념은 있다. 좌충우돌 하는 아이에게도 넘어서는 안 되는 룰이 있듯이, 나에게도 사회를 바라보는 최소한의 이념이 있고, 사회적 책임을 가진 언론사 역시 그에 합당한 도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어그러질 때 사회를 기반하는 모든 것이 흔들린다. 그 때문에 "조선일보를 구독하는 우리 집"은 뜻하지 않는 부침에 힘겹다.


"조선" 그리고 "조중동". 헉 너희들은 정말 우리 스타일이 아니란다.

천심인 민심의 이익을 대변해 주고, 천심인 민심의 기대에 부흥해 주고, 천심인 민심의 간절함이 표현되어 질 때 그때 비로소 그대들의 가치가 언론이라는 이름으로 되살아 나는 것. 허나 지금은 그대들이 그 반대의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 또한 스스로의 성찰에 눈 감고 있으니 그것이 아쉬울 따름이며 그대들이 소멸해야 할 이유다.


아마도 빠른 시기 안에 우리 집을 잠시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조선"이라는 찌라시 마물은 곧 절독될 것이다. 기왕 터진 일 부수 줄이기 운동에 동참하게 된 것을 차라리 자랑 삼으리라 위안해 본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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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오름, xdg]


문호리 전원일기

벌써 양평을 떠난 지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내게는 힘들기도 했지만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양평으로 떠날 때도 그랬지만 서울 우리 집으로 다시 들어올 때도 참 많은 고민을 했다. 양평으로 간 것은 눌러 살 욕심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이 늘 뜻한 대로 되는 것은 아니니 큰 후회나 번민은 없다. 다만 가끔씩 기억이 난다. 눈이 올 때, 뜨거운 한 여름, 그리고 이산가족이 된 써니와 향기를 볼 때마다 생각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가끔씩 운전을 할 때 양수리에서 문호리 집으로 들어가는 이차선 길이 불연 듯 떠오를 때가 있다. 집사람과 나는 그 길을 강변이라고 불렀다. 북한강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는 그 길은 이름난 드라이브 코스 중 하나였지만 우리에게는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지금도 나는 그 길을 다 외우고 있다. 양수리에서 집까지는 약 11Km. 그 길을 달려 10분이면 집으로 가는데 60Km 제한이던 그 길을 매일 다니다보니 보통 80-90Km로 달렸다. 이 코너를 돌면 무엇이 나오는지 어디서 속도를 줄여야 하는지, 천천히 달리는 유람 나온 저 차를 어느 지점에서 추월해야 안전한지, 어느 지점이 상대편에서 오는 차가 앞차를 추월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지, 비가 오면 어디에 물이 고이는지, 눈이 오면 주로 어디가 빙판이 되는지...

그 길은 나에게 서울과 양평을 잇는 통로와 같은 것이었고 엑셀을 그렇게 밟았던 것은 가능한 조금이라도 빨리 서울을 버리고 양평 속으로 사라지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주말을 제외하고는 한산한 도로 탓도 있다. 하지만 아내에게는 그 길이 어쩌면 단절의 길었는지도 모르겠다. 매일 출근하는 남편과 달리 아내는 갓 출산한 아들과 양평집에 갇힌 채 이웃과의 소통 없이 지내야 했다. 새로 이웃을 사귈 시간도 많지 않았고 아내의 친구들도 양평으로 찾아오기에는 심리적인 거리가 너무 멀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양평집으로 친구들이 놀러오고 또 우리도 주말 농장에 땅을 신청하고 작게나마 먹을거리를 걷어내면서부터 안정감을 쌓았다. 또 어린 산이가 자라 펑펑 눈을 맞으며 아빠와 함께 눈사람을 만들 때는 표현할 수 없는 기쁨 속에 빠졌다. 산이는 뒤집기부터, 기기, 서기, 걷기, 말하기, 오줌을 가리는 것까지 양평의 전원에서 모두 해냈다. 덕분인지 큰 병치레 없이 무럭무럭 자라 주었다.


서울에 올라오니 그 모든 것이 그립다. 삶도 바뀌었다. 아내와 나는 직장생활에 바쁘고, 산이는 어린이집에서 하루를 보낸다. 귀엽지만 사나운 써니는 우리와 함께 지내지만 갇혀 지내는 신세고, 응석받이 향기는 장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처가에 있다. 생활인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왔다고 할까.

삶이라는 것은 묘한 굴곡이 있는 것 같다. 기쁨이 있으면 거기에 걸맞는 힘겨움이 있다. 그 둘의 무게는 지내는 동안에는 경중이 다르게 느껴지지만 지나고 나면 같은 무게였던 것 같다. 양평에서의 생활도 지금의 생활도 다 같은 무게의 즐거움과 힘겨움이 있으니...

한번 해 보았으니 다음에는 거처를 옮기는 수준에서 생각하지 말고 삶과 생활을 함께 옮기는 것을 고민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서 살아도 삶은 지나가고 이곳으로 옮겨도 인간이라는 삶은 계속됨으로...


아래의 글은 양평으로 이사하기 직전부터 쓴 간단한 메모다. 겨우 두 달 쓰고 만 글인데 처음에는 양평으로 집을 옮기는 소회를 쓰고자 시작했다. 하지만 회사일이 쌓이고 짬이 없어지자 띄엄띄엄하더니 2달 정도 지나니 더 쓰기가 힘들어졌다.

원노트에 썼던 내용을 다시 옮긴다.



2004/12/8

오늘 드디어 살 집을 계약했다.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의 산동네. 집은 좋고 깨끗하다. 집사람과 애기와 셋이 살기에는 벅찰 만큼. 가격도 시세보다 싸서 착한 계약을 했다고 할까. 대리인으로 나온 사람들이 솔직히 미덥지는 않았지만, 부동산에서 맺는 계약이라 어느 정도 안전하다고 판단했다. 부동산 아주머니는 뭐든 열심히 하려고 하는 것이 믿을 주었다.

