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북 인터뷰

언젠가 산에 다니는 내 선배는 결혼 전 아내를 처음 소개하자 아내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자기 팔을 하나 잘라주어도 아깝지 않은 후배라고. 그러니 믿어도 좋을 그런 녀석이라고.’

선배는 정말 나를 아꼈고 나 또한 그 선배를 좋아했고 무척 따랐다. 꽤 긴 세월 동안 산을 함께 다니며 한 자일 끝에 연결되어 삶을 나누었으니 무엇을 나누어도 좋을 그런 상대였다. 자일 파트너인 내 친구와 산악회를 제외한다면 산을 다니며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지금은 비록 타국의 하늘 아래 있지만 그리워하는 마음은 여전하다.

내게 그런 후배가 있다면 아마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하나가 단연 소순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윈도우NT 쪽에서는 촉망받는 저자이기도 했고, 한글과컴퓨터 재직 시절 내 후배이기도 했다. 세간에는 윈스라는 필명으로 더 많이 알려진 인물이다.

내가 순식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성격이 화통하고 무엇이든 꾸밈이 없는 데 있다. 어떤 일이건 주눅 들지 않고 성취하려는 강한 욕망을 감추지 않는 것은 그의 강점이다. 다만 대상에 대한 비판적인 의식이 자주 들어나고 전체적인 조화를 부리는 면이 좀 약한데 이제 나이를 먹어가고 곧 아기 아빠가 될 사람이니 관록이 쌓였으리라. 오늘 우연히 메일을 정리하다 그에게 보낸 메일 중 하나를 찾았다. 2005년 4월 30일에 보낸 글인데 자신의 홈페이지인 셀프북에 인물 인터뷰를 실어야 겠다고 나를 조르고 조른 끝에 받아 간 글이다. 그래도 자신의 블러그에 게재할 만한 인물 중 하나로 나를 지목했으니 그 뜻이 가상하다. 대한민국 대표 인터넷 포털 중 하나인 N사에서 맹활약 중이다. 아래 글은 순식의 블러그인 셀프북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인터뷰 내용이 당시의 상황과 많이 달라졌지만 그때의 일이 기억나 미소가 걸린 김에 다시 옮긴다.



1. 성함과 간략히 하시는 일 20자 이내로 소개 부탁드립니다.

윤태근입니다. 현재 하는 일은 PDA 폰을 전문으로 만드는 싸이버뱅크에서 PDA폰 관련 기획 일을 하고 있습니다.


2. 요즘 스마트폰 제조 업계 동향은 어떻습니까? (피부로 느낄 수 있는 20자 이내 설명 부탁드립니다.)

“또 다시 기회가 왔다. 그러나 올해가 고비다. 잘해서 장수하자.”
비록 싸이버뱅크가 현재는 1위를 하고 있지만 대기업에 비하면 벤처기업에 불가하다. 관련 업계에서는 ‘올해가 마지막 기회다.’라는 위기감이 팽배한 상태. 이쪽 역시 시장이 대기업으로 재편되어 가는 양상이고 보면 작년까지는 LG와 싸워 업계 1위였으나 삼성과 LG가 점점 깊게 들어오는 현재는 장담하기가 힘들다. 아이리버와 같은 신화를 만들 것인지, 좌초할 것인지는 올해가 관건일 듯…….


3. 결혼하신지 이미 3년이 넘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내 자랑 부탁드립니다.

지난주가 3주년 결혼기념일이었다. 지난해까지는 여행을 갔는데, 올해는 우리 아기 “산”이가 강림하신지라 오랜만의 외식으로 조촐하게 기념했다. 그 자리에서 집사람에게 꽃다발을 선물하며 “함께 살아줘서 고맙다”고 했다. 결혼하고 나서 심정적으로 많이 안정된 것이 사실이다. 살아온 날이 아직은 짧다 할 수 있지만 스스로는 질풍노도와 같이 살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가운데 유일한 안식처가 되어준 것은 어머니와 집사람일 것이다.

