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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0/11 전태일, 공한체 그리고 세벌식! _ [오름, xdg] (7)

1995년 12월에 쓴 글이다. 벌써 10년도 넘은 글인 셈이다.

당시 필자는 (주)한글과컴퓨터 기술개발부문에 있었는데 당시 부서장이셨던 박순백 현 드림위즈 부사장님의 권유에 못이겨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도무지 짬이 안 나 글 쓰기 힘들다 했더니 업무로 인정해 주시겠다는 통에 기자와 약속을 하고 3회 정도 연재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업무가 줄어든 것은 결코 아니어서 짬내기가 힘들었다. 결과적으로는 필자의 글이 세상에 또 하나 나온 셈이니 박순백 부사장께는 감사할 일이다.  

다음 달인 1996년 1월에 Hello-PC 1월호에 실렸다. 반응이 좋아 다음달에는 세벌식을 배우고 활용하는 기사를 다시 실었다. 다행히 이 즈음에 자료를 백업 받은 것이 있어 원고가 살아남았다. 이전에도 많은 잡지에 글을 썼는데 모두 자료를 유실해 안타깝다.

당시 필자는 세벌식390 버전을 사용했으나 지금은 세벌식 최종판을 사용하고 있다. 역시 대만족이며 새삼 공병우 박사님께 감사드린다.



먼저 밝힐 이야기

컴퓨터 업계에서 “우리 것”과 관련하여 늘 논란거리가 되는 대표적인 것이 두 가지 있다. 그 두 가지는 코드와 자판에 대한 문제이다.

매우 복잡 미묘한 이 문제들은 언제나 논쟁거리를 제공하지만 실제로 자타가 공인하는 전문가들을 모아 놓고 이야기를 시켜 보면 편차는 있으나 언제나 동일한 결론에 도달한다. 코드는 조합형을, 자판은 세벌식을 미래지향적이고 한글 창제 원리에 맞는 것으로 귀착시켜 가는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두 가지 문제에 관해서는 전문가들이라 일컬어지는 사람들의 판단이 여전히 대세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때로는 정권의 신선함을 풍기기 위한 무리한 조처로, 때로는 민간의 힘찬 노력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정부부처의 이기주의로, 그리고 그 근간에는 새로운 표준으로 돈을 벌어 보려는 상업적 필요 등이 장애를 만들어 낸다.

오늘의 논의는 앞서의 모든 논쟁들을 되풀이하려는 것이 아니다. 필자는 단지 현재 쓰고 있는 세벌식 자판에 얽힌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필자가 왜 두벌식에서 세벌식으로 자판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었는지, 왜 공병우 박사님과 그가 만든 세벌식 자판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세벌식 자판에 대한 조그마하지만 현실적인 소망에 대해, 필자는 아주 작고 정겨운 소리로 말하고 싶다는 것 외에는 이번 글쓰기에 큰 의미를 두려 하지 않는다.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며칠 전 회사의 전자게시판에 흥미로운 글이 하나 올라왔다. 글꼴 담당자의 글이었는데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에서 자막 서체로 공한체가 쓰였다는 것과, 영화의 내용도 좋지만 잠시 나오는 자막용 글꼴까지도 순수한 우리의 것을 사용하는 세심한 정성에 감동했다는 것, 그리고 글꼴이 예쁘니 기대하라는 것 등의 내용이었다. 순간 필자는 마음속의 파문을 느끼면서 ‘그 영화만은 꼭 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필자를 잘 아는 친구들이 이 말을 들었다면 아마도 이렇게 반문했을 것이다. “별로 좋아하지 않던 영화보기를 서체 하나 때문에 보러 가겠다구?”

