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기르다

산이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귀를 기울이면"이라는 게시판을 만들었다. 각자의 삶이나 자신의 관심사를 진솔하게 이야기하는 그런 자리라고 할까? 차례가 되어 나도 쓰게 되었다.


1편은 그해 있었던 머리를 기르며 느꼈던 생각의 단편이다.



 

머리를 기르다.


요즘 나는 머리를 기르고 있다.
머리를 기르는 것이 뭐 대단한 일일까 하지만 나이 사십이 넘은 남자가 유교적 사고와 직장인으로서의 사회적 규범에 제약을 받는 상태에서 머리를 기른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다행이 내 직장은 소위 IT 기업이라 비교적 복장이나 두발 등이 자유롭기는 하지만 그래도 소위 한국 남자들에게 주어지는 기본적인 규율과 눈들이 존재하다보니 나 자신도 항시 스스로를 자기 검열하는 경우가 지금도 비일비재하다.


생각해 보면 독재와 자유의 시대를 거쳐 온 표준적인 한국 남자가 귀를 거의 가리고 목을 반쯤 덮을 정도로 머리를 기른다는 것은 참 상상하기 힘든 돌출 행동일 것이다. 초중학교 시대에는 그야말로 권위적인 시대라 머리를 기른다는 것은 인생을 포기한 행동처럼 제약을 받았다. 그리고 전두환 시대에 비로소 학생들의 두발 자유화가 있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쇼였고 두발이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었다. 고교 시절에도 학생부 선생들은 여전히 바리캉을 들고 다녔다. 조금만 머리가 길어도 머리 한 가운데로 길을 내는 것이 별 흉이 되지 않던 시대를 살았다. 대학 때는 자유로움 보다는 엄격함에 지배당했고 머리를 빡빡 깎고 군대를 다녀왔다. 그리고 이어진 직장 생활은 대부분 스포츠보다는 약간 긴 머리를 하고 다녔다. 한때 회사를 운영할 때에는 머리에 대해 더 엄격했다.


머리를 길렀다면 아마도 잘 생각나지 않는 초등학교쯤이었을 것이다. 사진들을 보면 귀를 덮을 만큼 길렀던 적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내 의지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 의지에 따라 머리를 기른 적이 단 한번 있었는데 20대의 혈기 방자한 한글과컴퓨터 재직 시절이었다. 그때는 무어랄까 가슴에 품은 꿈이 컸는지 ‘만나는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과 나 자신만의 고유한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적당한 방법이 없는지 고민을 하던 차에 외적 방법의 하나로 머리를 길렀다. 당시 나의 카운슬러였던 윤순이 누나에게 조언을 구했고, 처음으로 미장원이라는 곳을 따라 같다. 그것도 이대 부근의 미장원이었는데 그곳 언니(?, 오늘날에는 스타일리스트라는 말로 표현하지만 그때에는 그저 언니라는 호칭으로 통했던 것 같다.)의 조언의 받아 귀 쪽은 스포츠머리처럼 치고 뒷머리를 기르는 형태로 머리를 길렀다. 당시의 유행한 머리인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그 머리가 맥가이버 시리즈 중에 맥가이버가 한 머리의 형태 중 하나와 비슷했다. 아무튼 한 사람의 머리를 다듬기 위해 한명의 언니와 여러 사람의 보조들이 붙어 서비스하는 행위를 처음 겪어 본지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그 의도는 매우 훌륭했고 사람들에게 외적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 과정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머리를 언제까지 유지했는지는 기억에 없다. 아마도 귀를 덮지 않는 형태의 긴 머리라 심리적으로 머리를 길렀다는 의식이 희박해서일지도 모르겠다.


그 후 어떤 계기로 생활 한복을 입게 되었는데 이것이 머리를 기르고자 했던 의식과 같은 것이었는지 모르지만 그 후로는 머리를 기른 기억이 없다. 이상하게도 나를 대했던 여러 사람들이 생활 한복이 내 이미지와도 잘 맞는다고 하는 칭찬에 힘입기도 했지만 입어 보니 편하고 마음도 편안해지는 느낌이라 이후 생활 한복 마니아가 되었다. 지금도 가지고 있는 양복보다 생활 한복이 더 많다. 그런데 생활 한복이라는 것이 보통의 옷보다 더 시선이 많이 가는 옷이라 머리까지 장발이면 시선을 더 견딜 수 없다 판단했는지 생활 한복을 입으면서 머리가 조신해 진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그 이후 장발에 대한 기억은 끊겼다.


20대의 긴 머리 사건 이후로는 스포츠머리이거나 그보다는 조금 긴 머리를 오랜 기간 고수해 왔다. 이른바 바른생활 머리다. 유지 관리도 편하고 이런 머리는 5,000원하는 규격화된 브랜드 머리점에서 쉽게 깎을 수 있는 스타일이라 접근이 쉬웠다.



사실 나는 바람에 머리가 날리는 느낌이 참 좋다.

머리가 바람에 날리면 산발이 되는데도 바람을 받으며 머리가 펄럭이듯 날리면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쾌감을 얻는다. 마치 나도 날리고 있다는 느낌, 하늘하늘 거린다는 느낌, 붕 떠오르는 것 같은 느낌과, 지상의 발이 지면에 붙어 있기 위해 긴장하는 약간의 저항 사이에 존재하는 부조화 등의 느낌이 가슴에 새겨진다. 그런 느낌들이 가슴에 스물스물 기어들어오며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느낌을 처음 느낀 것은 어느 날 밤의 인수봉 위에서였다. 20대의 질풍노도와 같은 시기는 나에게 참 불안하고 힘겨운 삶이었다. 삶이 한번 바뀌었고, 바뀐 삶 역시 늘 불안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마음을 다잡을 수 없을 때는 일하다 말고 구두에 정장 차림으로 원효 리찌를 타고 백운대에 자주 올랐다. 젊은 시절 몸담았던 한글과컴퓨터의 근무 환경이 좋았던 탓도 있었다. 1주에 44시간 하루 4시간 이상만 근무하면 되는, 지금 생각해도 최고의 근무 조건에서 일하다 보니 일이 막히거나 삶이라는 과중한 형이상학적 스트레스를 받으면 컴퓨터를 로그아웃(로그아웃을 하면 근무시간 산정이 안 된다. 그래도 게으른 것은 아니어서 항상 70시간 넘는 주간 근무 기록을 남겼다.)하고 열기를 식히기 위해 무작정 산을 오르는 것이다. 때로는 그것으로도 마음의 화를 참지 못한, 부글부글 가슴 끊는 밤이면 배낭을 메고 야간 암벽 등반에 나섰다. 이렇게라도 마음을 식혀야 삶이 살아나는 것이다. 다잡지 못하고 풀어져 버리면 그땐 속수무책이 될지도 몰랐다. 항시 책상 밑에는 암벽화, 안전벨트, 카라비나, 로프 등이 배낭 속에서 대기 중이었다.


당시 암벽 실력이 일취월장하던 때라 겁이 없었다. 솔로 등반을 한다고 여러 번 선배들에게 걸려 혼이 나기도 했지만 대슬랩을 넘어 인수 B 코스로 오르는 길 정도는 가벼운 리치 등반을 하듯 혼자 올랐는데 컴컴한 밤 랜턴에 의지해 오르는 맛이 정말 좋았다. 흐릿한 헤드랜턴에 시각의 모든 것을 의지하며 천 길 낭떠러지를 홀로 오르다보면 마음속의 화는 어느덧 삭혀지고 삶에 대한 무서운 집중력이 되살아났다. 죽기 위해 오르는 길은 아니지만 그 길은 죽음을 도처에 깔아 놓았고 아무리 익숙한 길일지라도 어둠 속에서는 모든 것이 흔들렸다. 그 두려움을 뚫고 등반을 마친 후 아무도 없는 인수봉 위에 올라 철퍼덕 바닥에 주저앉으면 저절로 “휴~” 하는 한숨이 나왔다. 그것은 어쩌면 “다행이야. 이렇게 살아있어서”라든가 아니면 또 살아갈 남은 날을 위해 “이제 그만 되었지. 마음 풀린 거지.” 하는 위안의 하나였다. 그리고 준비해 온 라면 하나를 끓여 먹으면 다시 세상에 나가 투쟁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는 것이다.


아마도 5월 초순 쯤 되었던 것 같다. 그날도 생리를 하는지 가슴 속에 이는 화를 참지 못하고 어두운 밤 홀로 인수봉을 올랐다. “휴~” 하며 정상에 올라 뜨거운 라면으로 속을 채운 후 찬 바람을 피해 우모복에 몸을 숨기고 찬란한 서울의 야경을 인수봉 위에서 한참을 보고 있었다. 더 있고 싶었지만 점점 바람이 차가워졌다. 두터운 우모복을 뚫고 한기가 몰려왔다. 가야할 시간이다. 물러날 때를 아는 것도 산에서 배워야 할 겸손의 하나. 하강 코스로 이동해 하강용으로 전락한 로프를 피톤에 걸고 줄을 날렸다. 로프는 팽팽하게 일직선을 그렸다. 하강 코스에서 맞이한 바람. 대단한 바람이었다. 중력의 법칙을 무시하며 수평선을 펼치듯 바람의 방향으로 로프가 걸렸다.


4월말 5월 초가 되면 인수봉의 하강 루트는 항시 강한 바람 탓에 가장 조심해야 할 곳으로 변한다. 계절이 바뀔 무렵이라 서해에서 강한 바람이 들어오는 때다. 북한산 앞까지 막힘이 없으니 바람은 그 강한 힘을 믿고 줄 곳 줄달음쳐 오다가 북한산에 이르면 그만 당황하고 만다. 836m의 백운대와 810m의 인수봉이 긴 골을 걸고 버티고 있다. 그러니 서로 빠져 나가려고 요동을 친다. 백운대와 인수봉 사이의 골은 그래서 바람의 아비귀환이요 난장의 전형을 보여준다. 경쟁 한번 없이 웃으며 온 바람들은 이 좁은 골에 이르러 서로 먼저 나가겠다고 다투는 형국이니 순간순간 바람도 이런 바람이 없다. 봄이 되었다하나 바다에서 들어오는 바람은 차고 습하다. 인수봉의 하강 루트는 하필이면 인수봉과 백운대 그 사이의 바람 골이다.


그러니 이때가 인수봉에서 가장 많은 사고가 나는 때이다. 하강 루트 쪽에서 연등을 하다 밤이 되면서 여러 명의 목숨을 빼앗았던 대 사건도 이때에 일어났고 낙석 사고며 등반 사망 사고 또한 이때의 기록이 가장 많다. 계절이 바뀌어 시즌이 시작될 때라 사람이 몰리고 아직 시즌에 완전히 준비가 안 된 사람들이 차고 습하고 강한 바람에 노출되면서 이런 저런 악연들이 생기는 것이다.

나도 이 골에 있는 산악회 30주년 기념 루트인 “알파30”을 혼자 보수 하러 들어갔다 겨우 볼트 하나를 박고 추위에 입술까지 파래져서 나왔던 기억이 나는데 이때 역시 4월 말이었다. 찬바람에 맛이 간 내 몰골이 당시에 얼마나 처참했는지 지나가던 등산객들이 앞 다투어 먹을 것과 뜨거운 물을 주었던 기억이 난다.