집사람의 자랑이라면 나에게는 이상적인 여자라는 점이다. 일 잘하고, 예쁘고, 싹싹하고, 남편 사랑하고, 애기 잘 키우고……. 농담 삼아 흔히 하는 그런 말들에 모두 해당한다. 하지만 나를 가장 기쁘게 하는 것은 삶을 바라보는 태도나 사상적인 지향점이 비슷한데서 오는 동질감이다. 그 때문에 의기투합이 잘 된다. 오래 고민하였지만, “양평”으로 집을 옮긴 것도 집사람의 흔쾌한 동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다만 성격은 좀 다른데, 내가 느긋한 편이라면 집사람은 급한 편이다. 때때로 그것이 갈등의 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서로 간의 단점을 보안해 주는 역할도 한다.

집사람에 대한 자랑을 단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온라인상에서 집사람을 지칭하는 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쭈님”이라고 부르는데 주인님의 쎈 발음이라고나 할까. 스스로는 이 명칭을 존경의 표시로 사용하고 있다.


4. 쓰다만 소설작품의 수와 앞으로의 작품 계획은?

아직까지 “보물”을 다듬고 있다. 벌써 몇 년째 쓰고 있는데, 주력할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 중편으로 완결했다가 마음에 차지 않아 에피소드를 추가하다 보니 점점 장편이 되어가고 있다. 에피소드 하나를 더 추가하고 있는데, 이제까지 가벼웠던 전개가 점점 무게감이 생기고 있어 이를 이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아마도 그 때문에 “보물” 후속편으로는 현재 추가한 에피소드를 따로 떼어내 완결판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고민 중이다. 그 외에 만들어 놓은 작품 노트 중 작품으로 완결하고 싶은 것이 현재로서는 약 5편 정도 된다. 하지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그것이 늘 고민이다. 전업 작가로 나서기에는 아직 마득치 않은 부분이 있다.


5. 휴대폰 등의 새 제품을 손맛을 느껴보고 출시한다는 S전자 CEO의 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마도 최종 제품을 받아보는 CEO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

제품을 기획하고 제품이 출시될 때까지 개발 과정 전반에 관여하고 있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실무자이자 관리자로서의 현재의 자리는 늘 긴장의 연속이다.

가장 실망스러운 것은 개발을 진행하다 스펙 아웃을 시켜야 하는 경우다. 일정 때문이든, 관련 부품 업체가 대응을 못해 주는 것이 문제이든, 때로는 개발 역량에 비해 너무 미래적인 선택을 한 때문이든 원래의 기획 의도에서 멀어지는 스펙 아웃은 늘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제품 자체가 그것 때문에 세상에 나올 수 없다면 더 슬픈 일이기에 어느 선에서는 타협을 한다.

전체 로드맵을 쥐고 있는 입장에서는 손 맛 보다는 불안함이 더 많다. 현재 근무하는 회사는 최첨단의 제품을 주로 만든다. 엔지니어 출신의 CEO를 모시고 있는 덕분으로 세계 최초의 WinCE를 채택한 PDA 폰 출시를 기화로 세계 최초의 무선랜 탑재 네스팟스윙 폰을 낸 바 있고, 세계 최초의 DMB PDA 폰 출시를 앞두고 있다.

최초라는 의미는 최고 기술의 타이틀이 될 수는 있어도 기술적 무결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에 새 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적어도 나에게는 희열과 불안이 교차하는 외줄타기를 하는 셈이다.


6. 어떤 디바이스가 되었건 처음 집으면 가장 먼저 무엇을 보십니까?

역시 디자인이다.

제품을 만드는 입장에 있다 보니 디자인이 기능에 미치는 영향과 기능 향상에 대한 디자인 요소에 관심이 많다. 이른바 “멋진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 현재 근무하는 회사에서 미래를 대비해 투자해야 할 부분의 첫째를 꼽으라면 역시 디자인이라고 늘 생각한다.