영문 OS/2에서 공한체를 띄운 화면

영문 OS/2에서 공한체를 띄운 화면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 글에 앞서 전자게시판에 등록된 글 중에는 공병우 박사님과 그분을 추종했던 한 분인 한재준 교수님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세벌체 글꼴 공한체를 아래한글에서도 쓸 수 있게 된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리고 그 글의 말미에 “세벌식 자판과 세벌체인 이 글꼴이 어우러질 경우 영문 윈도우즈, 영문 OS/2, 영문 유닉스 상에서 다른 프로그램의 도움 없이 한글을 입력하고 출력할 수 있다.”는 내용이 내 시선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실제의 상황을 직접 체크해 보니 신기하게도 영문 OS/2에서 다른 프로그램의 도움 없이 공한체가 입출력되고 있었다. 이것은 이제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놀랍고 신선한 충격이었다. 한글 바이오스의 도움 없는 한글 입출력이라니……. 자리로 돌아오는 중에도 필자는 ‘도대체가’라는 말을 미친 사람 마냥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최초의 세벌식 사용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필자 역시 처음에는 두벌식으로 자판을 익혔다. 당시에는 두벌식 이외에는 다른 자판이 존재하지 않는 줄 알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필자가 만져 본 모든 자판에는 언제나 두벌식만이 각인 되어 있지 않았던가. 어느 정도 자판이 익숙해지자 필자도 두벌식 자판을 익혔던 다른 모든 사람들이 겪고야 마는 똑같은 어려움에 부딪혔다.

아래한글의 이벌식 자판

아래한글의 이벌식 자판

두벌식 자판으로 약 270타 정도 치기 시작하고 자판을 좀 더 많이 두드릴 필요성이 생기면서부터 조금만 길게 타자를 하면 손목이 아프고 손등이 조금씩 붇기 시작했다. 한 번은 자료를 준비하느라 10시간 정도 연속해서 타자를 했는데 그 다음날에는 숟가락을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손목과 손등이 아파 왔다. 게다가 이런 일은 필자의 주위에 두벌식으로 타자하던 사람들의 공통적인 문제였다. 나중에는 키보드를 더 이상 건드리는 것이 두려울 정도가 되었다. 타자를 조금만 하여도 부풀어 오른 손도 손이었지만 암벽 등반을 취미로 하는 필자에게는 이런 통증이 심각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때 우연히 잡지를 읽다가 운명처럼 인연을 맺은 것이 세벌식 자판이었다.

이전부터 풍문으로만 듣고 있던 세벌식에 대한 환상은 잡지를 통해 더욱 증폭되었다. 그것은 다분히 세벌식 자판이 빠르다는 소문과 한글 창제 원리에 맞는다는 소문을 미리 듣고 있었던 때문이다. 특히 필자와 같은 증상이 세벌식 자판에서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말도 있어 어차피 컴퓨터로 일을 해야 할 바엔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학원 강사였던 필자는 수료생들의 수료 작품집을 거의 마무리해 놓았기 때문에 다음 번 정신없이 바쁜 강의까지는 약 1달 정도 여유 있는 생활을 할 수가 있었기에 자판을 바꾸겠다는 결심이 좀 더 용이했는지도 모르겠다.

타자 연습 프로그램을 가지고 무작정 열심히 세벌식 타자를 익혔다. 자판을 바꾸어 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 답답함과 지루함은 마치 걸음마를 다시 배워야 하는 물리치료실의 환자와도 같은 것이다. 익숙한 두벌식 자판으로 치면 금방 끝낼 수 있는데, 더듬거리는 세벌식 자판은……. 장난이 아니었다. 그러나 필자는 거의 3개월이 지난 후에 드디어 자판을 완전히 바꾸는데 성공했다.


세벌식 사용자의 자랑스러움

아래한글의 세벌식 자판

아래한글의 세벌식 자판

세벌식으로 자판을 바꾸고 나서 가장 좋았던 건 부어오르던 손이 아무리 타자를 많이 해도 멀쩡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내게 너무나 신기한 일 중 하나였다. “정말 좋았다.” 거기에 대한 단 한마디의 표현이다.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한 번 익히면 빠르다는 소문이 사실인지 타자 역시 빠르게 예전의 타수를 되찾았다. 합리적인 자판 배열도 나를 기쁘게 한 것 중 하나이다. 매우 리드미컬하게 타자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장시간의 타자를 끝내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듯 했다.