이곳에 오기 위해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김부장의 조언은 마지막 결정을 하는데 많은 힘이 되었다. 앞으로 1년 또는 2년 정도는 여기서 살면서 많은 것들을 새로 익혀야 할 것 같다. 다만 아쉬운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외지고, 5분쯤 더 멀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 집 계약을 오늘 저녁에 하고, 집사람이 순산하면 그것으로 족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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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에게 전화가 오고 부동산에서도 전화가 왔다. 대리인들의 자격이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계약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는데 잔금 치르는 일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한다. 12/18일 입주를 하고 잔금을 바로 주겠지만 혹시 오늘 저녁 우리집 계약에서 문제가 발생할까봐 우리 사정에 따라 잔금을 입주 후 일주일 정도 미루는 것에 대해 대리인에게는 동의를 얻었지만, 정작 집주인은 그러지 못하겠다고 한다. 부동산에서 보증하는 특약을 하던가 아니면 입주일을 늦추는 안 중 고르기를 바란다. 대리인에게 주었던 계약금은 부동산에서 이미 찾아놓은 상태라서 집주인에게 송금하라고 부동산에 부탁하고, 집주인과는 다시 통화를 했다. 내일 오전 중에 연락을 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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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 계약하기로 한 사람들이 하루만 계약을 미루자고 하더니 다시 토요일 오후로 미루자고 한다. 일이 틀어지는 것일까? 만일 계약을 하지 않으면, 남을 기간이 일주일이라 천상 입주 날짜를 다시 조정해야 한다. 지난번 저녁에 집을 보러 와서 낮에도 한번 보고 싶단다. 토요일 볕 들어오는 것만 보고 계약을 하겠다고 한다. 이사 올 날짜는 18/19일이다. 도배와 장판을 해야 할 텐데 그 시간이 그들에게는 너무 빡빡하다.

나 역시 기왕에 가는 것이면 눈이 오기 전에 가고 싶다. 그러자면 계약을 하고 일정을 확정지어야 한다. 어차피 두고 가려고 했지만 미끼를 던졌다. 북박이 장을 놓고 가겠지만, 정수기와 가스렌즈, 김치냉장고 역시 두고 가려고 하는데 의향이 있냐고 복덕방을 통해 전했다.

더 신경 쓰지 않게 잘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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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귀녀와 통화했다. 자기 집과 가까운 곳이라 참 좋아한다. 지난번 계약에 실패한 신복리 집과도 통화했다. 그러고 보니 그 양반 이름을 아직 모른다. 이사 가면 좋은 이웃으로 지내자고 부탁했다. 좋은 사람들이라 잘 지내면 좋을 것 같다. 아직은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서 도움이 필요하다.


2004/12/9

아침에 집주인과 다시 통화했다. 일단 18일 입주하는 것과 동시에 잔금을 치르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혹시 문제가 생기면 잔금을 치를 수 있는 날짜에 입주를 하겠다는 단서 조항을 달았다. 집주인은 언제까지 주겠다는 특약을 부동산 보증으로 하나만 써준다면 본인은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한다. 아마도 대리인 자격을 놓고 부동산과 집주인 사이에 조금 틀어진 것이 있는 듯 하다. 부동산에서는 자신들이 보증할 한도가 넘는다며 하지 못하겠다고 한다. 간단한 일 같으면서 간단하지 않다. 토요일 계약 시에 일을 잘 처리해야 할 것 같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그나마 잘 풀려간다고 믿고 가야 하는 일이다.

몰릴수록 더욱 힘을 발휘하는 것은 아버지로부터 이어받은 나의 자랑이다. 동생도 그런 점에서는 닮았다. 어제 동생 사무실을 방문하고 많은 생각을 했다. 늘 대견스러운 녀석이지만 나름대로의 삶을 잘 꾸려가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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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어머님, 아버님이 미국으로 출국하셨다. 힘든 여행길이고, 아버님에게는 몇 번 남지 않은 여행길일 수도 있을 것이다. 따님 잘 보시고 좋은 여행하시기를 기원한다. 아버님, 어머님에게는 결국 집 옮기는 문제에 대해 말씀을 못 드렸다. 계약이 너무 늦어졌고, 첫 번째 계약이 불발에 그치면서 말씀드릴 기회를 놓쳤다. 여행을 하루 앞두고 말씀드리기도 그렇고 해서 집을 옮긴 다음 말씀을 드리려고 한다. 전원생활 자체를 어머님이 그렇게 달갑지 않게 생각하실 것 같아 좋은 여행길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 점은 후에라도 백배 사죄드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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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짐 하나는 덜었다. 어머님, 아버님의 미국행이 그것이다. 원래는 우리 아기가 태어나고, 부모님 미국 여행을 보내드리고, 바로 이사를 하는 것이 순서였는데, 우리 아기의 출산이 두주 가량 늦어지면서 모든 일정이 엉망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하늘의 뜻이니 할 수 없는 일. 배에 칼 대지 말고 무사히 순산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2004/12/11