하여튼 겨울에도 만나기 힘든 강한 바람이 자주 불어오는 계절. 그 날 밤이 아마도 그런 밤이었던 것 같다. 긴 여운을 남기며 하산할 시간. 침낭이라도 가져 왔다면 아침까지 잠을 청해 볼 수도 있었겠지만 그럴 준비까지는 미처 하지 못한 밤. 로프에 팔자 하강기를 걸고 안전벨트에 걸려있던 카라비나를 하강기와 연결한 후 링을 채웠다. 그리고 피톤에 걸려 있던 몸자용 카라비나를 풀었다. 몸자가 풀리면서 팽팽하던 안전벨트가 느슨해졌다. 몸을 약간 뒤로 젖히자 이네 팔자 하강기와 연결된 부위가 다시 안전벨트를 팽팽하게 당긴다. 이제 하강을 할 시각이다. 몸을 낮추고 체중을 이용해 하강기에 걸린 줄을 풀면서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몸에 익은 간단한 일이다. 그런데 몸을 낮추는 순간 안 그래도 팽팽하던 바람이 갑자기 더 세차게 밀려오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내 몸을 감싸더니 갑자기 하늘로 비상하는 것이다.

흡! 비명이 터질 뻔했다. 중심을 잡으려고 발끝에 온 힘이 모였다. 그리고는 날아가지 않기 위해 엉덩이를 낮추고 체중을 무릎 아래로 집중했다. 로프를 잡은 오른손은 땀이 날 정도로 힘이 들어갔다. 비록 몸이 완전히 들리지는 않았지만 오한이 날 정도의 기세였다. 팔자 하강기가 로프에 제대로 걸려 있지 않았다면 산 아래로 추락했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그런 바람.


그때 느낌이 왔다. 짧은 머리로는 느끼지 못했지만 눈썹이 날리는 파리한 느낌. 처음 느껴보는 짧은 전율에 몸이 떨었다. 그 느낌은 뭐랄까. 온 몸이 다 날리는 느낌이랄까. 오버행으로 하강할 때 발을 밀며 허공에 몸을 날리는 순간 가슴 아래가 찌릿하며 오줌을 지릴 것 같은 그런 느낌. 아마도 그런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 왜 하필 눈썹이란 말인가? 더 긴 머리도 있었는데 감각조차 느끼기 힘든 그런 부위를 통해 전율이 느껴지다니? 오랜 고민 끝에도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었지만 그 느낌만은 바람이 불 때마다 인수봉 위에 설 때마다 늘 생각나는 잊을 수 없는 이채로움이었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그 느낌은 오래지 않아 어느 날 우연히 다시 나를 찾아 왔다.



머리를 자르는 시기를 몇 번 놓치다 보면 그리 길지는 않지만 더벅머리가 될 때가 있다. 이 때 쯤이 되면 주변의 눈총과 가족들의 성화가 극에 달한다. ‘조만간 꼭 머리를 깎아야 겠다’고 결심을 하며 집을 나선 어느 날, 차고 강한 바람이 찾아왔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내 머리를 흔들고 지나갔다. 머리가 날리며 산발이 되었는데 바람이 지나가는 순간 눈썹 날리던 그때처럼 가슴이 부르르 떨었다. 분명 같은 느낌인데도 왠지 다른 느낌. 좀 더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 그 순간 그 느낌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인수봉에서의 그 느낌은 오한이 나고 살이 떨렸던 느낌이었다면 이 느낌은 마치 기대하지 않았던 뜻밖의 선물에 환희를 느끼는 것이랄까. 내심 나를 기억해 주었으면 하고 은근히 기대했던 사람이 어느 날 문득 내 앞으로 다가와 손을 잡아주는 짜릿함 같은…….

생각건대 그 순간부터였을까? 머리가 날리는 느낌이 참 좋았던 것이. 아마도 그럴 것이라 생각이 든다.



아쉽게도 그러나 나는 머리를 기르기에는 알맞지 않은 몇 가지 제약 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 첫째는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사회가 만들어 놓은 남성의 머리에 대한 관념이다. 머리를 자르는 것은 불효라 하여 단발령에 반발해 자결을 한 자들까지 있었다 하는 시대가 불과 100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어느덧 우리 사회에서는 남자가 긴 머리를 갖는 것은 사회에 대한 반항이요 부도덕처럼 보이는 시기에 살고 있다. (시대가 바뀌었지만 적어도 내 세대에게는 아직도 상당부분 유효하다.) 이건 한국이라는 사회가 가지고 있는 하나의 규범이요 역사가 만들어 낸 경직성이니 따로 논할 필요가 없는 부분이다.

둘째는 내 머리가 건성 모발이라는 데 있다. 건성 모발이니 습성이나 중성 모발에 비해 머리를 감고 말리고 나면 머리가 붕 떠서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이 때문에 머리를 가라앉히기 위해 수십 번의 빗질과 잘 하지 못하는 드라이를 한답시고 시간을 잡아먹는다.

셋째는 머리숱이 너무 많다. 건성에 머리숱까지 많으면 머리 건사가 참 힘들다. 부풀어 오를 때의 통제가 힘들고 머리가 조금만 자라도 더벅머리가 되기 일쑤다. 그러니 짧게 쳐버리는 것이 상책이 된다.

넷째는 머리가 유난히 곱슬이다. 곱슬머리 중에서도 자연스럽게 웨이브가 나오는 머리라 생머리를 하고 다니면 다들 파마한 것 아니냐고 물어올 정도다. 한 때는 머리를 조금 길러 스트레이트파마를 두 번인가 했었다. 처음에는 좋은 듯 했지만 머리가 뻑뻑해지는 느낌이 영 아니었다. 이후에는 차라리 머리를 짧게 깎았다.

다섯째는 머리가 너무 늦게 자란다. 이전에는 머리가 너무 빨리 자라는 듯 했으나 요즘은 머리가 자라는 것이 너무 더디다. 8개월을 길렀는데 겨우 귀를 반쯤 덮고 목 뒤를 반쯤 가렸을 뿐이다.

여섯째는 무스나 헤어로션 같은 머리에 바르는 것을 유난히 싫어한다. 때때로 머리를 깎고 나면 미처 내 의사도 물어보지 않고 이런 것들을 발라주는 경우도 있지만 과히 기분이 좋지 않다. 그냥 머리를 손으로 넘겼을 때 머릿결의 자연스런 촉감이 묻어나는 것이 좋지 머리를 만지는 순간 딱딱한 무언가가 얽혀 있는 느낌은 영 거시기다.

일곱째는 스스로의 자기 검열이다. 너무 오랜 세월 동안 짧고 단정한 바른생활 머리에 인이 박히다 보니 스스로가 긴 머리에 대해 확신을 갖거나 어찌 가꾸어야 할지를 모르는 것이다. 아직 자신의 긴 머리를 보면 오히려 부자연스러움을 느낄 때가 많다.

이러니 그냥 짧게 깎고 다니는 것이 여러 가지 제약을 단숨에 커버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되었다.



머리를 기를 때면 늘 꺼리는 이것들이지만 좀 다르게 생각하면 이런 제약들은 바람에 머리가 날리는 그 느낌에 일조를 하니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거리를 걸으며 바람에 머리가 날리는 것은 건성이고, 곱슬머리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숱이 많은 것에도 영향을 받는다. 머리에 무언가 바르는 것을 싫어하니 또한 자연스럽게 머리가 바람에 날린다.


자기 검열과 사회의 눈에 대한 극복만 가능하다면 머리를 계속 기르는 것이 요즘 나의 작은 소망이다. 다행이 아내는 아직 내 편이나 나의 어머님은 긴 머리가 영 마음에 걸리시나 보다. 하지만 아들이 이제 길러 보지 않으면 언제 길러 보냈냐는 설득에 그만 반은 넘어오고 반은 넘어오지 않으셨다. 아직도 전화가 오면 대뜸 “머리는 잘랐냐?” 하신다. 아예 “머리 안 자르면 오지 말라” 하신다. 어머니 눈에는 무엇이든 ‘사회가 계량화한 평균치’ 만큼만 사는 것이 최선이고 최고인 듯하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나이 어린 아이가 되어 어머니의 눈을 피해 머리를 기르고 있다. 아마도 이것이 내 자기 검열의 최일선일 것이다.


아직 내 머리는 다 길러지지 않았다. 귀를 다 덮고 싶지만 한참을 길렀는데도 여전히 귓밥을 넘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 아내의 조언에 따라 머리숱을 치고 나서 머리가 한결 단순해진 느낌이라 좋았지만 머리끝이 여전히 제 마음대로 여러 방향으로 웨이브를 그리는 바람에 관리가 힘겹다. 아침마다 아직 낮선 긴 머리를 어쩔 줄 몰라 한다. ‘조금만 더 길러서 이정도만 되면 보기 괜찮을 거야’라며 스스로 위안을 하지만 아무래도 어색한 머리에 신경이 쓰이는 것을 다 걷어내지 못한다.



며칠 전 출근길.

삼성역에서 대치동으로 넘어가는 긴 언덕을 올라가며 바람을 맞았다.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가 모근을 보이며 90도로 솟구쳐 춤을 춘 것이다. 때때로 강력하게 때때로 부드럽게 머리를 흔들어 놓은 바람은 산발이 되어서야 만족한 듯 떠나갔다. 하늘거리는 바람의 여운만이 남았을 때 나는 왠지 짜릿함과 행복한 기분에 취했다. 그리고 사무실로 들어가기 전 화장실에 들어가 엉망으로 변한 머리를 진정시키며 거울 속에 있는 나를 보았다.

이전에는 “머리를 자른다는 것” 이라는 시를 몇 편 쓴 적이 있었다. 불가의 의식과 더해져 무언가 정신적이고 종교적인 뉘앙스를 풍기며 자름의 미학을 노래했다. 하지만 요즘 문득 드는 생각은 “머리를 기른다는 것”이다. 버리지는 못할망정 주어 담기만 하는 모습은 아닌지, 누추한 욕망의 단편을 채워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한다. 다른 이에게는 관대하면서도 자신에게만은 늘 들이대는 검열의 단편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 본 내 모습은 “멋지다.” 였다. 왜 그런 생각이 든 걸까? 산발한 모양이 조금 과장하자면 “괴기스럽다”고 해야 할 텐데. 꾸며지지 않는 모습으로 선 나. 그 안에서 나는 ‘무엇으로부터도 속박 받지 않은 자신’, ‘아무것으로도 꾸며지지 않은 본연의 모습’ 그런 모습의 단편을 보고 싶어 했고 또 본 것은 아닐까? 그것을 두고 멋지다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문득 다시 생각한다. 기왕이면 입은 옷마저도 다 벗어던지고 거울 앞에 섰다면 어떤 느낌일까? 추했을까? 아니면 그 느낌이 더 지속되었을까? 왜 이제 와서 그런 생각까지 드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때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한 것에 대해 조금은 얇은 후회가 밀려온다.


이렇게 생각하니 머리를 기른다는 것과 머리를 자른다는 것은 어쩌면 동일한 선상의 이야기인 것 같다. 머리를 다듬는 정도의 이발이 일상의 일이라면, 머리를 잘라낸다는 것과 머리를 기른다는 것은 일상에 대한 이탈을 의미한다. “머리를 자른다는 것은 일상을 털어내고 삶을 등짐으로서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일이라면 머리를 기른다는 것은 일상에 의해 제약되었던 본연의 자신을 찾아내 잃어버려지는 삶을 복원하려는 일이다.”라고 말한다면 너무 거창한 것일까?


어찌되었던 좋다. 일상이라 일컬어지는 사소하지만 거대한 제약의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명분이 필요하고, 인간의 역사와 사회가 만들어 준 스스로의 검열을 피해가기 위해서는 많은 논리가 필요하니까.