얼마 전 L사에서 나온 경쟁 제품의 샘플을 본 적이 있다. 평소 생각해 왔던 디자인 요소들이 잘 가미된 “멋진 디자인”이었다. 그 디자인은 어느 정도 극단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어 아마도 채택 과정에서 큰 논란이 있었을 것이다. 디자인의 발전을 위해서는 수요 계층보다 개발 및 적용 계층의 열린 눈이 더 중요하다. 그래야 제품이 세상에 빛을 보니까. 그런 고민을 볼 수 있는 디자인이었다. 향후 그 제품이 히트한다면, 단순한 컨셉 제품에서 끝나지 않고, 우리나라 폰 디자인 역사를 몇 년은 앞당겨 갈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제품이 경쟁 제품이었기에 그날 밤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 과감함은 오히려 벤처기업에서 시도되어야 마땅하기 때문인데 상항은 늘 그렇지 못하다.

때로는 벤처기업이 더 보수적이며 모험을 싫어하기도 한다.


7. 존경하는 분과 그 이유는?

공병우 박사님.

나의 관점에서는 그 분은 삶이 풍족하셨던 분이다. 따지고 보면 하고 싶은 일 다 하고 사신 분이셨고, 어려움도 그리 많이 겪은 분이 아니고, 게다가 존경까지 받으며 사신 분이며, 삶의 족적도 많이 남기셨다. 하지만 내가 그분을 존경하는 것은 삶에 대한 의지다. 자신이 믿는 것을 끝가지 주장할 수 있는 것, 확신을 가진 삶과 그것에 대한 투신을 존경한다.

내가 그분에 대해 보내는 존경은 그 분이 돌아가셨을 때 세벌식 자판과 그에 얽힌 이야기들로 잡지에 개제한 글이 있으니 그것을 읽어본 분이라면 그 의미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도 썼지만, 그분을 딱 한번 뵈었다. 그분이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강연이었던 것 같다. 그때 보았던 90세의 노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은 살아온 삶에 대한 의지이며 투신의 반영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당연히 세벌식 자판을 쓰고 있는데, 그분에 대한 존경이 지속하는 한 세벌식 자판을 쓰게 될 것이며, 그 우수성에 대한 전도사가 될 것이다.


8. 산을 오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산쟁이로 잘 알려진 덕에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이다.

빚진 사람처럼 항상 마음속에는 산이 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나니 산이 소원하다.

산을 오르는 이유는 거창하게 말하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일도(一道)를 이루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준비가 되어 있다면 산을 오르는 동안 육체는 점점 이완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흠뻑 젖은 몸은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는 듯 한 시원함을 느끼게 된다.

그 과정은 집중의 과정이다. 몸이 고단하고 약간의 스릴을 즐길 수 있는 위험이 동반될수록 집중은 강해진다. 집중은 몸 안에 쌓여 있는 온갖 분심과 잡념을 정화한다. 정화되는 그것을 스트레스라고 말해도 좋고 삶의 때라고 말해도 좋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모든 것을 훨훨 털어 내고 산의 정기를 받아 하산을 하면 정신과 몸이 맑아짐을 느낀다. 산은 그 수단이며 대상이다. 그리고 그것이 산이기에 더 집중되는 것이다.

스스로 심취해 있으니 더 몰입하기 위해서는 자화자찬도 필요하고 개똥 철학도 필요한 법. 그 과정과 결과를 나는 도(道)라고 말하고 싶다. 도가 별건가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도는 도(道)다. 스스로에게는 말이다. 또한 성취감, 빛나는 산의 풍경, 삶을 나눌 수 있는 산 친구와의 조우 등은 산이기에 언제나 따라오는 부수적인 것들이다. 인생이라는 긴 길에서 스스로가 정화되고 새롭게 마음을 다독이며 격려해주는 그 길이 산이기에 ‘오른다.’고 할 수 있다.


9. 이 세상에 산이 없고 평지만 존재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마도 다른 대상을 찾을 것 같다. 바다라든가, 강이라든가, 그곳에서 집중을 극대화할 수 있는 약간의 위험을 즐기며 살고 있지 않을까? 산을 찾는 것이 일도(一道)를 이루기 위한 것이라면 산에서 얻게 되는 집중의 과정을 반복할 수 있는 또 다른 대상을 찾지 않을까 싶다.


