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육아에 산이를 보내고 나서 1년이 지났다.
다행이 결과가 좋았고 지금 산이는 그 어느 때보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하다.
1년이 지나고 나서 꼭 ‘1년 살이를 써야겠다.’ 생각을 했지만 이런저런 일들이 바빠서 조금 시작하다 말다를 반복하다 한 달이 지나서야 겨우 마음을 먹고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필 받으니 단숨에 써 내려갔다. 공동육아에서의 산이와의 1년은 참 흥미진진한 일들이 많았지만 대체적으로 마음이 통하는 이웃과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며 큰 힘을 주는가를 생각하게 한 시간이었다.
어린이집 게시판에 쓴 글을 다시 옮긴다.
산이 등원한지 벌써 1년이 되었습니다.
1년 사이에 많은 아마들이 산이 많이 달라졌다하십니다. 저희도 그걸 느끼고 있고 요즘은 그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른 것 같아 때로 긴장하기도 합니다.
얼마 전 날적이에 ‘잘 노는 아이’, ‘놀 줄 아는 아이’로 성장해 가는 산이 모습이 보기 좋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내심 그 말이 얼마나 고맙고 기쁘던지.
처음 산이를 데려온 날이 기억납니다. 그때는 영구터전으로 이사하기 전이었는데 산이를 안고 첫 면담을 하면서 이곳에 보내려는 이유가 “노는 데 투자하고 싶다.” 고 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산이 태어나던 해 초록비와 상의하여 집을 양평으로 옮겼습니다. 산이 태어나고 며칠 후 였지요. 산이를 시골에서 키우고 싶다는 바람이 강해서 집을 옮기긴 했지만 몇 달의 산후 조리 후 산이와 초록비가 양평집으로 들어왔을 땐 우리 가족의 첫 전원생활이 많은 계산 착오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먼저 이웃과의 거리가 너무 멀었습니다. 그 지역에 어떤 식으로든 충분한 사회적 유대 관계를 쌓아놓지 않은 상태에서 이사를 왔고, 해당 지역이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 아닌 전원주택 단지였기에 대문을 마주보는 집 하나 외에는 인가도 별로 없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어른도 고립감을 느끼는데 아이는 부모 이외에 사람의 온기를 느끼기 힘든 곳이어서 유난히 사회성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새로운 공간, 새로운 사람에 대해 반응하는 적응 기간이 상당히 길었지요. 그 때문에 세상을 살아가며 반드시 유지되어야 할 사회적 관계의 빠른 적용의 한 방법을 “놀이”에서 찾으려 했던 것입니다.
산이 등원은 쉽지 않았습니다. 9월에 등원해도 좋다는 통보를 받았지만 사정으로 인해 힘들었고 2월에 가서야 등원을 시작했지요. 구립어린이집의 가슴 아픈 추억이 없었다면 어쩌면 산집과 인연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첫 신입 조합원 교육 때 참고 도서를 읽고 산집 운영 방침에 대해 했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나들이 - 놀이에 투자하려 이곳에 왔기 때문에 매우 만족한다.
날적이 - 영롱한 보석 같은 존재다. 부모와 교사간의 막힘없는 소통이 이루어진다면 아이의 성장에 많은 도움을 줄 것 같다.
별명 또는 반말 문화 - 수평적 관계를 염두에 둔다면 환영. 자기검열을 늘 하도록 강요받았던 세대에 속한 사람으로서는 환영할 일이나 염려스러운 점도 있음.
마실 - 글쎄 가능할까? 의문점.
이것이 막연하게나마 비싼 돈 내고 ‘놀이에 투자하겠다.’고 왔다가 조합원 교육을 받으며 산집의 기본적인 운영방침을 접하고 느낀 점이었습니다.
그 날 이후 내심 산이를 산집에 보내면서 목표가 두 가지로 늘었습니다.
“놀이에 투자한다.”, “자기검열에 매몰되지 않는 아이로 키운다.”