바람이 분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머리를 흔들어 본다. 머리가 날린다. 바람이 날린다. 머리를 하늘로 춤추게 하는 긴장과 눈가를 스치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잔머리의 애틋함이 교차한다. 마음을 동하게 하는 기분 좋은 바람이다. 아. 날아가고 싶다. 나도 “바람이 되어” 날아가고 싶다. 가슴을 활짝 펴 본다. 중력의 법칙을 무시하지 못하는 발만 지면에 붙어 동동거린다.


아무렴 어떤가? 지금 이 순간만이 중요하다.



“아! 바람에 날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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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오름, xdg]


어린이집 첫 아마

"오름 언제 다시 아마야?"

"글세. 아직은 계획이 없는데......"

며칠 전 어린이집에 갔다가 연재가 언제 다시 아마를 할 것인지 묻는다. 내가 아마일 때 함께 갔던 인공암장이 나름대로는 재미있었나보다.

연재는 빨리 아마를 하라고 조른다. 옆에서 영택이도 찬동이다. 연재는 그날 재미있게 놀았지만 영택이는 그날 컨디션이 별로인지 즐거워 보이지 않았는데도 가고 싶단다. 어린이집 규정상 한 가정 당 일 년에 3번은 아마를 해야 한다. 교사들의 휴가와 각종 빈자리를 결국 부모가 채우는 것이다. 다른 어린이집이라면 불가능한 이야기겠지만 공동육아를 하는 부모들이 운영하는 어린이집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귀찮고도 힘든 그날이 되면 모든 힘겨움에 앞서 우리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함께 목도하고 함께 뒹굴게 된다. 집에서 함께 놀아줄 때의 산이를 보는 것과는 다른 느낌의 무언가를 만난다. 그래서 지난해 가장 잘한 일 중 하나가 산이를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래 글은 지난 10월에 첫 아마를 하며 아이들과 지낸 날적이다. 나중에 날적이가 과해 아이들 평하는 부분은 지웠다. 대표교사가 전화를 해서 가능하면 아이들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항상 보여주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했고, 나 자신도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 글은 그냥 날 것이다.

규정상 자기 아이가 속한 반은 맞지 못하고 큰방 아이들과 생활했다. 산이는 아빠 눈치를 보며 눈물 바람을 뿌려댔다. 그런 와중에도 유쾌하고 즐거운 날이었다. 비록 몸은 고되었어도.




초보 아마 오름입니다.

오늘 첫 아마를 했네요. 분홍이 대신 아마를 하는 것이라 도톨방을 할 줄 알고 내심 긴장했지요. 애기들과 뭐하고 노나 걱정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전날 나비방을 할 거라는 소식을 듣고 급 반전...

큰 애들이라 걱정을 많이 덜었습니다.


오전 9시 터전에 도착했어요. 거의 매일 산이가 1등으로 8시에 오는데... 덕분에 9시에 등원. 그런데 정작 산이가 떨어지질 않네요. 눈물 바람에 혼났습니다.

우유곡절 끝에 나들이. 물도 싸고, 물티슈도 준비하고. 나비들에게 오늘은 기어오르는 곳으로 간다고 했더니 일단 모두 찬성. 행단보도를 3번이나 건너야 한다고 하니 다들 좀 실망하는 눈치였지만 하여튼 출발.

간 곳은 에스트로맨 실내 인공 암장. 경성고등학교 4거리에서 청기와 예식장으로 조금 내려가면 SK 주유소가 있어요. 주유소 옆 송원전기라는 큰 간판이 있는 4층 건물 지하가 그곳이지요.

갑자기 건물 지하로 내려가자 아이들 실망하는 빛이 역력하네요. 하지만 인공 암장에 들어서자 환해지는 아이들. 떨어질 때 부상입지 말라고 30Cm 두께의 고탄력 스폰지가 매트리스처럼 쫙 깔려 있어서 푹신푹신해 아이들은 넓은 실내 암장을 막 뛰어 다닙니다.

먼저 아이들을 모아놓고 오름이 두 가지 당부를 합니다. 첫째 뛰어다니지 말 것. 매트리스 사이에 혹시라도 발이 걸려 넘어지면 다친다. 하지만 이 당부는 사실 별 소용이 없었어요. 혈기 왕성한 아이들에게는 좀 무리한 주문. 두 번째는 올라갈 때는 오름이 보는 데서만 올라갈 것. 인공 암장을 지을 것을 예상하고 만든 지하라 4M 높이. 혼자 올라가면 위험한지라... 이 약속은 모두 잘 지켰지요.

먼저 간단하게 턱걸이 놀이. 공중에 매달아 놓은 나무 봉에 매달려 턱걸이하는 기구에 아이들 모두가 도전했지요. 열심히 매달려 한두 개씩 턱걸이(?)를 합니다. 아이들은 별 힘든 기색이 없는데 아이들을 잡아 준 오름의 이마에서는 땀이 나네요.

그 다음 3.5M 높이의 직벽 올라보기. 아이들이 일렬로 줄을 서서 기다리고 한 사람씩 오름과 함께 올라보았지요. 손. 발. 지적해 주는 구령에 맞춰 몸이 움직여가니 어느덧 정상. 아이들 모두가 한번씩 올라 보았어요.

특히 여산이는 키도 크지만 몸이 유연해서 조금만 해 보면 잘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연재는 몸이 가벼워서 움직임이 좋았어요. 예은이는 팔 힘이 강해 힘이 넘쳤고, 승희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올라갔다 내려왔고, 채민이는 의외로 조금 힘이 부족했지만 끝까지 잘 했어요. 정민이 역시 깔끔하게 잘 올라갔다 왔고, 규형이도 작은 체구답지 않게 다부졌고요. 병준이 역시 쉽게 다녀왔어요. 재인이도 도움없이 잘 다녀왔고, 영택이는 조금 힘이 부족했지만 끝까지 올라갔다 왔지요.

그 다음 자유롭게 놀기. 벽에 붙기도 하고 넓은 매트리스를 무대로 뛰어다니고 기고 뒹굴다보니 어느덧 나들이를 마무리할 시간.


인공 암장을 나와서 터전으로 돌아갈 시간.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기네요. 아이들이 올 때와 달리 짝을 바꾸면서 소란이 생겼어요. 게다가 재인이는 인공 암장에서 아이들 몇이 모여 역할 놀이를 하던 것에 끼지 못해 마음이 상했지요. 채민이 누나 때문이라고 채민이와 입장이 갈리면서 상황이 묘해졌어요. 그래서 손바닥 위 아래 놀이로 짝을 새로 정하고 겨우 출발을 했는데 재인이는 앙금이 남았는지 마음을 풀지 않네요. 짝손을 거부하고 혼자 가겠다고 하는 통에 초보 아마 급 당황.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재인이 편을 들어주어도 재인이가 계속 더 나갈 것 같고. 결국 어찌어찌하여 손잡기를 거부하는 재인이의 손을 잡고 터전으로 귀환. 하지만 그 여파는 오래 갔어요. 재인이가 자신이 더 주장을 해도 되는 것으로 알아들었는지 낮잠 시간까지 여운이 갔으니... 그때는 재인이도 자신이 놀이에 끼지 못해 억울한 심정을 토로할 당시라 그 상황과 짝손을 하지 않은 것을 분리해 처리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던 것 같아요. 가능하다면 상황이 연결되지 않도록 끊어 생각하도록 이야기 할 필요가 있었던 것 아닌가 하는 반성이 되고 또 일차적으로 '갈 때 짝꿍'이 '올 때의 짝꿍'이라고 명확하게 이야기해주었다면 상황이 복잡하게 꼬이지 않고 오는 길이 좀 더 즐겁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돌아와서 식사시간. 어린방들 식사시킬 때보다 큰 방이라 확실히 편안하게 지나가네요. 이빨에 문제가 있다는 채민이, 규형이와 아직 시금치를 잘 처리해내지 못하는 영택이를 빼고는 모두 씩씩하게 식사를 잘해요. 영택이는 시금치를 조금 덜어주자 금새 밥을 다 먹었고, 규형이와 채민이도 끝까지 남기지 않고 잘 먹었어요. 또 놀라웠던 것은 아이들이 식사를 하고 나서 바로 치카를 스스로 한다는 것이었죠. 꽃다지가 그간 아이들에게 좋은 버릇을 가르쳐 준 것 같아요.


고모가 만들어 준 맛있는 점심 식사 후에는 마당놀이를 하고 낮잠을 자러 들어왔어요. 자리를 깔아주니 아이들이 스스로 옷을 갈아입고 잘 준비를 합니다. 4권의 읽고 싶은 책을 다 읽어 줄 때까지 오히려 눈이 말똥말똥. 책을 다 읽어 준 다음에서야 쉬를 누고 물을 먹겠다고 했다가 꽃다지에게 혼나고(잠자리에 들어오기 전에 쉬를 누고 물을 먹기로 약속을 했다네요.)... 잠에 들었지요. 규형이는 집안 일로 조퇴.


간식을 먹은 후에는 또 마당놀이. 아이들도 마당놀이를 원해서 마당놀이를 밀었지요. 마당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보니 한톨방이랑 또 다른 모습을 봅니다. 산이가 있는 한톨이들은 마당놀이를 할 때 대체로 같은 놀이들을 합니다. 모내놀이가 대부분인데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함께 모여서 노는데 나비들은 연령 대가 섞여 있어서인지 3가지 부류로 나뉩니다. 고무줄놀이를 하는 여자아이들. 축구를 하는 정민이와 병준이, 재인이와 영택이는 모래놀이. 마음대로 놀아보라 하니 잘 섞이지 않네요. 여자아이들 중에서도 예은이는 실내에서는 잘 어울리는데 고무줄놀이는 끼려 하지 않습니다. 매일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오늘은 그렇게 분리되어 보이네요.


저녁 6시. 드디어 오늘 아마가 끝나는 시간. 하루 종일 아빠 주위를 맴돌며 눈물 바람을 뿌렸던 산이가 빨리 집에 가고 싶다고 칭얼거립니다. 정말 하루가 어찌 갔는지 모르게 휙 지나갔네요. 그들 나름대로 조그만 사회를 이루고 있는 아이들 모두의 희노애락과 애증의 관계를 가슴에 담으며 초보 아마의 하루를 마칩니다.



아마를 마치며 느낀 점.

"다친 아이들 없이 잘 마쳐서 감사하다."

"아이들과 더 많이 친해져서 기쁘다."

"다행히 핸드폰이 울지 않아 편안했다."



다음 아마를 위해 개선할 점.

"아마를 하기 위해서는 해당 교사와 미리 많은 교감이 필요하다. 아이들의 상태와 연속성의 관점에서 보면 다른 방 부모가 아마로 올 때 많은 장애에 부닥친다."

"해당 교사 역시 아마에게 하루 일정에 따른 여러 가지 준비 또는 주의 사항 등을 알려주는 것이 좋겠다. 예를 들어 나들이 나갈 때 가져갈 것, 미리 약속한 짝손(올 때도 같은 짝), 자기 전 하기로 한 약속 등을 미리 아마가 알고 있으면 그대로 할 것이며 흐름이 좀더 매끄러워질 것이라는 생각이다. - 교사회에서 고민하고 반영해 주시길..."



오늘 나에게 보인 아이들의 모습(오늘 하루의 삶을 통해 본 오름의 사적 견해임.)