10. 이 세상 모든 산을 등정한 뒤라면, 무얼 하시겠습니까?

그런 행운이 내게 찾아온다면 아들 “산”이와 함께 이제까지 오른 모든 산들을 다시 한 번 오르고 싶다. 물론 집사람도 함께…….

몇 해 전 설악산 공룡능선에 들어갔을 때 어린 두 아들과 함께 온 부부와 잠시 동안 같이 산행한 적이 있는데 참 부러웠다. 아무도 없는 산중에서 나와 집사람이 그간에 경험한 삶을 나누고 더불어 “산”이가 성장하며 새롭게 바라보는 인생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긴 여행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왠지 가슴 벅찰 것 같은 생각이 든다.


11. 향후 3년간 계획이나 목표는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약간의 오차는 있지만 ‘인생을 이렇게 살아야 겠다.’고 목표한 계획표에 거의 근접하며 살았다. 새해를 시작할 때쯤이면 늘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 생각하고, 목표를 점검하고 수정한다. 현재 개인적인 가장 큰 목표는 소설 “보물”을 완료하는 것이다. 그 외에 여러 계획이 있지만 발표하는 것은 좀 부적절하다.


12. 가장 좋아하는 인간형과 싫어하는 인간형은?

스스로도 양면의 날처럼 싫은 면과 좋은 면이 있다.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그와 유사하다. 좋은 면이 있으면 싫은 면도 있고, 싫은 면이 있으면 좋은 면도 있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판단은 박노해 시인의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말에 귀결되도록 노력한다. ‘모든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고 희망을 걸 것은 결국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항상 품고 있다.

모두 다 좋을 수 없듯, 모든 면이 싫은 것도 아니어서 될수록 섣불리 판단하지 않으려는 노력은 계속하는 편이다. 특별히 싫은 사람은 과불급한 사람이다. 너무 모자라거나 넘치면 함께 하기가 참 힘들다. 결국 ‘상식을 지키자’인데, 이것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를 빼면 대부분 좋아한다.


13. 셀프북에 왜 오십니까?

순식이가 항상 알림 쪽지를 날려주어서……. 항상 고맙게 생각한다.


14. 책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가장 감명 깊게 읽으신 책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스스로는 독서를 많이 하는 편에 든다고 생각한다. 사상, 역사, 과학, 문학 류에 책을 좋아한다. 깊게 집중할 수 없는 요즘은 짧은 시간 안에 독파할 수 있는 가벼운 책 위주로 많이 읽는다.

책을 읽으면서 무릎을 탁 치며 “아!” 하고 감명을 받았던 책은 딱 3권이다. 한 권은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고, 다른 한 권은 독일 여성이 쓴 “나는 나” 라는 책이고, 나머지 한 권은 “앤소니 드 멜로” 신부가 쓴 “일분 지혜”란 책이다. 세권 다 어느 한 대목에 이르러 전율하듯 몸을 떨었던 기억이 나는데 아마도 그 당시의 상황이나 성장의 단계에서 감동을 받을 준비가 되었을 때 그 문장, 그 언어가 가슴 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항상 마음에 걸리는 책이 하나 있다면 “삼국지”다. 집에서 읽던 삼국지는 백과사전처럼 큰 양장 포장에 깨알 같은 글씨로 쓰여진 한 권짜리 책이었다. 내게는 아버님의 유품이었고 아버님은 일이 잘 안 풀릴 때면 늘 그 삼국지를 꺼내들고 읽으셨다. 그러면 마음이 풀리고 기분이 좋아지신다고 했다. 나도 그 책을 한동안 그렇게 읽었다. 큰 책을 펴 놓고 정신없이 읽다보면 일은 어떨지 몰라도 마음만은 언제나 스르르 풀렸다. 어느 날 아는 선배가 병원에 입원하여 삼국지를 읽고 싶다고 하여 빌려 주었는데 그만 잃어버려서 가슴이 찢어졌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헌 책방을 갈 때마다 똑같은 삼국지를 늘 찾는다. 하지만 아직까지 발견하지는 못했다.