그러나 두벌식에 대한 어려움은 여전히 살아 있다. 지금도 가끔 아무 생각 없이 타자를 하다 보면 자음보다는 모음을 먼저 친다. 두벌식 자판은 왼쪽에 자음이 몰려 있지만 세벌식 자판은 왼쪽에 중성과 종성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오타는 처음 익혔던 자판에 대한 버릇에서 나온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필자는 세벌식 자판에 아주 만족한다. 민족적인 정서와 한글 창제 원리에 맞는다는 이유뿐만이 아니라 실용 면에서 뛰어나기 때문이다. 특히 노트북 컴퓨터를 자주 쓰는 요즘에 들어서는 더욱 세벌식 자판에 애착을 느낀다. 세벌식 자판은 노트북의 작은 자판으로도 무리 없이 손을 놀릴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노트북 때문에 결국 두벌식에서 세벌식 자판으로 전환한 친구가 있을 정도다. 숫자 키패드가 없는 노트북 자판에서 숫자 키패드를 닮은 세벌식 자판의 고유한 숫자 배열 역시 금상첨화이다.


단 한번 먼발치에서 본, 그분

필자는 작년에 공병우 박사님을 한 강연에 참가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 분을 뵈었다. 생각과는 다르게 그는 매우 늙어 있었고(기억이 맞는다면 90세가 된) 육체는 자유로워 보이지 않았다. 그는 강연을 하는 중에 말을 더듬었고, 질문의 뜻을 이해하지 못해 엉뚱한 대답을 하거나 옆에서 질문의 요지를 알려 주어야만 대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책상 위에 놓인 물을 엎지르거나 허리 버클이 풀려 있어도 그것을 스스로 챙기지 못했다. 세벌식 자판과 세벌체 글꼴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나라가 망한다는 강경한 강연 내용의 일부는 공감되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에 매우 바빴음에도 그의 강연을 듣기 위해 억지로 시간을 만들었던 필자는 단숨에 그를 존경하고야 말았다. 그에게서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열정이 있었고, 한글에 대한 사랑이 있다는 것, 그리고 긴 세월을 헌신해 온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강건함이 배어 있었다.

강연의 끝 무렵이었다. 한 여자가 비명을 지르듯이 질문했다. “그렇다면 그렇게 좋은 세벌식이 왜 정부의 공식적인 표준으로 자리하지 못하는가? 모든 사람이 칭찬에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것으로 보아 우열은 분명한데. 왜? 외압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정말 표현할 수 없는, 숨겨야만 하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 것인가?” 필자가 느끼기에 그 중년의 여자는 아마도 너무나 우수하면서도 대접받지 못하는 세벌식에 대한 답답함을 표현한 것이었으리라. 그러나 늙어 버린 육체를 끌고 온 공병우 박사님은 그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고 엉뚱한 대답만을 했었다. 그것마저도 모인 모든 이의 마음을 뜨겁게 했고, 그의 육체가 싱싱하지 못한 것에 대해 모두가 안타까워 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강연은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일어서서 평생을 한글 과학화에 몸 바친 한 사람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치는 것으로 존경을 표시하며 끝을 맺었다. 그때 필자는 세벌식 자판을 칠 준 안다는 것에 대해 매우 자랑스러워했고 감격했다. 소문만으로 접했던 그를 실제로 보았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흡족했다. 그리고 올해 초 슬픈 소식을 들었다. 철이 들어 한 번도 울어 본 적이 없던 필자도 눈물을 떨굴 뻔 했다.