정민 : 무엇이든 잘 하지만 때때로 분쟁이 생겼을 때 그것을 내게 설명해 줄 때는 이전과는 다르게 왠지 위축된 모습을 보여준다. 혹 자신은 늘 양보를 해야 한다는 자기 검열성 스트레스를 받거나 누군가 자신을 평가하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해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재인 : 모두가 모일 때 앞에 잘 나서지 않고 뒤로 물러나 있다. 그리고 누군가 자신을 불러와 맨 앞줄에 앉혀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모습이다. 그러지 않으면 삐지는 편이다. 스스로 일을 만들어 내는 역할 모델이 필요하고, 칭찬과 냉정함 사이의 절묘한 줄타기가 필요해 보인다. 어쩌면 오늘 컨디션이 별로 인지도 모르겠다.

규형 : 누구나와 잘 어울린다. 특별히 모난 데가 없지만 잘 들어나지 않는다. 가끔은 내재된 에너지를 발산해 주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채민 : 자존심이 강하고 의사가 분명하고 처신에 대해서도 밝다. 싫고 좋음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것이 작은 사회에서는 정치적인 모습으로 보이는 부분도 있다. 리더로서 행동하지만 너그러움과 포용력이 조금은 아쉽다.

승희 : 그간 밝고 강한 모습을 주로 보았는데 오늘은 의외로 소심한 모습을 함께 보여준다. 기분이 상하면 자기 의사를 분명히 밝히기보다 침묵하는 편이다. 자기의 이야기를 하다가도 누군가 강하게 자신에게 어필하면 져 준다. 뜻밖에도 외적 지향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여산 : 신체적으로 가장 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스포츠 클라이밍이 장미빛 전망이라면 한번 권해 볼만도 하겠지만 그렇지 못하니 그러진 못할 것 같다. 오늘 여러 분쟁이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여산이에게만은 비켜간다. 관계의 설정이 뛰어나고 크게 두르러짐이 없어 그런 것 같다.

연재 : 모든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다. 특별히 싫고 좋음을 아이들에게 전파하지 않는다. 항상 모든 모임에 끼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져 버리는 듯한 느낌도 받는다. 자신의 주장으로 무리를 이끌어 가는 역할을 하지 않지만 항상 무리로부터 초대를 받는 재미있는 위치를 점하고 있다.

병준 : 특별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돌아보면 모든 자리에 항상 있는 형국이다. 일명 배후세력이라고 할까. 두루 영향력을 끼치지만 그 자신은 그리 들어나지 않는다. 차분한 성격이지만 때때로 빠르게 흥분하기도 한다.

예은 : 활달하고 사색적인 아가씨. 무리와 잘 어울려 놀지만 때때로 무리에서 떨어져 혼자 있는 경우가 있다. 특히 야회놀이에서 그랬는데 자신이 잘 알고 잘 하는 것이 아니면 돌아서는 편식은 아닌가 잠시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도 너무 활달하고 격이 없어서 오름만 보면 몸놀이를 하자고 달려드는 야성미 때문에 때때로 오름이 피하기도 한다는...

영택 : 주로 재인이와 아웅다웅하며 노는 편이다. 전체적인 교류 면에서는 아직 폭이 넓지 않고, 무리에 끼려는 노력도 소극적인 편이다. 그러다 보니 자기방어 본능이 자주 들어난다. 산이의 모습을 보는 듯한 느낌. 산이처럼 주변에서 아직 도움을 많이 주어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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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오름, xdg]


문호리 전원일기

벌써 양평을 떠난 지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내게는 힘들기도 했지만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양평으로 떠날 때도 그랬지만 서울 우리 집으로 다시 들어올 때도 참 많은 고민을 했다. 양평으로 간 것은 눌러 살 욕심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이 늘 뜻한 대로 되는 것은 아니니 큰 후회나 번민은 없다. 다만 가끔씩 기억이 난다. 눈이 올 때, 뜨거운 한 여름, 그리고 이산가족이 된 써니와 향기를 볼 때마다 생각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가끔씩 운전을 할 때 양수리에서 문호리 집으로 들어가는 이차선 길이 불연 듯 떠오를 때가 있다. 집사람과 나는 그 길을 강변이라고 불렀다. 북한강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는 그 길은 이름난 드라이브 코스 중 하나였지만 우리에게는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지금도 나는 그 길을 다 외우고 있다. 양수리에서 집까지는 약 11Km. 그 길을 달려 10분이면 집으로 가는데 60Km 제한이던 그 길을 매일 다니다보니 보통 80-90Km로 달렸다. 이 코너를 돌면 무엇이 나오는지 어디서 속도를 줄여야 하는지, 천천히 달리는 유람 나온 저 차를 어느 지점에서 추월해야 안전한지, 어느 지점이 상대편에서 오는 차가 앞차를 추월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지, 비가 오면 어디에 물이 고이는지, 눈이 오면 주로 어디가 빙판이 되는지...

그 길은 나에게 서울과 양평을 잇는 통로와 같은 것이었고 엑셀을 그렇게 밟았던 것은 가능한 조금이라도 빨리 서울을 버리고 양평 속으로 사라지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주말을 제외하고는 한산한 도로 탓도 있다. 하지만 아내에게는 그 길이 어쩌면 단절의 길었는지도 모르겠다. 매일 출근하는 남편과 달리 아내는 갓 출산한 아들과 양평집에 갇힌 채 이웃과의 소통 없이 지내야 했다. 새로 이웃을 사귈 시간도 많지 않았고 아내의 친구들도 양평으로 찾아오기에는 심리적인 거리가 너무 멀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양평집으로 친구들이 놀러오고 또 우리도 주말 농장에 땅을 신청하고 작게나마 먹을거리를 걷어내면서부터 안정감을 쌓았다. 또 어린 산이가 자라 펑펑 눈을 맞으며 아빠와 함께 눈사람을 만들 때는 표현할 수 없는 기쁨 속에 빠졌다. 산이는 뒤집기부터, 기기, 서기, 걷기, 말하기, 오줌을 가리는 것까지 양평의 전원에서 모두 해냈다. 덕분인지 큰 병치레 없이 무럭무럭 자라 주었다.


서울에 올라오니 그 모든 것이 그립다. 삶도 바뀌었다. 아내와 나는 직장생활에 바쁘고, 산이는 어린이집에서 하루를 보낸다. 귀엽지만 사나운 써니는 우리와 함께 지내지만 갇혀 지내는 신세고, 응석받이 향기는 장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처가에 있다. 생활인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왔다고 할까.

삶이라는 것은 묘한 굴곡이 있는 것 같다. 기쁨이 있으면 거기에 걸맞는 힘겨움이 있다. 그 둘의 무게는 지내는 동안에는 경중이 다르게 느껴지지만 지나고 나면 같은 무게였던 것 같다. 양평에서의 생활도 지금의 생활도 다 같은 무게의 즐거움과 힘겨움이 있으니...

한번 해 보았으니 다음에는 거처를 옮기는 수준에서 생각하지 말고 삶과 생활을 함께 옮기는 것을 고민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서 살아도 삶은 지나가고 이곳으로 옮겨도 인간이라는 삶은 계속됨으로...


아래의 글은 양평으로 이사하기 직전부터 쓴 간단한 메모다. 겨우 두 달 쓰고 만 글인데 처음에는 양평으로 집을 옮기는 소회를 쓰고자 시작했다. 하지만 회사일이 쌓이고 짬이 없어지자 띄엄띄엄하더니 2달 정도 지나니 더 쓰기가 힘들어졌다.

원노트에 썼던 내용을 다시 옮긴다.



2004/12/8

오늘 드디어 살 집을 계약했다.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의 산동네. 집은 좋고 깨끗하다. 집사람과 애기와 셋이 살기에는 벅찰 만큼. 가격도 시세보다 싸서 착한 계약을 했다고 할까. 대리인으로 나온 사람들이 솔직히 미덥지는 않았지만, 부동산에서 맺는 계약이라 어느 정도 안전하다고 판단했다. 부동산 아주머니는 뭐든 열심히 하려고 하는 것이 믿을 주었다.

이곳에 오기 위해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김부장의 조언은 마지막 결정을 하는데 많은 힘이 되었다. 앞으로 1년 또는 2년 정도는 여기서 살면서 많은 것들을 새로 익혀야 할 것 같다. 다만 아쉬운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외지고, 5분쯤 더 멀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 집 계약을 오늘 저녁에 하고, 집사람이 순산하면 그것으로 족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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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에게 전화가 오고 부동산에서도 전화가 왔다. 대리인들의 자격이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계약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는데 잔금 치르는 일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한다. 12/18일 입주를 하고 잔금을 바로 주겠지만 혹시 오늘 저녁 우리집 계약에서 문제가 발생할까봐 우리 사정에 따라 잔금을 입주 후 일주일 정도 미루는 것에 대해 대리인에게는 동의를 얻었지만, 정작 집주인은 그러지 못하겠다고 한다. 부동산에서 보증하는 특약을 하던가 아니면 입주일을 늦추는 안 중 고르기를 바란다. 대리인에게 주었던 계약금은 부동산에서 이미 찾아놓은 상태라서 집주인에게 송금하라고 부동산에 부탁하고, 집주인과는 다시 통화를 했다. 내일 오전 중에 연락을 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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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 계약하기로 한 사람들이 하루만 계약을 미루자고 하더니 다시 토요일 오후로 미루자고 한다. 일이 틀어지는 것일까? 만일 계약을 하지 않으면, 남을 기간이 일주일이라 천상 입주 날짜를 다시 조정해야 한다. 지난번 저녁에 집을 보러 와서 낮에도 한번 보고 싶단다. 토요일 볕 들어오는 것만 보고 계약을 하겠다고 한다. 이사 올 날짜는 18/19일이다. 도배와 장판을 해야 할 텐데 그 시간이 그들에게는 너무 빡빡하다.

나 역시 기왕에 가는 것이면 눈이 오기 전에 가고 싶다. 그러자면 계약을 하고 일정을 확정지어야 한다. 어차피 두고 가려고 했지만 미끼를 던졌다. 북박이 장을 놓고 가겠지만, 정수기와 가스렌즈, 김치냉장고 역시 두고 가려고 하는데 의향이 있냐고 복덕방을 통해 전했다.

더 신경 쓰지 않게 잘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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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귀녀와 통화했다. 자기 집과 가까운 곳이라 참 좋아한다. 지난번 계약에 실패한 신복리 집과도 통화했다. 그러고 보니 그 양반 이름을 아직 모른다. 이사 가면 좋은 이웃으로 지내자고 부탁했다. 좋은 사람들이라 잘 지내면 좋을 것 같다. 아직은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서 도움이 필요하다.


2004/12/9

아침에 집주인과 다시 통화했다. 일단 18일 입주하는 것과 동시에 잔금을 치르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혹시 문제가 생기면 잔금을 치를 수 있는 날짜에 입주를 하겠다는 단서 조항을 달았다. 집주인은 언제까지 주겠다는 특약을 부동산 보증으로 하나만 써준다면 본인은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한다. 아마도 대리인 자격을 놓고 부동산과 집주인 사이에 조금 틀어진 것이 있는 듯 하다. 부동산에서는 자신들이 보증할 한도가 넘는다며 하지 못하겠다고 한다. 간단한 일 같으면서 간단하지 않다. 토요일 계약 시에 일을 잘 처리해야 할 것 같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그나마 잘 풀려간다고 믿고 가야 하는 일이다.