아기는 어제 무사히 순산했다. 집사람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내심으로는 수술까지도 각오하고 있었다. 예정일을 두주나 넘긴 상황이라 허허 웃으면서도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해피엔딩으로 끝났고, 지금 이 순간만은 행복하다. 아. 사랑스런 우리 아기! 사랑하는 나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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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을 하겠다는 사람들은 다시 내일 아침으로 시간을 미뤘다. 계속 미루어진다는 것은 조짐이 좋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동산에 과연 그 사람들이 정말 계약을 할 의지가 있는지 물었다. 조금 짜증이 났다. 사실 그들이 이사 오기로 원했던 날짜가 18일이고, 이 시간을 맞추어 계약을 했다. 그리고 남은 기간이 일주일. 계약이 무산된다면 조금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다른 세입자를 새로 받을 때까지 우리도 입주 일자를 기다려야 한다. 양평 쪽 집주인과의 약간의 갈등이 있을 수 있다. 아예 계약금을 좀 더 높여주고, 입주 일자를 1월로 넉넉하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잘 될 것이라 믿지만 최악의 경우는 늘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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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님과 처제가 올라왔고 그와 동시에 부동산에서 새로 집을 보러 왔다. 계약이 계속 진행되지 않아 집을 보여주기로 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보러오겠다는 사람들을 거절했다. 형제인데 젊은 사람들이다. 일단 내일 오전까지는 다른 분이 결정해야 한다는 점을 말해 주었다. 윗집 아주머니에게는 간단하게 이사를 간다고 했다. 장모님, 처제와 다른 형제들이 한꺼번에 들이 닥쳐 이야기를 자세히 나누지는 못했다. 지난 3년간 정들었던 이웃인데, 언제 시간을 내서 한번 이야기를 해야 겠다.


2004/12/12

집사람과 퇴원해 처가로 조리를 하러 가야 하는 날이다. 장모님과 처제가 와서 한결 마음이 편하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겁다. 아침의 계약은 거의 무산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잔금을 치루는 문제에 대해 명확성이 떨어졌다. 중도금을 먼저 줄테니 설정을 먼저 해제하자고 하는데, 잔금에 대한 명확한 일정이 애매하다. 자기들끼리도 우왕좌왕이다. 그런 문제는 미리 결정을 하고 와야 하는데 이제까지 기다려 온 것도 있고 해서 짜증이 많이 났다. 부동산에게는 분명하게 이야기를 했다. 중도금은 필요 없고, 계약 때 계약금, 입주 시 잔금을 다 치르는 것을 원하고, 그와 동시에 설정을 해제하는 것으로 이야기했다. 중도금만 받았다가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그때는 처리가 아주 난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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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사태가 벌어진 듯 하다. 그쪽에서 제시한 잔금 일정에 대해 내일 답변을 준다고 한다. 부동산도 자신이 없는지 다른 쪽이 있으면 먼저 결정해도 된다고 한다. 결국 우리 계획은 다 틀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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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가로 가는 도중 전국부동산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제 봤던 형제들이 내일 계약을 하고 싶어 하다고 한다. 잔금 관련 부분을 확실하게 단도리하고 그러마 했다. 날짜도 이상하게 우리와 맞다. 최대한 빨리 이사하고 싶어한다. 절망에서 다시 희망으로...

절망이라고 할 일도 아니지만 찜찜한 것이 사실이었는데, 좀 개운하다.


2004/12/13

계약을 했다. 우리 아기가 눈에 밟혔지만 예기 나온 김에 해치우는 것이 좋을 듯 해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잔금은 금요일 치르기로 하고, 설정 역시 당일 해제하기로 했다.


2004/12/14

퇴근 후에 짐도 좀 치우고, 포상 이사도 계약했다. 원래 들었던 금액은 평일 기준이라고 한다. 주말 추가 요금 10만원, 책이 많아서 추가 요금 5만원, 사다리차 추가 요금 5만원, 양평이라 추가 요금 5만원. 그래서 서울 시내 평일 이사 기준 35만원이 60만이 되었다. 항상 책을 버리며 산다고 생각했는데, 웬만한 교수집 보다 책이 많다고 계약하러 온 여자가 푸념이다. 이사할 때 책 짐 무거운 것은 나도 잘 안다만...


2004/12/17

오늘 잔금을 다 확인했다. 이제 정말 이사를 가는 것 같다. 설정도 해제했다. 일주일 정도 걸린다고 한다. 세입자들은 전세권 설정을 포기했다. 법무사가 모든 서류를 준비해 왔다가 그냥 갔다. 살고 있는 집에서 전세금을 안 빼주어서 소송을 해야 한다고 한다. 나는 믿을 수 있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사는 일은 혹시 모르니 전세 보험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내일은 이사하는 날이다.


2004/12/18

이사하는 날.

아침부터 분주했다. 인터넷 뱅킹 이체 한도가 축소되어 있는 것을 미리 체크하지 못해 집주인에게 완전하게 송금을 하지 못했다. 이 문제 때문에 아침 내내 동분서주했다. 이사 갈 집주인에게 양해를 구했는데, 찜찜한 모양이다. 부동산에도 전화를 해서 사정을 이야기 했다. 그리고 오후에 먼저 부동산에 들려 결국 각서 한 장 써 주었다. 내일까지 입금 완납하지 못하면 어떠한 불이익도 감수하겠다. 이런 내용이다. 집주인은 그런 어려운 이야기는 직접 하지 않는다. 다만 부동산과 대리인을 통한다. 아주 강단 있는 여자 같다. 큰 사업을 한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상황을 확실하게 짚고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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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을 처리하는 동안 포장이사는 열심히 일을 한 모양이다. 평소에 혼자 다 챙겼던 것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어느새 짐을 다 쌓아간다. 다만 주차장에서 차 빼는 일 때문에 사다리차가 왔다갔다 해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그리고 5톤 트럭으로도 짐을 다 실지 못해 결국 1톤 트럭을 하나 더 불렀다. 6만원 추가. 포장 이사의 단점은 짐을 하나하나 포장하기 때문에 결국 짐의 부피가 더 늘어난다는 단점이 있다는 것을 새로 알았다. 짐은 더 안전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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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다 부리고 나니 7시가 넘었다. 자리만 몇 개 지정해 주고 난 다음에는 시키지 않아도 일들을 잘한다. 한 번 더 정리는 해야겠지만, 나름대로 만족한 부분이다. 책은 조립식 책장이 이 집과 맞지 않아 2층 한쪽에 쌓아두었다. 책장은 따로 주문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북박이 장이 우리 집보다 작아 옷 넣을 공간이 부족했고, 이불장도 따로 필요할 것 같다.

