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시절을 부산 바닷가에서 보냈다. 바다에 대한 선연한 기억은 오랜 기간 동안 그를 사로잡았다고 한다. 서울로 돌아온 그가 갈피를 잡지 못 할 때 산은 일렁이는 바다와 파도 소리를 대신하는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산은 바다의 다른 이름이었고 그의 성장기 동안 그의 이야기를 마음 껏 내뱉을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었다. 그는 산에서 시를 배웠다. 산정에 올라서니 눈썹 흔드는 작은 바람이 있어 행복하였다고 그는 전한다. 1994년 시집 '인형을 향하여'를 펴낸 바 있고 이번에 다시 시집 '나는 너를 사랑한다'를 내 놓았다.

시집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산을 오르는 마음 - 지쳐 뒤돌아서고 싶은 아픔을 인내하며 정상에 오르는 마음, 그러나 잠시 동안 정상에 머무를 수 있을 뿐 결국 떠밀리듯 산을 내려와야 하는 우리네 인생살이의 순환에 대한 명상들로 채워져 있다. 그는 자신도 그 여정 위에 다를 바 없는 한 사람임을 이야기하며 자신처럼 지치고 쓰러진 자들에게 또 다른 세상의 열쇠를 보여주듯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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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오름, xdg]


지금쯤 강릉행 기차는 떠나고 있으리라
찬웃음 남긴 사람 하나 실려
변덕스런 봄비에 젖어 있으리라

나는 고냥 배웅조차 못하고
거리에서
찻간에서
미니 스커트 여자 다리나 쫓고

바다를 향해 사람은 떠나고 있으리라
자유에 문을 열 듯
매어 둔 인생의 비밀을 얻 듯
훌훌 접어 둔 고뇌의 실타래 풀고 있으리라

불어 논 수많은 핑계의 하루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나의 풍선은 그 어느 때
의미 없는 낙엽처럼 이름 하나 모은 채
흩날려 떨어지리라

지금쯤 어느 터널 속에서
목을 길게 뺀 사람 하나
눈을 감고 있으리라
너와 내가 교치하는 그 영혼 속으로
풀어진 넋의 시선이 가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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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새벽

악몽에 절은 지난 밤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벌떡 일어선 건
식은 땀에 젖어 있던 살가죽

폐부 깊숙이 더 깊숙이
못 피우는 담배를 지저문 채
흐느끼는 누군가 있다
술취한 채 나자빠진
만신창이 그가 울고 있다

떠날 때가 된 걸까
이제서야 마음이 아픈 걸 보면
몸이 뒤집히도록 비명을 지르고 싶은 걸 보면

새벽 어느 역
겨우 창문을 열고
벌거벗은 시선을 하늘에 매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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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름을 부르지 않기로 했다
독한 마음으로
잊어버리기로 했다
한번쯤
모두가 원하는 걸 들어주기로 했다
무너졌던 마음
모으고
날이 갈수록
사라져 갈 거라면
예서 아예 문 닫기로 했다
아무 일 없었던 것 마냥
훌 돌아서기로
다시 거리로 나서고
다시 사람들을 만나 즐거워 하며
숨진 가슴 감춘……

이 모든 결심에
늘 마침표처럼 끝에 서는……
인형

아무 말도 없이
사죄의 단 한마디 없이
그냥 이렇게 떠나기로 했다
아무런 의미도 없이
나그네가 되어 보려 한다
!
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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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오름, xdg]


버려진 나와
감추인 나를 찾아
감감히 흩뿌리는 노을을 지울 때가 되었다

떠나간다는 것
무언갈 찾는다는 것
위선 같은 두꺼운 얼굴을 버리고
잔뜩 웅크린 어깨를 펴 보는……

그리고
분신처럼 엮은 나의 초상과
삶이 담긴 한편의 글과
그대에게 움켜 준 내 시간은
떠나가는 어리석은 미련이다

그 어디든
어느 시간이든
잊지 말아 달라는
바보 같은 외로움을 전하고픈 거다

아직
먼길이 끊이지도 않은 거친 장도 앞에
여린 마음으로 달랠 수 없는
낮선 이 두려움

그러나
이제 진정 떠날 때가 된 것은
미련과 외로움과 두려움이
가슴을 뚫고 맨살을 폐부로 만드는
움켜 설 따뜻한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나를 떠미는
푸른 하늘의 시선이 극極을 치닫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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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오름, xdg]


나 인혜 !
어쩜 왠 일이냐니
난 뭐 전화도 못해
그래도 정신을 좀 차린 모양이지
이제 대꾸도 하게
진짜 괜찮은 거야
정말이지
근데 여행 간다며
동해 !
얼마나
그런 대답이 어딨어
가 봐야 안다니
보호자가 꼭 있어야 겠는데
설마 이대로 행방불명되는 거 아니지
약속해!
아니면 나 따라간다
………… …………
………… …………

이젠 잊어버려
언니도 그걸 바랄거야
틀림없이
이번 여행이 이별 여행이 됐음 좋겠다
운명은 어쩔 수 없잖아
그건 누구 잘못도 아니야
듣고 있어
응!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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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다
인형
화려했던 지난 그 바다로
너를 버리고
나를 버리고
허무를 만들러
이제
떠나간다

두려움
두려움

너와 나의 자취가 함께 묻어 있는
이 땅 거리 곳곳에
미칠 듯 떠오르는
그 추억들

무서워
무서워

말하기가 두려워
생각하기 고통스러
술취한 취객처럼
비틀거리며 흘러간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진다던가
약이 된다던가
푸른 하늘이 칼날처럼 내려앉는
나의 계절
그 바람 앞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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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강능행 막차 하나요
아 아니 두·두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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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오름, xdg]


밤이면 네가 떠나던 그 객실 안이다
혼미한 나를 세울 때마다
쓸쓸히 흩어지는 네 모습
이제 꿈이 아닌 허무를 태우고 떠나는
하염없는 이 강능행 막편
식은땀에 젖은 놀란 가슴을 싸매고
살아 숨쉬려 애쓰는 반듯한 정신이 예 있다

인형
지금 네가 날 부르는가
네가 불러 가고 있는가
이제 이 이별의 혹독한 시련
네가 달래 주려는가

두렵고 떨리는 마음은 의미 없이 굳어지고
어디쯤일까
여기는
아니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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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오름, xdg]


어머나 어서와요
왜 이리 뜸해
자주 오더니 영 소식이 없어 궁금했지
근데 그 참한 처녀는
으응 바빠서
아프다더니 이제 좀 났나
맨날 쓰던 그 방
물론 있지
자 열쇠
어딘지는 알지
좀 있다 내가 맛있는 거 올려줄께
그래 알았어요 쉬어요

' 얼굴이 좀 빠졌네
  싸우기라도 했나
  분위기 이상하네
  초상 치른 사람 마냥……'

뒤에서 들려오는 말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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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오름, xdg]