15. 편집을 하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원고가 있었다면?

편집이라? 이 말은 용어상의 문제가 있다.

책과 관련해 주로 일했던 컴퓨터 관련 서적 쪽에서 말하는 편집자란 지면의 배열을 요구받는 디자이너의 역할이나 오퍼레이터의 역할을 의미한다. 컴퓨터 서적이 아닌 일반 출판 쪽에서 말하는 편집자는 책의 성격과 방향을 규정하고 책이 독자와 만날 수 있도록 세부적으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컨트롤하고 조정하는 리더인 커뮤니터를 의미한다. 용어상의 엇박자를 해결하기 위해 컴퓨터 출판 쪽에서는 디자이너 계열을 지칭하는 편집자 대신 편집자인 자신들을 가리켜 기획자라 부르는 것이 통례다. 용어상의 혼돈이라고 할까.

질문에서 의미하는 편집이 컴퓨터 출판 계열의 편집이어서 디자인과 연관된 것이라면 사실 내가 편집한 책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한참 출판 일을 할 때 내 손때를 묻혀 출간한 책은 약 200여 종이 조금 넘지 않나 싶다. 컴퓨터 출판 쪽 개념으로 이야기하자면 대부분 기획자로서 참여한 것이고 직접 쓴 책도 약간 있고, 릴라이트를 한 것과 편집자로서 디자이너의 역할을 한 것도 있다. 전체 종수를 놓고 일반 출판의 관념으로 보면 편집자로서 책을 대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원고는 물론 순식의 원고도 있었지만 윤원근씨의 원고이지 않나 싶다. 친동생이면서도 프라이드 강한 저자이고, 이미 독자층을 형성한 인지도에, 원고를 집필하는데 나름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서 출간을 위한 설득이 참 싶지 않았다. 원고라는 것이 결국 필자의 생각과 경험과 사상을 전달하는 것이라면, 편집자는 그것을 받아 비용을 지불하는 독자가 원고를 기쁘고 즐겁게 소화할 수 있게 하는 교두보 역할의 연결자에 속한다. 그러니 편집자는 독자가 원하는 부분을 더 끌어내야 하고, 때때로는 독자가 돈을 더 지불해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 수 있는 요소를 가미해야 한다.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목차에서부터 문체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간섭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좀처럼 설득이 되지 않고 끝까지 자기 고집을 부리는 필자는 참 힘들다. 탄탄한 원고일수록 방향을 돌리는 것도 만만치 않다. 필자가 해당 분야의 전문 지식과 그 분야의 식견을 갖고 있는 자라면, 편집자는 독자와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에 대해 나름대로의 식견을 가진 전문가에 속한다. 그런 면에서 협상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스스로도 가장 힘겨운 상대가 아니었나 싶다. 다행인 것은 그런 치열함 속에서 나온 책들이 대부분 훌륭한 결과를 달성한 점은 위안이다.


16. 다음 인터뷰로 추천하고 싶은 분이 있으시다면?

윈스 - 자승자박도 좋다.


17. 셀프북에 오시는 좋은 님들께 하고 싶으신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순식의 마수에서 벋어나자. ^^

순식과의 좋은 인연이 삶에 대한 연대감을 이어가는 가교가 되었으면 좋겠고, 셀프북도 오래도록 즐겁게 운영해 기쁨 두 배 만들어 가는 일상의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_ [오름, xdg]


선택에 관한 간단한 단상

대략난감

글을 쓰면서 난감한 것은 이런류의 글이 결정론의 신봉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선택이란 때로 선택적이지만 대부분은 맹목적이다.
선택은 애초부터 가치에 대한 수용자의 한계선을 정하는 일부터 시작된다. 어떤 선택은 수용자에 의해 버려지며, 어떤 선택은 취하지 못해 아쉬워하거나 더 큰 슬픔을 주기도 한다. 선택선택 가능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수용자는 선택이 수용될 수 있는 충분한 자신의 넓이를 가져야 한다. 최상의 선택은 수용자가 수용 가능한 넓이를 가진 - 딱 들어맞는 가치를 얻었을 때이다. 버릴 수 있는 선택마저도 버릴 수 있는 넓이를 가지지 못하면 삶의 무게가 되어 수용자는 흔들린다. 딱 들어맞는 가치는 수용자의 넓이를 더욱 넓게 만드는 자가 발전의 형태로 성장한다.