집이 바뀌니 필요한 부분도 바뀐다. 당장 필요한 것은 책장이고, 그 다음 필요한 것은 이불장 정도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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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와 써니는 바뀐 집이 맘에 드는 모양이다. 이곳에 와서 하루 종일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계속 갇혀 지내왔으니 자유로움이 상쾌할 것이다. 원래 계획대로 오늘부터 방목을 하려고 했지만, 결국 12시가 넘어 세탁실에서 재웠다. 좋은 개집을 준비했건만, 날씨가 너무 추웠다. 지난 3년간 자식처럼 키운 강아지들이다. 차마 안쓰러움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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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은 2층 집사람 공부방에서 잤다. 2층 두 개 방 중 작은 방이고, 짐정리가 다 되어 있기 때문이다. 2층은 전기로 난방을 하는 곳이지만 생각보다 따뜻했다. 집 전체가 천장이 높아 난방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난방을 위해 벽난로에 장작을 넣고 불을 붙였지만 여의치 않았다. 아직 요령이 없는데다, 나무가 젖어 있었기 때문이다.


2004/12/19

모처럼 온돌방에서 잔 기분이다. 결혼하고, 계속 침대 생활을 했는데, 나름대로 좋았지만, 온돌방이 그리운 것도 사실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부동산에 가서 인터넷으로 남은 잔금을 마저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다시 또 잤다. 마음 것 늦잠을 자고 일어나 간단하게 식사를 한 후에는 강아지들과 집 마당에서 함께 놀았다. 강아지들도 그동안 계속 갇혀있다 마음껏 놀 수 있어선지 무척이나 신나한다. 써니는 자기 영역을 표시하느라 여념이 없고, 향기는 나름대로 열심히 뛰어 다닌다. 이곳에 와서 그 동안 몰랐던 향기의 모습을 발견한다. 뛰어놀다가도 자주 소변을 본다는 것이 그것인데, 그간 향기는 대소변에 대해 매우 절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거의 실수하지 않고, 화장실에서만 용변을 보았었다. 주인과의 관계 때문에 스스로 통제해온 것일 테지 하고 생각하니 더욱 안쓰러움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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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들을 풀어 놓고 본격적으로 집안 청소에 들어갔다. 부엌과 안방, 안방에 딸린 드레스룸을 청소했다. 포장 이사에서 침대 위치까지 다 잡아 놓고 갔지만, 침대를 들어내고 그 아래까지 깨끗이 쓸고 닦았다. 어린 시절에는 손걸레질도 참 많이 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그런 것이 귀찮아졌다. 하지만 역시 손으로 빡빡 닦는 손걸레 질이 청소에서는 최고다. 청소한 것 같고, 스스로도 만족하게 된다.

모자른 옷장을 대신해 이전 집에서 사용하던 부품들을 이용해 드레스 룸에다 조립식 옷장을 만들었다. 좀 쫍은 감은 있지만, 사용할 만하다. 아직 공구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완전 고정을 시킬 수 없는 상황이라 이 점이 좀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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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집주인이 다녀갔다. 생각보다 젊은 여자라 조금 놀랐다. 집 잘 써달라고 당부를 한다. 그 동안 관리가 안 되어서 걱정했다고 한다. 이곳에 집을 얻기 위해 계속 다니면서 느낀 점은 적어도 이 동네에 집을 가진 사람이나 집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집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 노력한다는 점이다. 따로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이 집 역시 우리가 들어오기 전 새로 대문을 고치고, 2층 베란다를 수리해 놓았다. 집도 잘 지으려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 보다 유지하는 것이 언제나 더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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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는 드디어 벽난로에 불을 붙였다. 한번 해 보니까 요령이 생기는 것 같다. 벽난로 앞에 앉아 저녁을 먹었다. 밥을 먹자니 집사람과 애기 생각이 났다. 산이를 낳고 기뻐하던 집사람의 얼굴과 옹알거리던 산이의 얼굴이 너무나 선명하게 떠올라서 그리움이 사무쳐 진다.

집사람과 산이를 보려면 일주일을 기다려야 한다.


2004/12/20

이곳에 이사 와서 첫 출근이다. 아직 별다른 감흥은 나지 않는다.

아침에 밖으로 나오니 전날보다 쌀쌀하다. 강아지들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 어제 저녁 비가 와서 강아지들을 세탁실에서 재웠던 터라, 기온차가 좀 나서 걱정을 했는데, 아이들은 너무 명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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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조금 문제가 생겼다. 자동차 유리에 서리가 내려서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뜨거운 물을 한 바가지 부었더니 서리는 가셨지만, 일부는 남아 살짝 얼었다. 따라 나오려는 강아지들을 잘 단도리하고 회사로 출발.