몰릴수록 더욱 힘을 발휘하는 것은 아버지로부터 이어받은 나의 자랑이다. 동생도 그런 점에서는 닮았다. 어제 동생 사무실을 방문하고 많은 생각을 했다. 늘 대견스러운 녀석이지만 나름대로의 삶을 잘 꾸려가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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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어머님, 아버님이 미국으로 출국하셨다. 힘든 여행길이고, 아버님에게는 몇 번 남지 않은 여행길일 수도 있을 것이다. 따님 잘 보시고 좋은 여행하시기를 기원한다. 아버님, 어머님에게는 결국 집 옮기는 문제에 대해 말씀을 못 드렸다. 계약이 너무 늦어졌고, 첫 번째 계약이 불발에 그치면서 말씀드릴 기회를 놓쳤다. 여행을 하루 앞두고 말씀드리기도 그렇고 해서 집을 옮긴 다음 말씀을 드리려고 한다. 전원생활 자체를 어머님이 그렇게 달갑지 않게 생각하실 것 같아 좋은 여행길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 점은 후에라도 백배 사죄드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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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짐 하나는 덜었다. 어머님, 아버님의 미국행이 그것이다. 원래는 우리 아기가 태어나고, 부모님 미국 여행을 보내드리고, 바로 이사를 하는 것이 순서였는데, 우리 아기의 출산이 두주 가량 늦어지면서 모든 일정이 엉망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하늘의 뜻이니 할 수 없는 일. 배에 칼 대지 말고 무사히 순산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2004/12/11

아기는 어제 무사히 순산했다. 집사람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내심으로는 수술까지도 각오하고 있었다. 예정일을 두주나 넘긴 상황이라 허허 웃으면서도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해피엔딩으로 끝났고, 지금 이 순간만은 행복하다. 아. 사랑스런 우리 아기! 사랑하는 나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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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을 하겠다는 사람들은 다시 내일 아침으로 시간을 미뤘다. 계속 미루어진다는 것은 조짐이 좋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동산에 과연 그 사람들이 정말 계약을 할 의지가 있는지 물었다. 조금 짜증이 났다. 사실 그들이 이사 오기로 원했던 날짜가 18일이고, 이 시간을 맞추어 계약을 했다. 그리고 남은 기간이 일주일. 계약이 무산된다면 조금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다른 세입자를 새로 받을 때까지 우리도 입주 일자를 기다려야 한다. 양평 쪽 집주인과의 약간의 갈등이 있을 수 있다. 아예 계약금을 좀 더 높여주고, 입주 일자를 1월로 넉넉하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잘 될 것이라 믿지만 최악의 경우는 늘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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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님과 처제가 올라왔고 그와 동시에 부동산에서 새로 집을 보러 왔다. 계약이 계속 진행되지 않아 집을 보여주기로 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보러오겠다는 사람들을 거절했다. 형제인데 젊은 사람들이다. 일단 내일 오전까지는 다른 분이 결정해야 한다는 점을 말해 주었다. 윗집 아주머니에게는 간단하게 이사를 간다고 했다. 장모님, 처제와 다른 형제들이 한꺼번에 들이 닥쳐 이야기를 자세히 나누지는 못했다. 지난 3년간 정들었던 이웃인데, 언제 시간을 내서 한번 이야기를 해야 겠다.


2004/12/12

집사람과 퇴원해 처가로 조리를 하러 가야 하는 날이다. 장모님과 처제가 와서 한결 마음이 편하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겁다. 아침의 계약은 거의 무산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잔금을 치루는 문제에 대해 명확성이 떨어졌다. 중도금을 먼저 줄테니 설정을 먼저 해제하자고 하는데, 잔금에 대한 명확한 일정이 애매하다. 자기들끼리도 우왕좌왕이다. 그런 문제는 미리 결정을 하고 와야 하는데 이제까지 기다려 온 것도 있고 해서 짜증이 많이 났다. 부동산에게는 분명하게 이야기를 했다. 중도금은 필요 없고, 계약 때 계약금, 입주 시 잔금을 다 치르는 것을 원하고, 그와 동시에 설정을 해제하는 것으로 이야기했다. 중도금만 받았다가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그때는 처리가 아주 난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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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사태가 벌어진 듯 하다. 그쪽에서 제시한 잔금 일정에 대해 내일 답변을 준다고 한다. 부동산도 자신이 없는지 다른 쪽이 있으면 먼저 결정해도 된다고 한다. 결국 우리 계획은 다 틀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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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가로 가는 도중 전국부동산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제 봤던 형제들이 내일 계약을 하고 싶어 하다고 한다. 잔금 관련 부분을 확실하게 단도리하고 그러마 했다. 날짜도 이상하게 우리와 맞다. 최대한 빨리 이사하고 싶어한다. 절망에서 다시 희망으로...

절망이라고 할 일도 아니지만 찜찜한 것이 사실이었는데, 좀 개운하다.


2004/12/13

계약을 했다. 우리 아기가 눈에 밟혔지만 예기 나온 김에 해치우는 것이 좋을 듯 해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잔금은 금요일 치르기로 하고, 설정 역시 당일 해제하기로 했다.


2004/12/14

퇴근 후에 짐도 좀 치우고, 포상 이사도 계약했다. 원래 들었던 금액은 평일 기준이라고 한다. 주말 추가 요금 10만원, 책이 많아서 추가 요금 5만원, 사다리차 추가 요금 5만원, 양평이라 추가 요금 5만원. 그래서 서울 시내 평일 이사 기준 35만원이 60만이 되었다. 항상 책을 버리며 산다고 생각했는데, 웬만한 교수집 보다 책이 많다고 계약하러 온 여자가 푸념이다. 이사할 때 책 짐 무거운 것은 나도 잘 안다만...


2004/12/17

오늘 잔금을 다 확인했다. 이제 정말 이사를 가는 것 같다. 설정도 해제했다. 일주일 정도 걸린다고 한다. 세입자들은 전세권 설정을 포기했다. 법무사가 모든 서류를 준비해 왔다가 그냥 갔다. 살고 있는 집에서 전세금을 안 빼주어서 소송을 해야 한다고 한다. 나는 믿을 수 있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사는 일은 혹시 모르니 전세 보험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내일은 이사하는 날이다.


2004/12/18

이사하는 날.

아침부터 분주했다. 인터넷 뱅킹 이체 한도가 축소되어 있는 것을 미리 체크하지 못해 집주인에게 완전하게 송금을 하지 못했다. 이 문제 때문에 아침 내내 동분서주했다. 이사 갈 집주인에게 양해를 구했는데, 찜찜한 모양이다. 부동산에도 전화를 해서 사정을 이야기 했다. 그리고 오후에 먼저 부동산에 들려 결국 각서 한 장 써 주었다. 내일까지 입금 완납하지 못하면 어떠한 불이익도 감수하겠다. 이런 내용이다. 집주인은 그런 어려운 이야기는 직접 하지 않는다. 다만 부동산과 대리인을 통한다. 아주 강단 있는 여자 같다. 큰 사업을 한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상황을 확실하게 짚고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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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을 처리하는 동안 포장이사는 열심히 일을 한 모양이다. 평소에 혼자 다 챙겼던 것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어느새 짐을 다 쌓아간다. 다만 주차장에서 차 빼는 일 때문에 사다리차가 왔다갔다 해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그리고 5톤 트럭으로도 짐을 다 실지 못해 결국 1톤 트럭을 하나 더 불렀다. 6만원 추가. 포장 이사의 단점은 짐을 하나하나 포장하기 때문에 결국 짐의 부피가 더 늘어난다는 단점이 있다는 것을 새로 알았다. 짐은 더 안전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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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다 부리고 나니 7시가 넘었다. 자리만 몇 개 지정해 주고 난 다음에는 시키지 않아도 일들을 잘한다. 한 번 더 정리는 해야겠지만, 나름대로 만족한 부분이다. 책은 조립식 책장이 이 집과 맞지 않아 2층 한쪽에 쌓아두었다. 책장은 따로 주문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북박이 장이 우리 집보다 작아 옷 넣을 공간이 부족했고, 이불장도 따로 필요할 것 같다.

집이 바뀌니 필요한 부분도 바뀐다. 당장 필요한 것은 책장이고, 그 다음 필요한 것은 이불장 정도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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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와 써니는 바뀐 집이 맘에 드는 모양이다. 이곳에 와서 하루 종일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계속 갇혀 지내왔으니 자유로움이 상쾌할 것이다. 원래 계획대로 오늘부터 방목을 하려고 했지만, 결국 12시가 넘어 세탁실에서 재웠다. 좋은 개집을 준비했건만, 날씨가 너무 추웠다. 지난 3년간 자식처럼 키운 강아지들이다. 차마 안쓰러움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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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은 2층 집사람 공부방에서 잤다. 2층 두 개 방 중 작은 방이고, 짐정리가 다 되어 있기 때문이다. 2층은 전기로 난방을 하는 곳이지만 생각보다 따뜻했다. 집 전체가 천장이 높아 난방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난방을 위해 벽난로에 장작을 넣고 불을 붙였지만 여의치 않았다. 아직 요령이 없는데다, 나무가 젖어 있었기 때문이다.


2004/12/19

모처럼 온돌방에서 잔 기분이다. 결혼하고, 계속 침대 생활을 했는데, 나름대로 좋았지만, 온돌방이 그리운 것도 사실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부동산에 가서 인터넷으로 남은 잔금을 마저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다시 또 잤다. 마음 것 늦잠을 자고 일어나 간단하게 식사를 한 후에는 강아지들과 집 마당에서 함께 놀았다. 강아지들도 그동안 계속 갇혀있다 마음껏 놀 수 있어선지 무척이나 신나한다. 써니는 자기 영역을 표시하느라 여념이 없고, 향기는 나름대로 열심히 뛰어 다닌다. 이곳에 와서 그 동안 몰랐던 향기의 모습을 발견한다. 뛰어놀다가도 자주 소변을 본다는 것이 그것인데, 그간 향기는 대소변에 대해 매우 절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거의 실수하지 않고, 화장실에서만 용변을 보았었다. 주인과의 관계 때문에 스스로 통제해온 것일 테지 하고 생각하니 더욱 안쓰러움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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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들을 풀어 놓고 본격적으로 집안 청소에 들어갔다. 부엌과 안방, 안방에 딸린 드레스룸을 청소했다. 포장 이사에서 침대 위치까지 다 잡아 놓고 갔지만, 침대를 들어내고 그 아래까지 깨끗이 쓸고 닦았다. 어린 시절에는 손걸레질도 참 많이 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그런 것이 귀찮아졌다. 하지만 역시 손으로 빡빡 닦는 손걸레 질이 청소에서는 최고다. 청소한 것 같고, 스스로도 만족하게 된다.

모자른 옷장을 대신해 이전 집에서 사용하던 부품들을 이용해 드레스 룸에다 조립식 옷장을 만들었다. 좀 쫍은 감은 있지만, 사용할 만하다. 아직 공구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완전 고정을 시킬 수 없는 상황이라 이 점이 좀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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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집주인이 다녀갔다. 생각보다 젊은 여자라 조금 놀랐다. 집 잘 써달라고 당부를 한다. 그 동안 관리가 안 되어서 걱정했다고 한다. 이곳에 집을 얻기 위해 계속 다니면서 느낀 점은 적어도 이 동네에 집을 가진 사람이나 집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집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 노력한다는 점이다. 따로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이 집 역시 우리가 들어오기 전 새로 대문을 고치고, 2층 베란다를 수리해 놓았다. 집도 잘 지으려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 보다 유지하는 것이 언제나 더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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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는 드디어 벽난로에 불을 붙였다. 한번 해 보니까 요령이 생기는 것 같다. 벽난로 앞에 앉아 저녁을 먹었다. 밥을 먹자니 집사람과 애기 생각이 났다. 산이를 낳고 기뻐하던 집사람의 얼굴과 옹알거리던 산이의 얼굴이 너무나 선명하게 떠올라서 그리움이 사무쳐 진다.

집사람과 산이를 보려면 일주일을 기다려야 한다.