스스로에게는 힘겨운 목표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놀이에 투자한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많은 다의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자기검열까지……. 산집을 다 믿을 수는 없어도 적어도 조직이 가지고 있는 저 정도의 자기 확신과 시스템에 대한 운영 지침이 확실하다면 함께 해 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났습니다.
모든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라 함께 해 볼만하다는 패기는 간데없고 일상의 바쁨 때문에 시스템에 기대어 1년을 보냈습니다. 출퇴근에서 자유롭지 못한 맞벌이 부부라 산이는 가장 먼저 등원해서 가장 늦게 하원 하는 아이 중 하나가 되었지요. 대략 하루 10시간에서 11시간 정도는 터전에서 지냅니다.
결론적으로 바라보면 시스템은 훌륭했던 것 같습니다. 시스템이란 참 희한한 생명체라서 분화된 여러 요소들이 자기 일을 하기만 하면 단지 자기 일을 했을 뿐인데 그 일로 인해 모든 운영 체계가 무리 없이 작동하게 되는 이상한 놈입니다.
일 년을 보내며 생각해 보니 산집을 위해 한 것이 별로 없습니다. 소위 모임 몇 번 갔고, 방모임 몇 번 갔고, 매달 돌아오는 청소 몇 번, 소풍, 모꼬지, 열린 마루, 총회, 교육, 대청소, 마을 운동회, 마을 축제……. (얼마 없는 게 아니었군요.) 하여튼 이런 일들만 했을 뿐인데 그 사이 산집의 시스템 아래서 산이는 많이 성장했습니다. 그냥 크기만 한 것이 아니라 성장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아래의 글은 신입조합원 교육 때 했던 이야기들에 비추어 산이네 집 가족의 산집 생활 소감을 오름의 독단적인 생각으로 적은 것입니다. 쓰는 김에 아쉬운 점, 또 이랬으면 어떨까 하는 어설픈 제안도 함께 써 보았습니다.
나들이
소감 : 역시 만족합니다. 매일 반복되는 산집의 중요한 행사이면서 아이들에게도 중요한 일과. 나들이 안 갔다 오면 오후 생활 동안 아이들이 짜증 많이 낸다며 나들이 선호하는 교사들의 말을 들을 때면 더 만족합니다.
아쉬움 : 5일 등원하는 데 월요일 모둠으로 나들이가 빠지는 것이 사실 매우 아쉽습니다. 또 악천후(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이 더우나, 날이 추우나) 시라도 터전에 숨어 있기보다 간단하게라도 동네 한 바퀴 돌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나들이에 대해서는 언제나 “조금이라도 더” 라는 목마름이 터전 전체의 흐름이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제안 : 가능하면 나들이 못나가는 날에는 동네 한 바퀴 맴도는 나들이라도 늘 했으면 합니다. 안 공기보다 그래도 바깥 공기가 좋을 때가 더 많으니까요. 그리고 늦어도 10시까지 등원 캠페인 적극 찬동입니다. 어떤 공동육아는 모듬까지 하고도 10시 정각에 나들이 나간다고 합니다. 우리도 그런 모범 사례를 말할 수 있는 어린이집 간절합니다.
날적이
소감 : 영롱한 보석 같은 존재라 했지만 초반 열심히 쓰다가 요즘은 쓰는 것이 영 시답지 못합니다. 자주 빼먹고 아이의 성장을 위한 의사소통이기보다는 아이 일상 보고서가 되어 버린 듯해요. 스스로도 많이 반성할 부분입니다. 사실 매일매일 쓰는 것도 힘겨운 일이더군요.