집에서 양수리 삼거리까지는 11분, 하남 IC 입구까지 11분, 서하남 IC까지 5분 정도, 여기까지는 훌륭했다. 올림픽 대교 입구까지는 그런데로 흐름을 따라 잘 갔으나 잠실 종합 경기장 쪽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거의 한 시간을 보냈다. 한마디로 첫 출근은 실패다. 거의 10시가 다 되어 도착. 아무래도 다른 길을 생각해 봐야 겠다. 50분을 예상했지만, 2시간 가까이 걸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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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날이 너무 쌀쌀해 회사에 와서도 후회가 되었다. 강아지들을 안에 넣어 놓고 오는 것인데, 괜히 밖에 풀어 놓고 온 것은 아닌가 후회막급이다. 당장 가 볼 수도 없고... 밖에 있어도 따뜻하게 지낼 수 있도록 벽면이 있는 캐노프 텐트를 하나 주문했다. 자식처럼 키우던 강아지라 투자를 너무 많이 하는 것 같은 생각은 들지만, 그 편이 마음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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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퇴근하는 길은 한 시간 정도 걸렸다. 회사에서 올림픽 경기장 - 올림픽 대로 - 미사리 - 팔당 대교 - 문호리 이렇게 자동차 흐름을 따라 왔다. 올림픽 경기장까지 가는 길이 좀 막혔지만, 그 다음부터는 거의 막히지 않고 잘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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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니 써니와 향기가 반갑다고 난리다. 하루 종일 강아지들만 밖에서 이렇게 논 것은 아마도 처음이지 싶다. 하지만 여기 기온이 쌀쌀하다. 아니나 다를까 먹으라고 내 놓은 물통(바가지 모양의 물통)의 물이 3Cm나 얼었다. 얼은 물을 보니 강아지들이 새삼 처연하게 보인다. 덕분에 강아지들은 오늘 포식했다.


2004/12/21

오늘 출근길은 성공적이었다.

오늘은 하남 IC로 들어가지 않고, 미사리로 돌아갔다. 팔당대교에서 잠실대교까지 약 15분 정도 걸렸다. 시간상으로는 하남 IC에서 서하남 IC로 나와서 올림픽대교에서 올림픽대로로 나오는데 필요한 시간이 이정도 걸린다. 막히지 않는다면 더 빠르겠으나 그럴 길이 아님으로 결국은 미사리로 오는 것이 시간상으로 비슷하거나 빠르고, 통행료 800원도 절약할 수 있어 유리하다. 오늘은 잠실 대교 밑으로 빠져나왔다. 잠실역으로 가기 직전 우회전하여 올림픽대로 옆 사잇길로 빠졌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요약하면, 집에서 양수리까지 10분, 팔당 대교까지 10분, 잠실 대교까지 15분 총 35분이 걸렸다. 미사리길이 별로 좋지 않은데다 차도 많아 속도가 좀 느렸다. 잠실대교에서 사이길로 빠져나와 아파트 공사를 하고 있는 곳에서 좌회전, 다음 사거리에서 잠실 경기장쪽으로 우회전, 잠실 경기장 앞에서 다시 좌회전하면 그 다음부터는 직진이다. 회사까지는 20분 정도 걸렸는데, 신호등이 많고, 차가 많으나 흐름은 어느 정도 나왔다. 앞으로 출근시간을 좌우하는 것은 아마도 이 구간이 될 것 같다.


2004/12/24

집은 상당부분 치웠다. 아직 2층은 정리가 안 되었는데, 책장 주문을 안 했기 때문이다. 1층은 작은 방과 세탁실(보일러 실 겸)을 제외하고는 정리가 어느 정도 깔끔하게 되어 있다. 집에 훈기를 덥히느라고, 보일러를 조금 높게 틀어 놓고 다닌다.

그간, 주유소 아저씨와 친해졌고, 양수리 초입의 가게와 문호리 입구의 큰 슈퍼를 몇 번 방문했다. 거의 출퇴근만하고 있어서 아직은 이웃과 친해질 여가가 없다. 내일은 집사람과 산이를 보러 간다. 사실 산이보다는 집사람이 더 보고 싶다.


2004/12/25

아침에 게이트맨을 달았고 뒤이어 전화국에서 왔다. 인터넷 개통 때문이다.

크리스마스가 특별하진 않지만, 그래도 공휴일인데 와주어서 감사하다. 이 집에 일주일 정도 있으면서 어느 정도 적응도 되었고, 또 이 집에서 만족하지 못하는 결함 등도 보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방문하는 사람들은 이 집이 무척 부러운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달라야 한다. 앞으로 집을 지으려면 눈에 보이는 화려함을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유지비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난방비는 얼마나 나올지, 전기세는 얼마나 나올지... 그런 모든 궁금함은 일단 이달 말이면 어느 정도 윤곽이 나올 것 같다.


2004/12/27

집사람과 산이를 보고 와서 더 기운이 났다.

산이는 건강하다. 나를 많이 닮았고, 집사람도 많이 닮았다. 집사람 역시 건강하다. 아직 거동이 그리 편하지 않지만, 내가 굶고 살까봐 걱정이다. 내가 집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집사람이 나를 더 사랑한다는 것을 언제나 느낀다.

현재의 일상은 항상 똑같다. 출근하고, 퇴근한다. 출퇴근 시간은 거의 한 시간에서 +-10분 정도로 비교적 안정되어 있다. 집에 와서는 좀 쌀쌀하지만 하루 종일 갇혀 있던 강아지들과 마당으로 나와 함께 논다. 요즘 우리 강아지들은 집 안에서는 용변을 참고 있다 저녁에 놀 때 한꺼번에 용변을 다 해결한다. 참 신통하다. 그리고 짬이 더 나면 동네 한 바퀴를 산책한다. 옆집의 큰 개가 가끔씩 써니와 향기를 괴롭히기도 하는데, 그런 것만 없으면 가히 우리 세상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 와서 강아지들과 산책할 때 가장 좋은 점은 따로 끈을 매지 않아도 좋다는 점이다. 써니와 향기는 내 곁에서 5M 이상 떠나지 않는다. 아직은 낯설고 무서운 모양이다. 서울에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까봐 또는 해코지 당할까봐 꼭 끈이 필요했다. 한 가지 안 좋은 점은 산책 때 끈을 이용하면 발톱이 달아 따로 관리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렇지 않아 아이들 발톱 관리가 따로 필요할 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강아지들과 논 후에는 저녁을 먹고, 집을 좀 치운 후 벽난로를 지펴놓고 쉰다. 자기 전에 잠시 인터넷을 한다. 아직은 이벤트가 없어서 천편일률적인 삶이다.