그의 죽음. 세상을 뜬지 한참이 지나서야 비로소 세상에 알려진 그의 죽음. 내 가슴을 난도질하듯 비수로 박혀 온 저미도록 비장한 그의 유언. 굴곡된 역사를 가진 이 땅에, 마땅히 존경할 만한 인물이 없던 이 시대를 뒤로 하고 그는 그렇게 힘찼던 한 생을 마감했다. 필자는 그날, 하루 종일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세벌식 타자 연습만으로 그에 대해 마지막 애도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필자가 알기로 그날 그 강연이 공병우 박사님의 마지막 강연이 되었다.


씁쓸했던 한글 윈도우 95 발표회장

얼마 전 한글 윈도우 95 발표회장에 갔다.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한글 윈도우 95는 미완의 미봉인 채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행사장 중앙 바로 뒤켠에 마이크로프레스 부스가 있었는데, 거기서 한 컴퓨터 잡지 중견 기자와 한국MS사의 고위직 임원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기자의 입장에서는 취재였고, MS사 관계자의 입장에서는 설득이오, 강변이었다. 그것은 한참 문제가 된 통합형 코드가 뭐가 나쁘냐는 노골적인 이야기였는데, 요지는 ‘세종대왕이 나라 백성을 편하게 하기 위해 만든 한글을 우리나라 백성들이 아무 불편 없이 편하게 잘 쓰면 되는 것이지 사용자들이야 그 내부가 어떻든 상관없지 않느냐.’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으며 왜 그렇게 가슴이 미어지고 입맛이 씁쓸해 지는 것인지. 평생을 몸 바쳐 겨레의 말과 글의 과학화에 온 정열과 사랑을 불살랐던 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단 몇 억의 행사에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한글만 나오면 됐지.’ 하고 당당해 지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

“나는 이 신문사에서 일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한겨레신문의 한 기자가 필자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몇몇의 신문사와 새로 창간되는 시사 주간지들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곧잘 받던 중견 기자였다. “…… 재벌을 위해 일할 수는 없으니까……. 그래도 아직은 여기가 정말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니까…….” 박봉이라 떠나가는 동료들을 이해한다는 그. 높은 액수의 봉급마저 거절할 수 있는 그의 정신.

그 기자를 생각하면서, 수없이 주체성을 이야기하고 주인 정신을 토로하던 이 땅 한가운데서 발견한 또 다른 우리 모습에 씁쓸함을 남기던 행사장이었다.


세벌식에 대한 몇 가지 의견

세벌식은 모두가 알고 있듯이 초·중·종성으로 이루어져 있고 입력도 초·중·종성 3벌로 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렇다면 글을 수정할 때 이를 이용한다면 재미있는 여러 가지가 가능하다.

먼저 “”자를 치려고 했는데 “”으로 입력한 것을 나중에 발견했을 때 이를 수정하기 위해서는 “”자를 지우고 다시 “”자를 입력해야 한다. 이때 세벌식 자판이라면 커서를 “”자에 위치시키고 종성인 “”을 입력하는 것만으로도 바로 “”자로 수정할 수 있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자로 수정하고 싶다면 중성 “”를, “”자로 수정하고 싶다면 초성 “”을 단지 입력만 하면 된다. 초성과 종성을 구별할 수 없는 두벌식은 불가능하겠지만 한글창제 원리에 맞게 세벌을 모두 가지고 있는 세벌식은 가능하다. 구현만 된다면 글을 수정하는 시간이 엄청나게 줄어드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글의 특징을 전산화하는데 크나큰 공헌을 할 뿐더러 세벌식 자판을 더욱 자랑하고 인구를 늘리는 조그마한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대중적인 워드프로서세에서 가능하다면 더욱더 그러하리라.

필자가 한 동료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그것은 이미 “깃든글”이라는 한글 바이오스에서 구현된 바 있다며 시연까지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필자가 이제까지 혼자만의 생각이라고 고민하던 문제가 의외로 손쉽게 여러 프로그램에서 구현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 아닐까?