아쉬움 : 날적이가 이번 연도에 많이 변했습니다. 거의 공동 날적이화 되어 가고 아이들의 이름이 빠지는 것으로 방모임에서 이야기가 되었던 모양입니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아쉽습니다. 아이의 이름을 호명한다는 것은 아이 개인 개인에 대한 교사의 관심도를 나타내 것 중 하나이고 개인적 인격에 대한 탐사 보고서와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이 매일 날적이를 통해 표출된다면 언제나 아이 하나하나 모두를 챙기게 되는 제도적 장치(일명 시스템)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하여튼 아마를 해 보니 날적이는 한편으로는 계륵 같은 존재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 자는 짧은 시간에 모든 아이들에 대해 한마디씩 하는 것은 너무 힘겨운 일인 것은 사실이니까요. 그래도 어제 공동 날적이에 갑자기 아이들 이름이 거명되어 짜릿함을 느꼈는데 이런 아쉬움의 발로인가 봅니다.
제안 : 날적이를 자꾸 쓰다보면 늘 반복적인 생활보고서가 되는데 평상적인 글쓰기보다는 주제를 가진 날적이 쓰기를 제안해 봅니다.
즉, 이번 주는 아이의 친구 관계에 관점을 두고, 다음 주는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에 관점을, 다음 주는 좋아 하는 책 등 아이의 사생활에서 철학적인 부분까지 주제를 정해 그 주제의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이 듭니다. 책을 한권 정해서 그것의 순서나 필요한 부분을 가지고 해도 좋고, 교사가 정해도 좋고, 아니면 교사와 교육 소위가 머리를 맞대고 1달 계획을 정해 주어도 좋고. 하여튼 해당 주제에 맞게 아이를 바라봄으로서 아이 성장과 아이와의 관계의 다양한 면을 조명할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요즘처럼 생활보고서가 되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조금은 강제적인 주제를 가지고 아이를 바라보게 되면 스스로에게도 아이를 성장시키는 여러 생각들을 할 수 있을 것이고 더 많은 고민 역시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방 모임 때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다면 좋은 토론과 지침들을 그 안에서 캐어낼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럴 수 있다면 날적이가 아이 성장의 매일의 보고서인 동시에, 아이를 더 성장시키기 위한 부모와 교사의 고민의 흔적이며 또한 토론장이고 지침서라는 본래적 의도에 더 부합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별명 또는 반말 문화
소감 : 의외의 변수였습니다. 사실 처음 산집을 보낼 때 별명과 반말에 대해 기대 반 우려 반이었지만 결과는 홈런이라고 생각합니다.
산이는 이 시스템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감을 확연히, 그리고 더 강화시킨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권위는 존재할지라도 수평적 관계에서는 상하적 명령 체계가 작동되지 않는 경향이 많습니다. 회사에서도 팀제를 시행하다 보면 팀장을 제외하고는 업무 중 직급 체계가 무너지고 점차 평등한 의사소통이 자리를 잡는 느낌을 받는데 터전에서도 그런 것 같습니다. 산집의 아이들은 일방적인 명령을 받아 순차적으로 행동하는데 익숙하지 않습니다. 요구 사항에 대해 왜 그런지 끊임없이 묻고 교사 건 부모 건 그것에 대해 끊임없이 답변하고 이해시키는 과정이 발생하더군요. 개별 모둠이나 전체 모둠 역시 그런 역할을 하지요. 아이들에게 지시하는 것이 아닌 무언가를 설명하고 의견을 모으고 함께 하려는 의지를 다지는 형태의 모둠은 너무 좋은 교육 방안의 하나라 생각합니다.
얼마 전 산이로부터 들은 말이 있습니다. 마실을 갔을 때라 때를 부리는 것 같아 불편했지만 집에 돌아와 생각해 보니 그 말이 가지는 의미가 범상치 않아 지금도 가슴에 남았습니다. 그 말은 “그렇게 약속하지 않았어.”라는 말입니다.