2004/12/28

오늘 책장이 도착했다. 3자짜리 책장을 2개 사는데 20만원이 넘게 들었다. 서울 같으면 동네에서 책장을 주문 제작했을 것이다. 가격도 거의 비슷할 테고, 원하는 데로 만들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그러기가 힘들고 배달 문제도 있어서 길이를 제어 주문했다. 책장은 마음에 들었지만, 역시 책이 많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책장 2개와 2층 거실 벽면에 만들어져 있는 큰 책장까지 모두 다 차버린 상태. 새로 산 책장에는 컴 관련 서적들만 넣었는데 다 차 버렸다. 그 외의 책은 정리할 데가 없어 아직 쌓여 있다. 지난번에 사용했던 조립식 책장이 확실히 유용하고 가변적이라 원하는 데로 설치할 수 있어 좋았는데, 여기서는 사용할 수 없는 게 너무 뼈아프다. 책장을 두 개 더 사든가 아니면, 다른 대안이 있는지 빨리 알아봐야 겠다.

이사를 하면 이모조모 필요한 게 너무 많다.


2004/12/31

연말이라 좀 일찍 끝난 덕에 드디어 전입신고를 했다. 이제 진짜로 경기도민이 되었고, 서울이라는 도시를 떠난 느낌이 난다. 전입신고는 서울과 마찬가지로 간단하게 서류를 쓰고 신분증을 보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보호 차원에서 확정일자도 받았다. 차가 남았는데, 15일 이내에 번호판을 바꾸지 않으면 과태료를 내야 한다고 한다. 좀 더 시간이 있다면 양평 시내로 가서 오는 중에 모든 일을 끝냈으면 좋겠지만, 오늘은 미국에서 귀국하신 어머님과 아버님을 뵙고 집사람과 아이도 보러 가야 한다. 특히 부모님께는 상의 없이 집을 옮긴 셈이라 사죄도 드릴 겸. 오늘도 긴 여행이 될 것 같다.


2005/03/02

삼월 둘째날 눈이 많이 왔다. 아마도 올해 마지막 눈이 되지 않을까 싶다. 출근 시간으로 거의 두시간 반을 소모했다. 천호대교에서 사고가 있었다는데 아마도 내가 올림픽 대교에서 지체하며 보낸 가장 많은 시간일 것이다. 차에 엔진 오일이 거의 없어 많이 긴장했다. 오늘 정비소에서 오일을 조금 보충하고, 창환이 형님에게 가서 엔진 오일을 교체해야 겠다.

그간 많은 일이 있었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잘 타고 다니던 엑셀을 폐차했고, 차가 갤로퍼2 숏바디로 바뀌었다. 사륜이 되면서 웬만큼 눈이 와도 집 앞까지 차가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럽고 기쁜 일이다. 또 차를 바꾸고 나서 눈이 많이 왔던 관계로 사륜의 덕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집도 많이 정리되었고, 집사람과 아기도 돌아왔기 때문에 집안이 좀 분주하다.

그간의 일을 좀 정리해 보자. 그간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역시 눈과 관계되는 일이다.

전원주택으로 집을 옮기고 나서 가장 힘겨운 일은 역시 교통 문제와 난방 문제다.

교통 문제는 계절적인 요인이 많은 부분을 지배한다. 겨울철에는 무엇보다 눈이 문제인데, 양평에서 살려면 사륜 차량과 스노우체인은 필수다.

올해 눈이 비교적 적게 와서 스노우체인 없이 버티어 왔다. 하지만, 내년에도 그런 행운이 계속되리라는 보장은 없을 것이다. 아마도 한두 주 안에 스노우체인의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꼭 하나 장만해야 겠다.

사륜 차량은 우리 집처럼 고개를 넘어 고바위 길을 올라가야 하는 집에서는 필수적이다. 단 한번이었지만 사륜으로도 눈길에 차가 미끄러져 결국 차를 아래에 두고 걸어 올라가야 했던 기억도 있다. 특히 축대가 해를 가리는 길은 눈이 오면 곧 눈이 빙판으로 변해버리기 때문에 사륜이 아니면 올라가기 힘들고 사륜도 빙판에서는 바퀴가 흔들려 위험하다. 때문에 눈이 오면 즉각 치우는 길이 안전을 위한 최상의 방법이나 언제나 그렇게 대응하기는 힘들다.

또 하나 눈의 종류에도 신경 써야 한다. 종류라기보다는 상태라는 편이 더 정확한 표현인데, 눈이 건조하고, 날씨가 차면 눈이 밟히기 때문에 차가 내리막을 내려갈 때 눈의 마찰력 때문에 큰 위험이 없다. 하지만 눈이 습하고 날씨가 따뜻하면 내리막길에서는 눈이 바퀴와 함께 쓸려 나가기 때문에 빙판보다 더 위험하다. 눈을 밟는 순간 차가 쓱 밀려 나가기 때문에 거의 컨트롤이 되지 않는다. 이런 눈을 치우기가 비교적 쉽기 때문에 재빨리 치우고 차를 모는 것이 제일 현명하다. 그걸 모르고 차를 몰았다가 거의 죽을 뻔 한 기억이 있다.