2004/12/20

이곳에 이사 와서 첫 출근이다. 아직 별다른 감흥은 나지 않는다.

아침에 밖으로 나오니 전날보다 쌀쌀하다. 강아지들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 어제 저녁 비가 와서 강아지들을 세탁실에서 재웠던 터라, 기온차가 좀 나서 걱정을 했는데, 아이들은 너무 명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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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조금 문제가 생겼다. 자동차 유리에 서리가 내려서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뜨거운 물을 한 바가지 부었더니 서리는 가셨지만, 일부는 남아 살짝 얼었다. 따라 나오려는 강아지들을 잘 단도리하고 회사로 출발.

집에서 양수리 삼거리까지는 11분, 하남 IC 입구까지 11분, 서하남 IC까지 5분 정도, 여기까지는 훌륭했다. 올림픽 대교 입구까지는 그런데로 흐름을 따라 잘 갔으나 잠실 종합 경기장 쪽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거의 한 시간을 보냈다. 한마디로 첫 출근은 실패다. 거의 10시가 다 되어 도착. 아무래도 다른 길을 생각해 봐야 겠다. 50분을 예상했지만, 2시간 가까이 걸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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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날이 너무 쌀쌀해 회사에 와서도 후회가 되었다. 강아지들을 안에 넣어 놓고 오는 것인데, 괜히 밖에 풀어 놓고 온 것은 아닌가 후회막급이다. 당장 가 볼 수도 없고... 밖에 있어도 따뜻하게 지낼 수 있도록 벽면이 있는 캐노프 텐트를 하나 주문했다. 자식처럼 키우던 강아지라 투자를 너무 많이 하는 것 같은 생각은 들지만, 그 편이 마음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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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퇴근하는 길은 한 시간 정도 걸렸다. 회사에서 올림픽 경기장 - 올림픽 대로 - 미사리 - 팔당 대교 - 문호리 이렇게 자동차 흐름을 따라 왔다. 올림픽 경기장까지 가는 길이 좀 막혔지만, 그 다음부터는 거의 막히지 않고 잘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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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니 써니와 향기가 반갑다고 난리다. 하루 종일 강아지들만 밖에서 이렇게 논 것은 아마도 처음이지 싶다. 하지만 여기 기온이 쌀쌀하다. 아니나 다를까 먹으라고 내 놓은 물통(바가지 모양의 물통)의 물이 3Cm나 얼었다. 얼은 물을 보니 강아지들이 새삼 처연하게 보인다. 덕분에 강아지들은 오늘 포식했다.


2004/12/21

오늘 출근길은 성공적이었다.

오늘은 하남 IC로 들어가지 않고, 미사리로 돌아갔다. 팔당대교에서 잠실대교까지 약 15분 정도 걸렸다. 시간상으로는 하남 IC에서 서하남 IC로 나와서 올림픽대교에서 올림픽대로로 나오는데 필요한 시간이 이정도 걸린다. 막히지 않는다면 더 빠르겠으나 그럴 길이 아님으로 결국은 미사리로 오는 것이 시간상으로 비슷하거나 빠르고, 통행료 800원도 절약할 수 있어 유리하다. 오늘은 잠실 대교 밑으로 빠져나왔다. 잠실역으로 가기 직전 우회전하여 올림픽대로 옆 사잇길로 빠졌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요약하면, 집에서 양수리까지 10분, 팔당 대교까지 10분, 잠실 대교까지 15분 총 35분이 걸렸다. 미사리길이 별로 좋지 않은데다 차도 많아 속도가 좀 느렸다. 잠실대교에서 사이길로 빠져나와 아파트 공사를 하고 있는 곳에서 좌회전, 다음 사거리에서 잠실 경기장쪽으로 우회전, 잠실 경기장 앞에서 다시 좌회전하면 그 다음부터는 직진이다. 회사까지는 20분 정도 걸렸는데, 신호등이 많고, 차가 많으나 흐름은 어느 정도 나왔다. 앞으로 출근시간을 좌우하는 것은 아마도 이 구간이 될 것 같다.


2004/12/24

집은 상당부분 치웠다. 아직 2층은 정리가 안 되었는데, 책장 주문을 안 했기 때문이다. 1층은 작은 방과 세탁실(보일러 실 겸)을 제외하고는 정리가 어느 정도 깔끔하게 되어 있다. 집에 훈기를 덥히느라고, 보일러를 조금 높게 틀어 놓고 다닌다.

그간, 주유소 아저씨와 친해졌고, 양수리 초입의 가게와 문호리 입구의 큰 슈퍼를 몇 번 방문했다. 거의 출퇴근만하고 있어서 아직은 이웃과 친해질 여가가 없다. 내일은 집사람과 산이를 보러 간다. 사실 산이보다는 집사람이 더 보고 싶다.


2004/12/25

아침에 게이트맨을 달았고 뒤이어 전화국에서 왔다. 인터넷 개통 때문이다.

크리스마스가 특별하진 않지만, 그래도 공휴일인데 와주어서 감사하다. 이 집에 일주일 정도 있으면서 어느 정도 적응도 되었고, 또 이 집에서 만족하지 못하는 결함 등도 보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방문하는 사람들은 이 집이 무척 부러운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달라야 한다. 앞으로 집을 지으려면 눈에 보이는 화려함을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유지비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난방비는 얼마나 나올지, 전기세는 얼마나 나올지... 그런 모든 궁금함은 일단 이달 말이면 어느 정도 윤곽이 나올 것 같다.


2004/12/27

집사람과 산이를 보고 와서 더 기운이 났다.

산이는 건강하다. 나를 많이 닮았고, 집사람도 많이 닮았다. 집사람 역시 건강하다. 아직 거동이 그리 편하지 않지만, 내가 굶고 살까봐 걱정이다. 내가 집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집사람이 나를 더 사랑한다는 것을 언제나 느낀다.

현재의 일상은 항상 똑같다. 출근하고, 퇴근한다. 출퇴근 시간은 거의 한 시간에서 +-10분 정도로 비교적 안정되어 있다. 집에 와서는 좀 쌀쌀하지만 하루 종일 갇혀 있던 강아지들과 마당으로 나와 함께 논다. 요즘 우리 강아지들은 집 안에서는 용변을 참고 있다 저녁에 놀 때 한꺼번에 용변을 다 해결한다. 참 신통하다. 그리고 짬이 더 나면 동네 한 바퀴를 산책한다. 옆집의 큰 개가 가끔씩 써니와 향기를 괴롭히기도 하는데, 그런 것만 없으면 가히 우리 세상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 와서 강아지들과 산책할 때 가장 좋은 점은 따로 끈을 매지 않아도 좋다는 점이다. 써니와 향기는 내 곁에서 5M 이상 떠나지 않는다. 아직은 낯설고 무서운 모양이다. 서울에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까봐 또는 해코지 당할까봐 꼭 끈이 필요했다. 한 가지 안 좋은 점은 산책 때 끈을 이용하면 발톱이 달아 따로 관리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렇지 않아 아이들 발톱 관리가 따로 필요할 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강아지들과 논 후에는 저녁을 먹고, 집을 좀 치운 후 벽난로를 지펴놓고 쉰다. 자기 전에 잠시 인터넷을 한다. 아직은 이벤트가 없어서 천편일률적인 삶이다.


2004/12/28

오늘 책장이 도착했다. 3자짜리 책장을 2개 사는데 20만원이 넘게 들었다. 서울 같으면 동네에서 책장을 주문 제작했을 것이다. 가격도 거의 비슷할 테고, 원하는 데로 만들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그러기가 힘들고 배달 문제도 있어서 길이를 제어 주문했다. 책장은 마음에 들었지만, 역시 책이 많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책장 2개와 2층 거실 벽면에 만들어져 있는 큰 책장까지 모두 다 차버린 상태. 새로 산 책장에는 컴 관련 서적들만 넣었는데 다 차 버렸다. 그 외의 책은 정리할 데가 없어 아직 쌓여 있다. 지난번에 사용했던 조립식 책장이 확실히 유용하고 가변적이라 원하는 데로 설치할 수 있어 좋았는데, 여기서는 사용할 수 없는 게 너무 뼈아프다. 책장을 두 개 더 사든가 아니면, 다른 대안이 있는지 빨리 알아봐야 겠다.

이사를 하면 이모조모 필요한 게 너무 많다.


2004/12/31

연말이라 좀 일찍 끝난 덕에 드디어 전입신고를 했다. 이제 진짜로 경기도민이 되었고, 서울이라는 도시를 떠난 느낌이 난다. 전입신고는 서울과 마찬가지로 간단하게 서류를 쓰고 신분증을 보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보호 차원에서 확정일자도 받았다. 차가 남았는데, 15일 이내에 번호판을 바꾸지 않으면 과태료를 내야 한다고 한다. 좀 더 시간이 있다면 양평 시내로 가서 오는 중에 모든 일을 끝냈으면 좋겠지만, 오늘은 미국에서 귀국하신 어머님과 아버님을 뵙고 집사람과 아이도 보러 가야 한다. 특히 부모님께는 상의 없이 집을 옮긴 셈이라 사죄도 드릴 겸. 오늘도 긴 여행이 될 것 같다.


2005/03/02

삼월 둘째날 눈이 많이 왔다. 아마도 올해 마지막 눈이 되지 않을까 싶다. 출근 시간으로 거의 두시간 반을 소모했다. 천호대교에서 사고가 있었다는데 아마도 내가 올림픽 대교에서 지체하며 보낸 가장 많은 시간일 것이다. 차에 엔진 오일이 거의 없어 많이 긴장했다. 오늘 정비소에서 오일을 조금 보충하고, 창환이 형님에게 가서 엔진 오일을 교체해야 겠다.

그간 많은 일이 있었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잘 타고 다니던 엑셀을 폐차했고, 차가 갤로퍼2 숏바디로 바뀌었다. 사륜이 되면서 웬만큼 눈이 와도 집 앞까지 차가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럽고 기쁜 일이다. 또 차를 바꾸고 나서 눈이 많이 왔던 관계로 사륜의 덕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집도 많이 정리되었고, 집사람과 아기도 돌아왔기 때문에 집안이 좀 분주하다.

그간의 일을 좀 정리해 보자. 그간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역시 눈과 관계되는 일이다.

전원주택으로 집을 옮기고 나서 가장 힘겨운 일은 역시 교통 문제와 난방 문제다.

교통 문제는 계절적인 요인이 많은 부분을 지배한다. 겨울철에는 무엇보다 눈이 문제인데, 양평에서 살려면 사륜 차량과 스노우체인은 필수다.

올해 눈이 비교적 적게 와서 스노우체인 없이 버티어 왔다. 하지만, 내년에도 그런 행운이 계속되리라는 보장은 없을 것이다. 아마도 한두 주 안에 스노우체인의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꼭 하나 장만해야 겠다.

사륜 차량은 우리 집처럼 고개를 넘어 고바위 길을 올라가야 하는 집에서는 필수적이다. 단 한번이었지만 사륜으로도 눈길에 차가 미끄러져 결국 차를 아래에 두고 걸어 올라가야 했던 기억도 있다. 특히 축대가 해를 가리는 길은 눈이 오면 곧 눈이 빙판으로 변해버리기 때문에 사륜이 아니면 올라가기 힘들고 사륜도 빙판에서는 바퀴가 흔들려 위험하다. 때문에 눈이 오면 즉각 치우는 길이 안전을 위한 최상의 방법이나 언제나 그렇게 대응하기는 힘들다.