마실 간 산이를 데리러 가는 길에 딸기를 조금 사 갔는데 딸기를 좋아하는 산이는 사온 딸기를 보고 그것이 자신의 딸기라며 움켜지고 안 놓는 통에 여기서 먼저 먹고 남으면 가져가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집에 가자며 일어서려니 그 약속을 지키라 했던 말입니다. 선물로 가져간 건데 그것을 되가져 가겠다니 어른의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웠지요. 하지만 돌아와 생각해 보니 아이는 사회적 개체로서의 자신의 존재감이 어떻게 인정받고 있는지에 대해 어른들끼리의 약속 관행에 비추어 처리해 달라는 되물음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시의 위기를 모면하고자 너무 쉽게 약속하고 그 약속을 쉽게 파기하려한 어른의 잘못을 아이가 때를 쓴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닌가 반성이 되었지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선물로 가져간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설명할 필요가 있었던 겁니다.
아이는 자신이 요구받은 상황에 대해 반응합니다. 그 반응이 상하적 관계에서 지시된 데로만 훈육되면 요구에 대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조건 없이 수궁하거나 더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울거나 때를 쓰는 방식으로 분을 토하는데 요즘 산이는 왜 그래야 하는지를 오히려 계속 되묻고 어느 정도 만족한 답(또는 대안)을 받으면 그때서야 수긍을 합니다. 그렇게 주고받는 수평적 반응 자체가 아이의 정체성을 확립해 주고 자존감을 높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런 것들이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교사와의 의사소통에서 수시로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니 “아! 시스템의 놀라움이여! 별명과 반말에 담긴 관계성이여!” 하고 찬사를 보내게 됩니다.
또 다른 관계 : 이 놀라운 시스템은 아이들과 교사와의 관계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이와 아마들 사이에도 나타나는 것 같아요. 이전 구립을 다닐 때는 산이와 같은 반 아이들 이름을 전혀 몰랐지만 여기서는 모든 아이들의 이름을 다 알고 있고 대충 성격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들도 내가 산이 아빠 오름이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게 스스럼없이 오름이라 부르며 ‘안아 달라. 그림 그려 달라. 책 읽어 달라.’ 말할 수 있는 관계가 된 것은 이런 시스템에 기인하는 것 같습니다.
며칠 전 하원 하는 길에 산이는 터전으로 들어가는 삐삐를 보며 “삐삐. 애기 축하해!” 하고 말하더군요. 삐삐는 “고마워. 산아.”하며 지나갔지요. 요즘 홈페이지에 거의 접속 못한 오름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삐삐의 임신 사실을 알고 있던 산이가 먼저 인사를 한 것이지요. 산이에게 대충 이야기를 듣고 집에 와서 초록비가 확인을 해 준 다음에서야 “아! 이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자연스러운 대화는 아이와 어른의 대화라기보다는 친한 친구끼리의 대화 같았습니다. 아이와 아마들 간의 관계 역시 수평적인 평등성이 효과를 발휘하는 모양입니다.
또 하나 빠질 수 없는 것은 부모와 교사, 부모와 부모 간의 관계에서도 좋은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 조건이 다르고 나이 차이가 나는 부모들끼리도 별명을 부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반말도 함께 병행하게 되는데 처음의 낯섦이 지나고 나면 마치 오래된 친구나 초등학교 동창들처럼 어울리게 되는 힘이 발생합니다. 이것이 터전 생활에 큰 힘이 되어 주지요. 그 밑바탕에는 별명과 반말이라는 시스템의 힘이 밑받침하는 것 같습니다.
제안 : 이 시스템은 한편으로는 부모와 부모들, 부모와 교사 사이의 관계 맺음에서 어색함을 표출하게 할 때도 있습니다. 부를 때는 별명을 부르고 그 다음 말부터는 어색해 지지요. 높임말, 반 높임말, 평체 등 왔다 갔다 합니다. 어떤 때는 내가 잘못 말한 건 아닌가 자기검증을 거쳐야 할 때도 있지요. 그래서 이 시스템을 교사와 아이의 관계 뿐 아니라 어린이집에 모여 있는 모든 구성원에게 동일하게 적용하도록 규약하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연령 차이가 나고 아직 함부로 말하기 힘든 신입 조합원도 있습니다만 모두 그렇게 정해 버리고 말 놓고 의사소통하면 좀 더 편안한 상태가 되지 않을까요?