도로로 접근하기까지의 길은 주민들 스스로 치워야 한다. 하지만 실시간으로 거의 치워지지 않는다. 사람이 적게 사는 곳은 더욱 그렇다. 일단 도로로 나오면 길은 좋아진다. 대부분의 눈은 제설이 되어 있으나 눈이 계속 내리는 상황이면, 대부분의 도로는 주의를 요한다. 또 눈이 새벽에 오거나 갑작스럽게 닥치면, 이 또한 무용지물이다. 대응력이 너무 늦다. 아마도 도시에서 이런 정도의 대응력이면 난리가 나겠지만, 여기는 지역이 너무 넓고, 장비도 그리 많은 것 같지 않다.

교통은 주말에는 정말 장난이 아니다 퇴근 시간은 평소의 약 1.5배 정도 된다. 주말 저녁 서울행 길은 늘 포기다. 양평에서 서울로 갈 수 있는 길은 언제나 만원이라 어디 다녀왔다가(주로 서울 쪽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모를까 늘 힘겹다. 아마도 이것은 서울 쪽으로 들어가는 길 자체가 너무 협소하고 외길이라 그럴 것이다. 이런 힘겨움은 현재의 도로 계획상 아마도 5-6년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여름이 걱정이다. 여름에는 더 심하지 않을까 싶다.

난방은 주로 난방비로 귀결된다. 첫달 연료비가 생각했던 비용보다 두배 정도의 비용이 나온 것을 보고 이건 월세나 다름없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많이 안정이 되어 비용이 많이 줄었지만, 추위를 잘 타는 나는 좀 추운 겨울을 보냈고, 추위를 잘 타지 않는 집사람은 별 영향이 없는 모양이다. 이 때문에 집을 얻거나 지을 때 꼭 난방비를 절약할 수 있는 장치들, 태양열 온수, 심야 전기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하다.

그 외에 생활하는 데는 큰 불편함이 없다. 5분 거리의 문호리에 농협 하나로 마트와 큰 슈퍼가 하나 있어 대부분이 해결되고, 10분 거리의 양수리에 더 큰 농협 하나로 마트와 그 정도 규모의 K 마트가 있어 생필품을 구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농협이 문호리에 있어 은행 업무가 가능하고, 보건소와 면사무소 등이 문호리에 있으니 여러 가지로 편리하다. 2분 거리에 24시간 마트도 있다. 물론 모두 차로 이동하는 거리다. 병원은 아직 이용해 보지 못했는데, 문호리에 하나 있다고 하고, 양수리에도 좀 큰 병원이 있다. 그리고 아직 이용해 보지 못한 LG마트가 덕소에 있다고 하는데 한번 가 보려고 한다.

하나 불편한 것은 이웃과의 거리다. 바로 옆집에 이웃이 하나 살고 있고 우리 집 위로 두 집, 아래도 한집 정도가 이웃의 거리인데, 왕래가 없다. 조만간 저녁 식사라도 청해야 할 듯하다.

이제 문호리로 이사온 지 꼬박 두달 반이 되었다. 그 동안은 일종의 준비 기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곳에 살기 위한 여러 가지 준비들. 그 중 가장 힘들다는 겨울을 모두 지내 보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오늘도 눈이 내렸지만...

이제부터는 이곳에서의 즐거운 삶을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눈이 모두 없어지고, 파릇한 봄 냄새가 가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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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오름, xdg]


북토피아 VIP 회원이 되다

- 책 읽기에 대한 즐거움. 내면의 갈증을 털어내는 나의 오락.


2007년을 맞고 보니 2006년을 세삼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아쉬웠던 여러 가지를 반성하고 또한 이룬 성취에 대해서는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지난 2006년을 돌아보며 필자가 이룬 성취 중 가장 기억에 남고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북토피아의 VIP 회원이 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어떤 사람들은 뭔가 대단한 것이 있는 줄 알고 북토피아(www.booktopia.com)가 뭐냐고 묻는다. VIP 회원이 뭔가 좋은 의미인 줄은 알겠는데 북토피아는 생소하다는 것이다. 북토피아는 ‘일종의’ 인터넷 서점이다. 서점이면 서점이지 ‘일종의’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은 Yes24처럼 종이책을 판매하는 인터넷 서점이 아니라 이북을 판매하는 서점이기 때문이다. XML 타입의 이북이 기본이고 여기에 플래시 타입, iBook 타입(종이책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형식. XML 방식은 화면의 크기에 따라 텍스트와 그림의 위치가 함께 변경됨), PDF, HTML 방식 등의 이북을 판매하고 있다. 그 중 PDF와 HTML 방식은 점차 퇴조하고 XML과 플래시 타입이 자리를 잡았고, iBook 역시 종이책 형식을 유지하고자 하는 출판사가 있는 관계로 남아있다. 휴대성을 위해 작은 사이즈 액정의 노트북을 보유하고 있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iBook 타입은 읽기에 불편하지만 읽었던 대부분의 XML 타입의 이북은 매우 익숙한 편이다.