또 하나 의견이 있다. 그것은 글을 입력하다 보면 자주 쓰이게 되는 음가 없는 “(이응)”과 관련된다. 가령 “이것은”이라는 말을 보면 “”와 “”은 “(이응)” 자체에 음가가 없는 말이다. 즉 “”와 “”가 오기 위한 자음 - 이런 경우 무어라고 표현하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 이다. 두벌식이라면 완전한 조합이 끝나야만 초성과 종성의 구분이 가능하지만 세벌식은 음가 없는 초성 “(이응)”의 구분이 너무 명확하기 때문에 차라리 이 “(이응)”을 치지 않고 단지 모음을 입력하는 것으로 자동으로 음가 없는 초성인 “(이응)”이 입력된다면 타자하는 시간을 엄청나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글에서 음가 없이 초성에 쓰이는, “(이응)”으로 시작하는 단어가 얼마나 많은가.

이런 조그만 소품들이 우리 글 창제 원리에 너무나도 적합하게 만들어진 세벌식 자판을 더욱 빛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소재가 되리라 생각해 본다.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모든 분들은 한번쯤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끝나지 않은 전태일의 이야기

영화를 보러 가겠다고 생각한지 벌써 일주일이 지난 어제는 출근하는 길에 문득 극장 앞을 지나다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간판을 보았다. 바쁘기도 했지만 ‘문화생활도 습관인 것’이라며 애꿎은 푸념만 늘어놓았다. 출근을 해서 새로운 소식을 찾아보려다 지난번의 영화와 공한체 그 글을 다시 읽게 되었다. 처음엔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새로운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세벌식 자판과 삼벌체가 어울릴 때 자연스러운 입출력이 어떻게 해서 가능해 지는가에 대한……. 아마도 무협지라면 그 이유에 대해 경악했다고 표현할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단순하고 간단한 발상이었기 때문이다. 과연 한글 과학화의 시작은 타자기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타자기에 집착을 많이 가지셨던 공병우 박사님다운 견해였다.

원리는 너무나 간단하다. 공한체는 타자기의 자판처럼 모든 글자가 거기에 맞는 적당한 높이와 위치를 가지고 3벌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세벌식 자판으로 이 서체를 입력하면 타자기의 활자가 종이에 옮겨지듯 자연스럽게 글자가 조합되고, 입력되며, 출력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영문 서체처럼 단지 24개의 초성, 중성, 종성만 있으면 자연스럽게 11,172자의 모든 한글을 어떤 시스템에서도 쓸 수 있게 된다. 필자는 왜 공병우 박사님이 세벌식 자판과 삼벌체를 그렇게 주장하셨는지 그제야 비로소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두려운 자동차 망국론

아침 출근길도 마찬가지였지만 자동차가 급격히 늘어나고 교통체증이 심각해지면서 사람들의 입에서 심심치 않게 오르내리던 말이 자동차 망국론이다. 거리에서 뿌리는 시간과 기름을 돈으로 환산하자니 대책이 안 선다는 것인데, 그 말을 생각하면 “나라가 망한다.”라는 공병우 박사님의 말씀이 기억난다. 다른 것은 다 접어 두고라도 필자와 다른 많은 사람들이 두벌식 자판을 사용하며 겪었던 일들이 문제이다.

무리하게도 한 손에 많은 자판을 배당함으로 해서 얻게 되는 통증. 도깨비불 현상 때문에 글자가 화면에서 조합되는 동안 오타를 치고 있는지 정타를 치고 있는지 걱정이 앞서던 심리적인 불안감. 자판 배열의 불합리성 때문에 리듬감 있는 타자를 하지 못하고, 불규칙한 리듬으로 입력행위가 이루어지다 보니 신체의 균형적인 리듬마저 깨져 버림. 그리고 세벌식 자판을 알게 되면서 잘못된 물건에 거금을 치른 것 같은 속상함 등을 돈으로 환산하면 그것은 얼마나 되려는지…….