마실
소감 : 글쎄 가능할까? 의문점을 내포했던 일이지만 가능하더군요. 처음 오름과 초록비는 산이를 등원시키고 그 한 달간은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오름이 휴지기를 끝내고 출근을 시작했고, 초록비도 직장을 파주로 옮겼던 그 달이었기 때문에 등원과 하원 시간 맞추는 것이 보통 힘든 것이 아니었지요. 아직 터전 생활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산이도 문제였고 회사에 적응하는 것도 문제였고, 신입조합원 교육과 몇 가지 일로 주중 저녁에 터전에 자주 가야했는데 그것도 힘겨웠습니다.
아마 그때 ‘가능할까?’ 생각했던 마실을 지금처럼 했더라면 부담을 훨씬 덜했을 텐데 라는 생각 요즘 자주합니다. 오죽했으면 아침 등원이라도 어찌 해결해 보자는 생각으로 오름이 차를 몰고 아침7시에 아이들을 모두 수거(표현이 격하지요.)해 와 터전에 부려놓고 출근하면 등원 걱정이라도 덜지 않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요즘은 초록비도 늦고, 오름도 늦는 날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마실 보내자.” 미리 약속하고 다른 집의 정서를 느껴줄 요량으로 마실을 해야 하지만 아직 저희 부부에게 마실은 하원 시에 급하게 아이를 맡길 곳과 동의어처럼 쓰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도 아이가 같은 조합원 집에서 친구와 함께 놀면서 있을 생각을 하면 적잖이 안심이 됩니다.
아쉬움 : 신입 조합원 때는 마실이 참 어렵습니다. 아직 안면도 다 익히지 못한 터에 덥석 아이를 맡기기도 힘들고 어찌 생각할지도 그렇고……. 도우미가 있기는 하지만 잘 활용하지 못했지요. 그래서 조합 차원에서 신입 조합원이 들어오면 마실을 활성화할 수 있는 여러 장치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무엇보다 신입 조합원과 기존 조합원이 빨리 친해질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더 빨리 적응이 되겠지요.
제안 - 마실을 위한 조건 : 마실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 조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마실의 개념을 잘 세울 것’입니다. 마실의 전제는 저희 집도 그렇지만 “아이를 맡기는”이라는 전제가 조합원 전체를 관통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실을 보낼 때는 미안하고 부담됩니다. 마실이 “아이를 맡아준다.” 그래서 “고생한다.”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평소 먹던 것으로는 안 되고 무언가를 준비해야 하고, 후식도 만들어 놓고, 가능한 생협 음식이어야 하고 등의 불편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생각이 깔리다 보니 마실은 필요하면서도 편치 않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마실을 주로 보내는 가구들을 보면 하원에 부담을 느끼는 집들이 대부분이고 하원에 부담이 없는 집들은 거의 마실을 보내지 않는다는 점에서 심증이 굳어집니다.