인터넷 문화에 능숙한 사람들이라면 이북에 대해서는 대부분 많이 알고 있는데 막상 이북이 어디서 판매되고 어떤 것이 있는지는 대해서는 아직도 생소한 사람들이 많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이북하면 TXT 타입의 이북을 생각한다. 인터넷을 떠도는 많은 TXT 파일 이북은 종이책을 텍스트로 옮겨 놓은 일종의 불법판이다. 필자 역시 한때는 불법판을 애용했다. 온갖 종류의 불법판은 사실 비용을 들이지 않고 독서를 하기에 매우 적당하다. 하지만 그림이 중요시되거나 도표나 형식이 중요한 책을 보기에는 적합지 않고 오타와 중간중간 빠진 텍스트도 많아 어쩔 수 없는 부실을 가지고 있다. 또한 신간을 접할 수 없다. 독서에 치중하다보면 고전 정도는 그런 책을 읽는 것이 나쁘지 않지만 역시 불법판이라 꺼림직한 부분이 있다. 진정한 독서광이라면 독서 또한 자신이 쌓아가는 교양의 한 부분이라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타당하다. 하지만 현실이 그런가. 대가를 지불하고도 실망하거나 아쉬움이 남는 경우가 많았는데 업무 상 북토피아의 이북을 몇 차례 접하고서 그간 편견을 가졌던 부분이 해소되어 지금은 적극적인 이용자가 되었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미리보기 기능과 가격이다. 미리보기 기능은 책의 일부를 먼저 무료로 읽어볼 수 있는 기능이다. 상당한 분량의 양을 먼저 읽어볼 수 있는 것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책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는 무리가 없어 아직 필요없다고 판단되는 책은 돌아보지 않을 수 있어 편리하다. 가격도 종이책의 50% 선에서 위 아래로 움직이기 때문에 부담이 덜하다. 이사를 할 때마다 책꽂이의 책들 때문에 매번 추가요금을 물어야 하고 책 정리에도 많은 시간을 보냈던 필자로서는 그런 부담도 덜 수 있어 더욱 좋다.


필자가 반년 만에 약 100여권 넘게 책을 읽고 서평을 쓰면서 VIP 회원이 된 것은 이 사이트의 책 시사회 덕분이다. 일주일에 2-5권 정도의 책을 하루 20명씩에게 시사회 명목으로 무료로 읽을 수 있게 해 주는 제도이다. 아무리 무료라 해도 공짜는 없는 세상인 고로 최대 3권까지는 책 시사회에 참여할 수는 있지만 다음 책에 참여하려면 정해진 기간 안에 책을 읽고 서평을 써야 하는 규칙을 지켜야 한다. 무료 시사회는 일테면 독자의 서평을 모으기 위한 마케팅인 동시에 독자를 위한 팬 서비스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책 당 약 100명 정도의 제한된 인원만 참여할 수 있다 보니 마케팅적으로도 크게 손해나는 장사가 아니다. 그러니 출판사와 사이트 그리고 부지런한 독자 사이의 윈윈게임 같은 느낌이 드는 제도가 책 시사회이다.


때때로 시사회에 참여하기 위한 경쟁이 대단할 때도 있었지만 필자 역시 부지런한 성격이라 그간 대부분의 시사회에 나온 책들을 거의 놓치지 않고 읽어 내는데 성공했다. 그러다보니 인문사회 계열의 책이나 베스트셀러를 중심으로 한 의무방어용 책들에 치중하던 독서의 편식이 상당부분 해소되는 효과까지 누리게 되어 필자로서는 일석이조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책 시사회 역시 출판되는 이북의 특성을 타는지 자기개발서의 비중이 월등히 높아 분야별 편식이 있었던 점은 아쉬움이다.


필자가 VIP 회원이 된 것은 2006년 말이다. 어느 날 신간 몇 권을 사려고 북토피아에서 결제를 하고 보니 VIP 회원이라 제시된 책 중 한권을 더 받을 수 있다며 선택을 하라는 창이 떴다. 얼떨결에 그 중 읽고 싶은 책 한권을 선택했는데 처음에는 VIP 회원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래서 사이트를 뒤져보니 구매 및 서평에 대해 각각의 포인트를 부여하고 그것으로 회원의 등급을 매긴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그중 VIP는 최고 등급이었다. 최고 등급이라고 해서 특별한 혜택이 있거나 무언가 더 좋고 뛰어난 것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필자가 그것이 기쁘고 즐거운 것은 VIP 회원이 되는 과정을 돌아보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책 시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기간 동안 북토피아에서 구매한 책은 아쉽게도 시사회에서 읽은 책의 십분지일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니 대부분이 구매 포인트가 없는 책시사회의 서평 포인트만으로 최고 등급의 회원으로 올라섰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참 이상하게도 직접 구매한 책은 서평을 잘 쓰지 않게 된다. 하지만 시사회에 참가하기 위해 읽는 책들은 강제 사항인 서평에 매달리게 된다. 그렇게 쓴 서평이 어느덧 시간이 흐르고 권수가 쌓이면서 나 자신에게는 삶의 기록처럼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기쁘고 즐거웠고 또 자랑스러웠다.


필자는 2006년의 성취로 북토피아의 VIP 회원이 된 것이 가장 기쁘고 기억에 남는 것으로 꼽는 것은 그런 이유다. 생각해 보면 짬을 낸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업무는 바쁘고 가정사는 항상 시간을 쪼개야 한다. 그 가운데 시간을 더욱 쥐어짜내 독서를 즐기고 서평을 써 왔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대단한 공력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물론 그것은 그간 독서를 하며 스스로 터득한 독서법도 영향을 주었다. 그 덕분에 단 시간 내에 책의 요지를 파악하고 군더더기 없는 빠른 독서가 가능했다. 하지만 연장도 쓸 나름이라고 돌아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다행이 2006년 하반기는 독서라는 작업대에서 독서법이라는 연장을 잘 활용하여 나름의 집을 지을 수 있는 한해였다. 그 결과가 북토피아의 VIP 회원인 것이다.


삶은 언제나 격동한다. 큰 물결이 밀려오지 않아도 살아낸다는 것 자체가 언제나 파도타기와 같은 기복을 갖게 된다. 그 한가운데서 있는 나는 오늘도 나날이 새로워지는 2007년을 살아간다. 올 한 해도 많은 일을 하며 많은 성취와 아쉬움이 남겠지만 북토피아의 책 시사회만은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계속 이어가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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