또 하나 눈의 종류에도 신경 써야 한다. 종류라기보다는 상태라는 편이 더 정확한 표현인데, 눈이 건조하고, 날씨가 차면 눈이 밟히기 때문에 차가 내리막을 내려갈 때 눈의 마찰력 때문에 큰 위험이 없다. 하지만 눈이 습하고 날씨가 따뜻하면 내리막길에서는 눈이 바퀴와 함께 쓸려 나가기 때문에 빙판보다 더 위험하다. 눈을 밟는 순간 차가 쓱 밀려 나가기 때문에 거의 컨트롤이 되지 않는다. 이런 눈을 치우기가 비교적 쉽기 때문에 재빨리 치우고 차를 모는 것이 제일 현명하다. 그걸 모르고 차를 몰았다가 거의 죽을 뻔 한 기억이 있다.

도로로 접근하기까지의 길은 주민들 스스로 치워야 한다. 하지만 실시간으로 거의 치워지지 않는다. 사람이 적게 사는 곳은 더욱 그렇다. 일단 도로로 나오면 길은 좋아진다. 대부분의 눈은 제설이 되어 있으나 눈이 계속 내리는 상황이면, 대부분의 도로는 주의를 요한다. 또 눈이 새벽에 오거나 갑작스럽게 닥치면, 이 또한 무용지물이다. 대응력이 너무 늦다. 아마도 도시에서 이런 정도의 대응력이면 난리가 나겠지만, 여기는 지역이 너무 넓고, 장비도 그리 많은 것 같지 않다.

교통은 주말에는 정말 장난이 아니다 퇴근 시간은 평소의 약 1.5배 정도 된다. 주말 저녁 서울행 길은 늘 포기다. 양평에서 서울로 갈 수 있는 길은 언제나 만원이라 어디 다녀왔다가(주로 서울 쪽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모를까 늘 힘겹다. 아마도 이것은 서울 쪽으로 들어가는 길 자체가 너무 협소하고 외길이라 그럴 것이다. 이런 힘겨움은 현재의 도로 계획상 아마도 5-6년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여름이 걱정이다. 여름에는 더 심하지 않을까 싶다.

난방은 주로 난방비로 귀결된다. 첫달 연료비가 생각했던 비용보다 두배 정도의 비용이 나온 것을 보고 이건 월세나 다름없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많이 안정이 되어 비용이 많이 줄었지만, 추위를 잘 타는 나는 좀 추운 겨울을 보냈고, 추위를 잘 타지 않는 집사람은 별 영향이 없는 모양이다. 이 때문에 집을 얻거나 지을 때 꼭 난방비를 절약할 수 있는 장치들, 태양열 온수, 심야 전기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하다.

그 외에 생활하는 데는 큰 불편함이 없다. 5분 거리의 문호리에 농협 하나로 마트와 큰 슈퍼가 하나 있어 대부분이 해결되고, 10분 거리의 양수리에 더 큰 농협 하나로 마트와 그 정도 규모의 K 마트가 있어 생필품을 구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농협이 문호리에 있어 은행 업무가 가능하고, 보건소와 면사무소 등이 문호리에 있으니 여러 가지로 편리하다. 2분 거리에 24시간 마트도 있다. 물론 모두 차로 이동하는 거리다. 병원은 아직 이용해 보지 못했는데, 문호리에 하나 있다고 하고, 양수리에도 좀 큰 병원이 있다. 그리고 아직 이용해 보지 못한 LG마트가 덕소에 있다고 하는데 한번 가 보려고 한다.

하나 불편한 것은 이웃과의 거리다. 바로 옆집에 이웃이 하나 살고 있고 우리 집 위로 두 집, 아래도 한집 정도가 이웃의 거리인데, 왕래가 없다. 조만간 저녁 식사라도 청해야 할 듯하다.

이제 문호리로 이사온 지 꼬박 두달 반이 되었다. 그 동안은 일종의 준비 기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곳에 살기 위한 여러 가지 준비들. 그 중 가장 힘들다는 겨울을 모두 지내 보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오늘도 눈이 내렸지만...

이제부터는 이곳에서의 즐거운 삶을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눈이 모두 없어지고, 파릇한 봄 냄새가 가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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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오름, xdg]


셀프북 인터뷰

언젠가 산에 다니는 내 선배는 결혼 전 아내를 처음 소개하자 아내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자기 팔을 하나 잘라주어도 아깝지 않은 후배라고. 그러니 믿어도 좋을 그런 녀석이라고.’

선배는 정말 나를 아꼈고 나 또한 그 선배를 좋아했고 무척 따랐다. 꽤 긴 세월 동안 산을 함께 다니며 한 자일 끝에 연결되어 삶을 나누었으니 무엇을 나누어도 좋을 그런 상대였다. 자일 파트너인 내 친구와 산악회를 제외한다면 산을 다니며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지금은 비록 타국의 하늘 아래 있지만 그리워하는 마음은 여전하다.

내게 그런 후배가 있다면 아마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하나가 단연 소순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윈도우NT 쪽에서는 촉망받는 저자이기도 했고, 한글과컴퓨터 재직 시절 내 후배이기도 했다. 세간에는 윈스라는 필명으로 더 많이 알려진 인물이다.

내가 순식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성격이 화통하고 무엇이든 꾸밈이 없는 데 있다. 어떤 일이건 주눅 들지 않고 성취하려는 강한 욕망을 감추지 않는 것은 그의 강점이다. 다만 대상에 대한 비판적인 의식이 자주 들어나고 전체적인 조화를 부리는 면이 좀 약한데 이제 나이를 먹어가고 곧 아기 아빠가 될 사람이니 관록이 쌓였으리라. 오늘 우연히 메일을 정리하다 그에게 보낸 메일 중 하나를 찾았다. 2005년 4월 30일에 보낸 글인데 자신의 홈페이지인 셀프북에 인물 인터뷰를 실어야 겠다고 나를 조르고 조른 끝에 받아 간 글이다. 그래도 자신의 블러그에 게재할 만한 인물 중 하나로 나를 지목했으니 그 뜻이 가상하다. 대한민국 대표 인터넷 포털 중 하나인 N사에서 맹활약 중이다. 아래 글은 순식의 블러그인 셀프북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인터뷰 내용이 당시의 상황과 많이 달라졌지만 그때의 일이 기억나 미소가 걸린 김에 다시 옮긴다.



1. 성함과 간략히 하시는 일 20자 이내로 소개 부탁드립니다.

윤태근입니다. 현재 하는 일은 PDA 폰을 전문으로 만드는 싸이버뱅크에서 PDA폰 관련 기획 일을 하고 있습니다.


2. 요즘 스마트폰 제조 업계 동향은 어떻습니까? (피부로 느낄 수 있는 20자 이내 설명 부탁드립니다.)

“또 다시 기회가 왔다. 그러나 올해가 고비다. 잘해서 장수하자.”
비록 싸이버뱅크가 현재는 1위를 하고 있지만 대기업에 비하면 벤처기업에 불가하다. 관련 업계에서는 ‘올해가 마지막 기회다.’라는 위기감이 팽배한 상태. 이쪽 역시 시장이 대기업으로 재편되어 가는 양상이고 보면 작년까지는 LG와 싸워 업계 1위였으나 삼성과 LG가 점점 깊게 들어오는 현재는 장담하기가 힘들다. 아이리버와 같은 신화를 만들 것인지, 좌초할 것인지는 올해가 관건일 듯…….


3. 결혼하신지 이미 3년이 넘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내 자랑 부탁드립니다.

지난주가 3주년 결혼기념일이었다. 지난해까지는 여행을 갔는데, 올해는 우리 아기 “산”이가 강림하신지라 오랜만의 외식으로 조촐하게 기념했다. 그 자리에서 집사람에게 꽃다발을 선물하며 “함께 살아줘서 고맙다”고 했다. 결혼하고 나서 심정적으로 많이 안정된 것이 사실이다. 살아온 날이 아직은 짧다 할 수 있지만 스스로는 질풍노도와 같이 살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가운데 유일한 안식처가 되어준 것은 어머니와 집사람일 것이다.

집사람의 자랑이라면 나에게는 이상적인 여자라는 점이다. 일 잘하고, 예쁘고, 싹싹하고, 남편 사랑하고, 애기 잘 키우고……. 농담 삼아 흔히 하는 그런 말들에 모두 해당한다. 하지만 나를 가장 기쁘게 하는 것은 삶을 바라보는 태도나 사상적인 지향점이 비슷한데서 오는 동질감이다. 그 때문에 의기투합이 잘 된다. 오래 고민하였지만, “양평”으로 집을 옮긴 것도 집사람의 흔쾌한 동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다만 성격은 좀 다른데, 내가 느긋한 편이라면 집사람은 급한 편이다. 때때로 그것이 갈등의 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서로 간의 단점을 보안해 주는 역할도 한다.

집사람에 대한 자랑을 단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온라인상에서 집사람을 지칭하는 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쭈님”이라고 부르는데 주인님의 쎈 발음이라고나 할까. 스스로는 이 명칭을 존경의 표시로 사용하고 있다.


4. 쓰다만 소설작품의 수와 앞으로의 작품 계획은?

아직까지 “보물”을 다듬고 있다. 벌써 몇 년째 쓰고 있는데, 주력할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 중편으로 완결했다가 마음에 차지 않아 에피소드를 추가하다 보니 점점 장편이 되어가고 있다. 에피소드 하나를 더 추가하고 있는데, 이제까지 가벼웠던 전개가 점점 무게감이 생기고 있어 이를 이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아마도 그 때문에 “보물” 후속편으로는 현재 추가한 에피소드를 따로 떼어내 완결판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고민 중이다. 그 외에 만들어 놓은 작품 노트 중 작품으로 완결하고 싶은 것이 현재로서는 약 5편 정도 된다. 하지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그것이 늘 고민이다. 전업 작가로 나서기에는 아직 마득치 않은 부분이 있다.


5. 휴대폰 등의 새 제품을 손맛을 느껴보고 출시한다는 S전자 CEO의 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마도 최종 제품을 받아보는 CEO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

제품을 기획하고 제품이 출시될 때까지 개발 과정 전반에 관여하고 있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실무자이자 관리자로서의 현재의 자리는 늘 긴장의 연속이다.

가장 실망스러운 것은 개발을 진행하다 스펙 아웃을 시켜야 하는 경우다. 일정 때문이든, 관련 부품 업체가 대응을 못해 주는 것이 문제이든, 때로는 개발 역량에 비해 너무 미래적인 선택을 한 때문이든 원래의 기획 의도에서 멀어지는 스펙 아웃은 늘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제품 자체가 그것 때문에 세상에 나올 수 없다면 더 슬픈 일이기에 어느 선에서는 타협을 한다.

전체 로드맵을 쥐고 있는 입장에서는 손 맛 보다는 불안함이 더 많다. 현재 근무하는 회사는 최첨단의 제품을 주로 만든다. 엔지니어 출신의 CEO를 모시고 있는 덕분으로 세계 최초의 WinCE를 채택한 PDA 폰 출시를 기화로 세계 최초의 무선랜 탑재 네스팟스윙 폰을 낸 바 있고, 세계 최초의 DMB PDA 폰 출시를 앞두고 있다.

최초라는 의미는 최고 기술의 타이틀이 될 수는 있어도 기술적 무결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에 새 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적어도 나에게는 희열과 불안이 교차하는 외줄타기를 하는 셈이다.


6. 어떤 디바이스가 되었건 처음 집으면 가장 먼저 무엇을 보십니까?

역시 디자인이다.

제품을 만드는 입장에 있다 보니 디자인이 기능에 미치는 영향과 기능 향상에 대한 디자인 요소에 관심이 많다. 이른바 “멋진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 현재 근무하는 회사에서 미래를 대비해 투자해야 할 부분의 첫째를 꼽으라면 역시 디자인이라고 늘 생각한다.