이 때문에 조합에서도 마실에 대한 개념 정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마실을 “아이를 맡긴다.”에서 “공간을 바꾸어 함께 놀게 해 준다.”, “조합원 간의 우정을 쌓는 기초를 제공한다.” 등의 생각으로 확실하게 인식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정 주기마다 이런 개념의 마실을 유도하도록 제도적인 장치들을 함께 마련해 주는 것도 개념의 변화와 정착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급하게 아이를 맡겨야 할 때에도 ‘고생스럽게 맡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바꾸어 우리 아이와 함께 놀아 줄 친구를 받는다.’ 개념이 정착되면 아이 마실이 불편하고 힘들다는 생각 자체를 조금은 누그러트릴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하나는 부담 없는 마실이어야 합니다. 맡긴다는 생각이 강해지면 아이를 맡긴 후 가볍게라도 사례를 하게 됩니다. 주로 비싸지 않은 간식들을 사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이웃 간의 정을 생각하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조합에서 이런 부분은 마실의 정착을 위해 특별히 스페셜한 마실(저녁 초대와 같은)을 제외하고는 금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저희 집의 경우를 보면 가끔 마실을 할 때면 다른 준비 없이 집에 있는 반찬으로 저녁 먹고 아이들 놀게 하는 것이 다 일 때가 많습니다. 가끔 반찬거리가 없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냉장고 깊숙이 숨어 있는 냉동 음식들이 비로소 처리되는 일도 있지요. 대체적으로 아이들 마실은 하는 사람이 더 편안합니다. 산이 혼자 있으면 계속 놀아주어야 하지만 마실을 오면 자기들끼리 노니까 더 좋지요. 밥 먹이고 치우고 나면 책이라도 읽을 수 있으니까요. 별 고생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더 편안했는데 상대가 부담스럽게 손에 무언가를 들고 오면 그땐 더 난감입니다. 마실이 편안한 소통처럼 될 수 있게 하는 여러 방안을 이럴 때 조합에서 제시해 주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제안 - 마실 활성화 : 그런 의미에서 두 가지 정도의 마실을 제안해 봅니다.
하나는 일명 “마실 네트워크”라는 것입니다. 사실 저의 집도 마실 그러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몇몇 집에만 보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좀 더 편하고 이미 마실한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터전의 가구가 30여 가구인데 그 중 한 번도 가지 못한 집이 더 많습니다. 그런데 마실을 한번이라도 하게 되면 아무래도 그 가구와 더 친해집니다. 그래서 “마실 네트워크”는 ‘모든 가구와 마실을 하며 네트워크를 만들자’ 그런 뜻으로 제안하는 것입니다. 마실 네트워크 표를 각 가구마다 만들고 한 번도 마실을 가지 못했거나 초대하지 못한 집을 방문 또는 초대하는 집중 기간을 정해 모든 가구가 그 기간 동안은 한 번도 가지 못한 가구나 가장 적게 마실 간 가구를 방문 또는 초대하는 약속을 잡고 마실을 하는 것이지요. 한 달에 일주일에서 10일 정도의 기간을 정해 월례 행사로 해 보면 좋을 듯 합니다. 그 기간 중 마실 한 집이 최소한 몇 집은 되어야 한다는 것도 정하면 좋겠지요. 그리고 마실 후기를 홈페이지에 올려 칭찬도 하고 흉도 보고 하면 재미있을 것입니다. 물론 가능한 아이 마실이 아닌 부모 동반 마실이어야 겠죠.
또 다른 하나는 “문화 마실”입니다. 토요일 일하는 집들도 있지만 노는 집들도 많이 있습니다. 주말의 고민은 언제나 아이와 놀아주는 것에 있지요. 부모도 쉬는 날 문화생활을 즐기고 싶지만 쉽지 않습니다. 욕구는 있는데 아이와 함께 있으면 불가능에 가까울 때가 많습니다. 이럴 때 두서너 집이 모여서 토요일 오전 또는 하루를 한 집에서 아이들 마실을 하고 다른 집은 문화생활을 즐기는 것이지요. 영화를 보거나 연극을 보러 가거나 등산을 다녀도 좋고……. 부부끼리 가거나 단체로 가도 좋고……. 마실을 하는 집은 아이들이 모여 어울려 노니까 놀아 줄 걱정 없이 다른 집안일을 해서 좋고……. 부모들은 쉬는 날 모처럼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으니 좋고……. 일요일은 쉬어야 되는 집도 많으니 토요일쯤에 함께 또는 따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조를 짜도 되고, 아니면 마음 맞는 가구끼리 모여도 되고. 저희 집도 물론 가능합니다. 아직 아이를 받을 수 있는 한계가 3명입니다. 아이들 숟가락이 3개뿐이라……. 하지만 곧 보충이 되니 그때에는 숟가락 수만큼 가능합니다. 토요아마와는 성격 다르다 할 수 있어 적어 보았습니다.