선택이 맹목적이 된 것은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 되면서부터 인간은 수용의 한계를 넘는데 집착해 왔고, 가치를 채우는 일에 목말라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자신이 속한 분야, 자신이 속한 영역에서 인간 스스로 일등의 가치가 되고자 하는 욕구는 사회적 인간에게 주어진 제일의 목표이자 숙명으로 강요된다.


일등의 가치로 올라서기 위해 매워야 하는 자신의 빈자리들은 언제나 선택으로 채워진다. 뛰어나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인간은 최상위의 목표를 위해, 스스로 한계를 만든 인간은 그 한계에 도달하기 위해 지금 이 순간도 무언가를 결단하며 선택한다.


선택의 욕구는 소유를 수반하며 권리를 한정한다. 한정이란 뚜렷한 경계가 주어진다는 뜻이다. 소유의 수반과 권리의 한정이 선택으로 규정될 때 차별은 당연한 것이다. 이 때문에 선택은 욕망의 일환이다. 욕망은 한계의 굴레를 넓히는 도구이며, 욕망의 표현은 선택이다.


수용의 한계선이라는 외줄 위로 자전거를 타고 있는 인생이고 보면 벌린 양손의 균형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선택이란 그 무엇도 가능하나 그 무게만큼은 일정하지 않다. 욕망의 강렬함이 선택으로 함몰될 때 목표는 상실되고 균형은 무너진다. 최상의 목표는 언제나 이중적이다. 최상의 선택을 향한 욕망은 불같고 그 길은 가시밭길이다. 진실과 거짓을 가르는 유혹의 긴 계단을 오르기를 요구한다. 최고의 꼭짓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먼저 거쳐야만 하는 운명의 유혹이 있고, 또한 이겨내야 할 도전들이 기다린다. 아무 의미 없이 날뛰는 것 같은 야생마도 자신이 가야 할 길과 그렇지 않을 길을 구분한다. 다만 그 길의 끝을 모를 뿐이다.


무엇이 되었건 최고의 꼭짓점에 있는 선택은 유혹의 긴 계단을 오르고 난 후에야 도달할 수 있다. 선택이 갈림길이 되었을 때 지표가 되는 것은 신념과 인내와 투지다.
목표하는 바가 있는가?
목표가 신념이 되면 모든 삶이 그것을 향하게 된다. 머나먼 그 길을 그것을 향해 가도록 만드는 것은 인내다. 인내는 투지가 뒷받침될 때 성장하며 활기를 얻는다. 투지가 솟구치는 비법은 열렬한 신념을 갖는 것이다. 선택은 신념의 결과이며, 선택의 쟁취는 인내를 통해 자기 가치를 선택의 폭만큼 넓혔을 때 가능하다. 투지는 선택이 안착되도록 땅을 가꾸는 동력이다.


가능하다면 나는 선택의 갈림길에 섰을 때 나의 한발을 내딛게 만드는 신념이 사람을 향해 있었으면 한다. 세상의 모든 선택과 손잡는 것은 결국 사람의 일이기에 사람이 희망이 되는 선택으로 신념이 길을 인도하고 의지가 그 힘이 되며 투지가 그 길을 열기를 희망한다. 그것이 욕망이 들끓는 사회적 인간이라는 굴레 안에 갇혀 서로가 서로를 밝고 일어서서 오로지 한 꼭짓점을 향해 치를 떨며 가야 하는 치열한 경쟁 사회의 그늘에 한 줄기 햇살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꿈같은 상상을 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모든 선택은 예측될 뿐 미래의 끝은 알 수 없다. 기왕 알 수 없는 끝이라면 유혹에 현혹되고도 운 좋게 성공하는 이들보다 조금 힘들더라도 밝은 세상 (지배하는 것이 아닌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사람을 향한 선택이 내가 가야 할 길이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이다.