얼마 전 L사에서 나온 경쟁 제품의 샘플을 본 적이 있다. 평소 생각해 왔던 디자인 요소들이 잘 가미된 “멋진 디자인”이었다. 그 디자인은 어느 정도 극단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어 아마도 채택 과정에서 큰 논란이 있었을 것이다. 디자인의 발전을 위해서는 수요 계층보다 개발 및 적용 계층의 열린 눈이 더 중요하다. 그래야 제품이 세상에 빛을 보니까. 그런 고민을 볼 수 있는 디자인이었다. 향후 그 제품이 히트한다면, 단순한 컨셉 제품에서 끝나지 않고, 우리나라 폰 디자인 역사를 몇 년은 앞당겨 갈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제품이 경쟁 제품이었기에 그날 밤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 과감함은 오히려 벤처기업에서 시도되어야 마땅하기 때문인데 상항은 늘 그렇지 못하다.

때로는 벤처기업이 더 보수적이며 모험을 싫어하기도 한다.


7. 존경하는 분과 그 이유는?

공병우 박사님.

나의 관점에서는 그 분은 삶이 풍족하셨던 분이다. 따지고 보면 하고 싶은 일 다 하고 사신 분이셨고, 어려움도 그리 많이 겪은 분이 아니고, 게다가 존경까지 받으며 사신 분이며, 삶의 족적도 많이 남기셨다. 하지만 내가 그분을 존경하는 것은 삶에 대한 의지다. 자신이 믿는 것을 끝가지 주장할 수 있는 것, 확신을 가진 삶과 그것에 대한 투신을 존경한다.

내가 그분에 대해 보내는 존경은 그 분이 돌아가셨을 때 세벌식 자판과 그에 얽힌 이야기들로 잡지에 개제한 글이 있으니 그것을 읽어본 분이라면 그 의미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도 썼지만, 그분을 딱 한번 뵈었다. 그분이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강연이었던 것 같다. 그때 보았던 90세의 노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은 살아온 삶에 대한 의지이며 투신의 반영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당연히 세벌식 자판을 쓰고 있는데, 그분에 대한 존경이 지속하는 한 세벌식 자판을 쓰게 될 것이며, 그 우수성에 대한 전도사가 될 것이다.


8. 산을 오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산쟁이로 잘 알려진 덕에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이다.

빚진 사람처럼 항상 마음속에는 산이 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나니 산이 소원하다.

산을 오르는 이유는 거창하게 말하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일도(一道)를 이루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준비가 되어 있다면 산을 오르는 동안 육체는 점점 이완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흠뻑 젖은 몸은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는 듯 한 시원함을 느끼게 된다.

그 과정은 집중의 과정이다. 몸이 고단하고 약간의 스릴을 즐길 수 있는 위험이 동반될수록 집중은 강해진다. 집중은 몸 안에 쌓여 있는 온갖 분심과 잡념을 정화한다. 정화되는 그것을 스트레스라고 말해도 좋고 삶의 때라고 말해도 좋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모든 것을 훨훨 털어 내고 산의 정기를 받아 하산을 하면 정신과 몸이 맑아짐을 느낀다. 산은 그 수단이며 대상이다. 그리고 그것이 산이기에 더 집중되는 것이다.

스스로 심취해 있으니 더 몰입하기 위해서는 자화자찬도 필요하고 개똥 철학도 필요한 법. 그 과정과 결과를 나는 도(道)라고 말하고 싶다. 도가 별건가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도는 도(道)다. 스스로에게는 말이다. 또한 성취감, 빛나는 산의 풍경, 삶을 나눌 수 있는 산 친구와의 조우 등은 산이기에 언제나 따라오는 부수적인 것들이다. 인생이라는 긴 길에서 스스로가 정화되고 새롭게 마음을 다독이며 격려해주는 그 길이 산이기에 ‘오른다.’고 할 수 있다.


9. 이 세상에 산이 없고 평지만 존재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마도 다른 대상을 찾을 것 같다. 바다라든가, 강이라든가, 그곳에서 집중을 극대화할 수 있는 약간의 위험을 즐기며 살고 있지 않을까? 산을 찾는 것이 일도(一道)를 이루기 위한 것이라면 산에서 얻게 되는 집중의 과정을 반복할 수 있는 또 다른 대상을 찾지 않을까 싶다.


10. 이 세상 모든 산을 등정한 뒤라면, 무얼 하시겠습니까?

그런 행운이 내게 찾아온다면 아들 “산”이와 함께 이제까지 오른 모든 산들을 다시 한 번 오르고 싶다. 물론 집사람도 함께…….

몇 해 전 설악산 공룡능선에 들어갔을 때 어린 두 아들과 함께 온 부부와 잠시 동안 같이 산행한 적이 있는데 참 부러웠다. 아무도 없는 산중에서 나와 집사람이 그간에 경험한 삶을 나누고 더불어 “산”이가 성장하며 새롭게 바라보는 인생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긴 여행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왠지 가슴 벅찰 것 같은 생각이 든다.


11. 향후 3년간 계획이나 목표는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약간의 오차는 있지만 ‘인생을 이렇게 살아야 겠다.’고 목표한 계획표에 거의 근접하며 살았다. 새해를 시작할 때쯤이면 늘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 생각하고, 목표를 점검하고 수정한다. 현재 개인적인 가장 큰 목표는 소설 “보물”을 완료하는 것이다. 그 외에 여러 계획이 있지만 발표하는 것은 좀 부적절하다.


12. 가장 좋아하는 인간형과 싫어하는 인간형은?

스스로도 양면의 날처럼 싫은 면과 좋은 면이 있다.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그와 유사하다. 좋은 면이 있으면 싫은 면도 있고, 싫은 면이 있으면 좋은 면도 있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판단은 박노해 시인의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말에 귀결되도록 노력한다. ‘모든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고 희망을 걸 것은 결국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항상 품고 있다.

모두 다 좋을 수 없듯, 모든 면이 싫은 것도 아니어서 될수록 섣불리 판단하지 않으려는 노력은 계속하는 편이다. 특별히 싫은 사람은 과불급한 사람이다. 너무 모자라거나 넘치면 함께 하기가 참 힘들다. 결국 ‘상식을 지키자’인데, 이것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를 빼면 대부분 좋아한다.


13. 셀프북에 왜 오십니까?

순식이가 항상 알림 쪽지를 날려주어서……. 항상 고맙게 생각한다.


14. 책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가장 감명 깊게 읽으신 책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스스로는 독서를 많이 하는 편에 든다고 생각한다. 사상, 역사, 과학, 문학 류에 책을 좋아한다. 깊게 집중할 수 없는 요즘은 짧은 시간 안에 독파할 수 있는 가벼운 책 위주로 많이 읽는다.

책을 읽으면서 무릎을 탁 치며 “아!” 하고 감명을 받았던 책은 딱 3권이다. 한 권은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고, 다른 한 권은 독일 여성이 쓴 “나는 나” 라는 책이고, 나머지 한 권은 “앤소니 드 멜로” 신부가 쓴 “일분 지혜”란 책이다. 세권 다 어느 한 대목에 이르러 전율하듯 몸을 떨었던 기억이 나는데 아마도 그 당시의 상황이나 성장의 단계에서 감동을 받을 준비가 되었을 때 그 문장, 그 언어가 가슴 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항상 마음에 걸리는 책이 하나 있다면 “삼국지”다. 집에서 읽던 삼국지는 백과사전처럼 큰 양장 포장에 깨알 같은 글씨로 쓰여진 한 권짜리 책이었다. 내게는 아버님의 유품이었고 아버님은 일이 잘 안 풀릴 때면 늘 그 삼국지를 꺼내들고 읽으셨다. 그러면 마음이 풀리고 기분이 좋아지신다고 했다. 나도 그 책을 한동안 그렇게 읽었다. 큰 책을 펴 놓고 정신없이 읽다보면 일은 어떨지 몰라도 마음만은 언제나 스르르 풀렸다. 어느 날 아는 선배가 병원에 입원하여 삼국지를 읽고 싶다고 하여 빌려 주었는데 그만 잃어버려서 가슴이 찢어졌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헌 책방을 갈 때마다 똑같은 삼국지를 늘 찾는다. 하지만 아직까지 발견하지는 못했다.


15. 편집을 하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원고가 있었다면?

편집이라? 이 말은 용어상의 문제가 있다.

책과 관련해 주로 일했던 컴퓨터 관련 서적 쪽에서 말하는 편집자란 지면의 배열을 요구받는 디자이너의 역할이나 오퍼레이터의 역할을 의미한다. 컴퓨터 서적이 아닌 일반 출판 쪽에서 말하는 편집자는 책의 성격과 방향을 규정하고 책이 독자와 만날 수 있도록 세부적으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컨트롤하고 조정하는 리더인 커뮤니터를 의미한다. 용어상의 엇박자를 해결하기 위해 컴퓨터 출판 쪽에서는 디자이너 계열을 지칭하는 편집자 대신 편집자인 자신들을 가리켜 기획자라 부르는 것이 통례다. 용어상의 혼돈이라고 할까.

질문에서 의미하는 편집이 컴퓨터 출판 계열의 편집이어서 디자인과 연관된 것이라면 사실 내가 편집한 책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한참 출판 일을 할 때 내 손때를 묻혀 출간한 책은 약 200여 종이 조금 넘지 않나 싶다. 컴퓨터 출판 쪽 개념으로 이야기하자면 대부분 기획자로서 참여한 것이고 직접 쓴 책도 약간 있고, 릴라이트를 한 것과 편집자로서 디자이너의 역할을 한 것도 있다. 전체 종수를 놓고 일반 출판의 관념으로 보면 편집자로서 책을 대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원고는 물론 순식의 원고도 있었지만 윤원근씨의 원고이지 않나 싶다. 친동생이면서도 프라이드 강한 저자이고, 이미 독자층을 형성한 인지도에, 원고를 집필하는데 나름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서 출간을 위한 설득이 참 싶지 않았다. 원고라는 것이 결국 필자의 생각과 경험과 사상을 전달하는 것이라면, 편집자는 그것을 받아 비용을 지불하는 독자가 원고를 기쁘고 즐겁게 소화할 수 있게 하는 교두보 역할의 연결자에 속한다. 그러니 편집자는 독자가 원하는 부분을 더 끌어내야 하고, 때때로는 독자가 돈을 더 지불해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 수 있는 요소를 가미해야 한다.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목차에서부터 문체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간섭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좀처럼 설득이 되지 않고 끝까지 자기 고집을 부리는 필자는 참 힘들다. 탄탄한 원고일수록 방향을 돌리는 것도 만만치 않다. 필자가 해당 분야의 전문 지식과 그 분야의 식견을 갖고 있는 자라면, 편집자는 독자와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에 대해 나름대로의 식견을 가진 전문가에 속한다. 그런 면에서 협상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스스로도 가장 힘겨운 상대가 아니었나 싶다. 다행인 것은 그런 치열함 속에서 나온 책들이 대부분 훌륭한 결과를 달성한 점은 위안이다.


16. 다음 인터뷰로 추천하고 싶은 분이 있으시다면?

윈스 - 자승자박도 좋다.


17. 셀프북에 오시는 좋은 님들께 하고 싶으신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순식의 마수에서 벋어나자. ^^

순식과의 좋은 인연이 삶에 대한 연대감을 이어가는 가교가 되었으면 좋겠고, 셀프북도 오래도록 즐겁게 운영해 기쁨 두 배 만들어 가는 일상의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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