며칠 전 산이와 생협을 들렸습니다. 산이 벌써 동네 사람들을 많이 사귀어서 인사하고 장난하고 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면서 잠시 동안 흐뭇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산이 초등학교는 시골로 보내자 초록비와 상의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의도가 자연과 함께도 있지만 저런 모습 보자 했던 것도 있었으니까요. 서로 인사하고 안부를 물을 수 있는 동네. 아이가 스스럼없이 동네 어른에게 인사하고 장난을 걸어도 귀엽게 받아 줄 수 있는 동네. 그 동네가 만들어지는 기초 위에 있는 성미산 어린이집. 그리고 그 안에서 삶을 배우고 성장하는 산이.
그런 모습들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그래서 생각건대 지난 1년. 가장 잘 한 일은 역시 산이를 성미산 어린이집에 보낸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가장 큰 성과로는 역시 산이의 멋진 성장이고, 두 번째는 삶에 대한 같은 지향을 가진 이웃들을 너무 많이 가지게 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사이에 늘 수고해 주신 교사들. 정말 교육에 출자했다는 말에 걸맞게 좋은 교사들을 만난 것도 행운이었던 것 같습니다. (올 해도 계속 수고해 주실 거죠. 믿습니다.) 지난 한해 산이 뿐 아니라 산집의 모든 꼬마 친구들에게 너무나 멋진 원더우먼(지난 스승의 날 편지 기억하시나요?)이었던 산집의 모든 교사들(시스템의 당당한 수호자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산이의 일 년을 보내고 나니 새삼 이런 마음 깊어집니다.
특히 단지와 애벌레에게 많은 감사를 드립니다. 애벌레에게는 고마움과 미안함이 함께입니다. 잠시 동안이지만 믿지 못해서 당황하게 만들었는데 그 일은 지난 해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했던 가장 불미스러운 일 가운데 하나였고 오랜 동안 마음의 짐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왜 그랬을까 의아스러울 만큼 스스로에게도 당황스러웠던 일이었죠. 하지만 그 일은 스스로를 많이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애벌레에게도 다시 한 번 사과하고 그 일이 성미산 마을에서 함께 성장하기 위한 성장통이었기를 기원합니다.
산집을 함께 키워가는 멋진 조합원, 아마들에게도 다시 한 번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산이 만을 바라보고 찾아왔는데 일 년을 보내고 나니 갑자기 오름과 초록비에게도 소중한 이웃들이 많아졌습니다. 이것은 전혀 생각 못한 행운이었습니다. 오랜 기간 아옹다옹하면서 소중한 정 나눌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쓰다 보니 글이 길어졌네요. 산이 일 년을 생각하니 그만 장황해 졌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스템과 함께 한 일 년, 그리고 앞으로도 좋은 시간을 더 보낼 수 있다 생각하니 필 받았나 봅니다. 초록비는 지금 살고 있는 곳도 멀다며 터전 근처로 이사 와야 한다고 요즘 성화입니다. 오름 역시 가능하다면 그러자고 합니다. 산이는 산집에서 겨우 1년을 보냈지만 그 덕에 산이네 가족은 점점 성미산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참 산이는 산집에서의 일 년을 어찌 생각하느냐고요?
물론 좋다고 합니다. 하지만 엄마 아빠가 함께 있는 주말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엄마 아빠보다 터전이 더 좋다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지만 주말이면 심심해를 외치며 친구들이나 선생님들을 찾지요. 가장 좋은 것은 엄마 아빠와 터전에서 친구들과 선생님들과 함께 노는 것이랍니다. 아직은 어린애가 맞긴 맞나 봅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_ [오름, xdg]
트래백 주소 : http://www.yoongate.com/yblog/trackback/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