요약하면,
인생을 살아가며 수만 번 해야 하는 선택은 돌아보면 삶이 살아 온 지표다. 선택이란 삶에 대한 오늘의 가치관이며 대부분 미래의 삶에 대한 결과로 다가온다. 인간은 선택이라는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성장하며 세상의 일부분이 되어 그 세상을 형성한다. 기왕에 그 세상이 밝고 아름답기를 염원한다면 모든 개개인의 작은 선택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생각하는 것이다.


사족 : 얼마 전 다시 탈고한 소설 보물은 자신의 삶이 처한 현실을 만년필옥반지라는 소재를 통해 선택의 가치와 그로 인해 삶이 전환되는 세태를 진지한 어조로 그려본 것이다. 선택의 순간 기왕 한 발을 내딛을 것이라면 그것이 사람을 향한 밝은 신념이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며 그것을 통해 삶이 성장하고, 그 성장이 세상을 향한 맑은 공기가 되면 세상사람 모두 가슴 한 구석에 꿈꾸듯 가지고 있는 이상향을 실현해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염원을 담기 위해 노력한 글이다. 선택이라는 용어를 쓰다 보니 문득 다시 소설 보물이 생각난다.



이 글이 쓰인 메모를 보니 2006.2.15이라고 쓰여 있다. 정확하진 않지만 그 시기는 나 자신도 회사도 힘들었던 시기였던 것 같다.

당시 몸 담았던 싸이버뱅크는 매우 힘들었다. 국내 PDA 폰 시장의 1위라는 명성과는 다르게 대기업의 시장 진출로 가격 경쟁력이 떨어졌고, 사내 개발 스케줄도 고무줄 같았다. 비전과 리더십의 부제로 인한 총제적인 난국이었다. 회사의 기획부서 팀장 자리를 꿰차고 있던 나 역시 고민이 많았다. 근본적인 대안은 있었으나 난마처럼 얽힌 기업내부의 사정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게다가 대기업의 인력 빼가기는 계속되어 나에게도 연락이 온 터라 생각이 뒤숭숭했다.

아마도 그때 선택이라는 말이 참 가슴을 아리게 했던가 보다. 게다가 그날 회사의 중요한 파트너에게 내가 차지하고 있는 직책과 업무의 체계 때문에 원하지 않는 메일을 보내야만 했었던 것 같다. 그것은 매우 현명하지 않은 결정에 의한 것이었고 앞날이 뻔히 보이는 상황이었으나 결국 총대를 멨다. 조직에 몸담는다는 것은 어쩌면 그런 것이다. 그런 울컥한 상황이니 시인詩人을 자처하는 자가 낙서에서 시작해 결국 이런 글을 낸 것이다.

그리고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자의반타의반 결국 회사를 퇴사했다. 그 동안에도 나는 회사를 이직하지 않았다. 몇 해를 함께 한 동료들에 대한 의리와 회사의 간부로서 어려울 때일수록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이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이룬 것은 없었다. 그저 빈손이었다. 그리고 회사에 남았던 그 결정은 현명한 일이었을까 자문해 본다. 결과적으로는 아니지만 그 결정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덕분에 거의 1년을 쉬었다. 그 동안 나는 아들 산이와 정서적인 공감대를 높일 수 있었고 한권의 책을 집필했다. 아들과의 정서적 공감대를 높인 것은 이 시기 나에게 주어진 가장 큰 행운이며 성과였다. 필집한 원고 역시 거의 마무리되어 원하는 방향으로의 출간을 모색하고 있다. 이런 선택들이 나에게 과연 어떤 길을 열게 할까. 그것은 알 수 없다. 인내가 내 길을 열게 하고 투지가 그것을 뒷받침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 모든 것을 결정한 나의 신념이 결국 또 다른 내 길을 밝은 빛으로 인도해 나갈 것이라 믿을 뿐이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_ [오름, xd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