공한체를 대하며 오늘날 우리가 대중적으로 세벌식 자판과 세벌체 글꼴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보편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면 컴퓨터를 쓰면서 우리 것과 관련하여 늘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코드와 자판의 문제 절반은 해결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현실이라는 벽

요즘 주위에서 갑자기 컴퓨터에 입문하는 선배들이 많아져 필자가 조금 더 바빠지기 시작했다. 그 중 한 선배는 이제야 286 컴퓨터를 한 대 구해서 컴퓨터를 배우고 있다. 글을 많이 쓰기에 워드프로세서를 사용하기 위해서이다. 고품질을 요구하는 워드프로세싱이 아니라면 286도 문제될 것은 없지만 문제는 아직 타자를 잘 못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깝게도, 선배에게 타자 교습 프로그램을 선물하고 나서 결국 가르쳐 준 자판이 두벌식이 되고 말았다. 당장 눈에 보이는 자판도 문제였지만 그 선배가 워낙 초보자라서 다른 프로그램에서 세벌식 자판 전환을 거의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직 dir도 모르는 선배에게 세벌식 자판을 가르치기란 정말 힘겨운 일이었다. 결국 선배가 나중에 더 나은 자판을 원하게 된다면 필자와 똑같은 아픔을 가질 것을 강요하고 만 셈이다.

같은 세벌식을 쓰는 한 동료의 말이 기억난다. 자신도 부모님과 동생에게 컴퓨터를 가르치면서 결국 같은 이유로 부모님께는 두벌식을, 동생에게는 세벌식을 가르치고 말았다는 것이다. 두벌식과 완성형 코드가 5공 비리의 산물임을 주장하는 그 친구의 말에 필자는 결국 동감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세벌식의 우수성이 아니라 두벌식의 지배성이다. 결국 세벌식은 마니아들의 충족물일 뿐 찬밥신세가 되지 않겠느냐?”는 그의 푸념이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처럼……

자조는 새로운 희망을 향한 줄달음이다. 그렇다. 오늘 이런 긴 글쓰기의 주제를 세벌식 자판이라는 소재로 이끌 수 있는 것은 세벌식을 통해 우리 것에 대한 기쁘고, 슬프고, 안타까우면서도 수많은 희망을 언급하고 싶은 것이며, 결국 새로운 희망으로 나서기 위한 열정을 표현하려는 것 아닌가! 누군가의 말처럼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떻단 말인가.’ 하고 살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땅에 살고 있고 이 땅의 공기와 물을 마시며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서는 더 우리답고 더 나다운 삶을 향한 조용한 몸짓은 멈출 수 없는 것이다. 비록 전태일처럼 자신을 불사르는 열정까지는 선택할 수 없다 하더라도…….

희망이란 작은 것에서 시작한다. 그 작은 것이 모여 분신하는 거대함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기에 앞으로 만나는 어떤 사람들 중에는 분명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또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세벌식을 쓰시네요! 세벌식 자판이 정말 빠르긴 빠르죠?”

이것. 많은 사람들의 작은 희망들 속에 분명 살아 있는 우리다운 것에 대해 작은 열정들…….


글을 마치며

생각 같아서는 글 말미에 “우리 모두 한글 창제 원리에 맞고 실용적인 세벌식을 씁시다!”라고 쓰고 싶었다. 차마 그 말로 이 글을 맺지 못하지만 자판 하나에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고 이런 체험을 한 사람이 있구나 하는 정도로 가볍게 받아들여 주기 바란다. 그리고 이 글이 지금 자판을 새로 익히거나 혹시 바꾸어 볼 마음이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체험담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 저녁은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만나기 위해 기필코 시간을 내어야 겠다. 그 어느 날 공병우 박사님의 강연을 듣기 위해 억지로 짬을 만들어 달려갔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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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오름, xd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